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 Apr 04. 2021

일에 대한 냉정과 열정사이

잠시 열정을 잃고 방황하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열정인가? 고난인가?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를 보면서 영화 제목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예수님의 열정>이라니, '그거 참 제목이 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영어에 무지한 나의 잘못된 해석이었다. 

 

Passion은 열정이라는 뜻도 있지만 '고난'이라는 의미도 있다. <The Passion Of The Christ>에서는 '고난'이라고 해석해주어야 한다. <예수님의 고난>이 된다. 영어 Passion은 Pass(고통) + ion(명사형 접미어)로 구성된 단어다. pass는 '통과하다'의 의미로만 알고 있는데 '고통'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영어 passion은 라틴어 passio(열정, 고난)에서 유래했다. 프랑스어는 영어와 동일한 스펠링을 사용하고, 이탈리아어는 passióne, 스페인어로는 pasión이다. 모두 '열정'과 '고통'의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열정적으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고통이 따른다는 의미일까. No pain, no gain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고통이 따를 수 있고 이를 견디어내라'는 인생 선배들의 교훈이 담겨있는 것만 같다.



20년을 달려왔다. 열정으로...


20년을 직장인으로 살았다. 새벽이면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했다. 회사가 바쁘면 주말에도 나갔고 일이 있으면 며칠 밤을 새기도 했다. 퇴근 후도 온전히 내 시간이 아니었다. 상사, 고객을 만나는 회식에도 최선을 다했다. 술자리도 회사일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고 전투적으로 마셨다. 다음 날 아침 회사 변기를 붙잡고 오바이트를 해도 회사에서 쓰러진다는 생각으로 출근했다. 주말이면 밀린 잠을 보충해야 했다. 몸을 회복해서 다시 한 주를 견디어내야 했다.


해외주재원 시절 대형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며칠 밤을 꼬박 새웠다. 성공적으로 행사를 마치고 퇴근을 했다. 긴장이 풀리니 운전을 하는데 잠이 쏟아졌다. 중간에 차를 세우고 눈을 붙일만한 장소가 없었다. '조금만 더 가보자... 조금만 더 운전해보자...' 그러다가 경적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도로 중앙선을 넘어 달리고 있었다. 앞에서 오는 차들이 난리가 났다.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직장에서 달려야 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는 것이 직장인의 삶인 줄 알았다. 직장인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나는 즐겁다고 자기 최면을 걸면서 하루하루를 견디어냈다.



풍선에 바람이 빠진 것처럼


팀장이 되었다. 실무자가 아닌 리더의 역할은 또 다른 열정을 필요로 했다. 다시 나를 불태웠다. 그렇게 열정이라는 연로를 태우면 항상 그랬듯 인생의 바퀴는 굴러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2016년 해외법인에서 대형 이벤트를 준비하는데 상사의 기대만큼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다. 이벤트 전날, 준비가 부족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현지 직원들은 이미 퇴근을 해버린 상태였다. 상사의 질책이 쏟아졌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찾아왔다. 갑자기 뱃속에서 장기를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시작되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사무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굴렀다. 현지 병원 응급실로 후송되었고, 위경련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위경련이 찾아온 것이다. 약을 처방받고 다시 사무실로 향했다. 행사 준비는 마무리해야 했다. 내가 최후의 보루였다. 위경련 약을 먹고 버티면서 행사를 꾸역꾸역 마무리했다. 

 

그 뒤로 갑자기 팽팽하던 활시위가 끊어진 것 같았다. 일요일 밤이 되면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이 느껴졌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 사무실에 들어서면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사무실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는데 손이 덜덜덜 떨렸다. 처음 찾아온 몸의 이상 변화에 당황했다.


이상하게도 주말이 되면 언제 그랬나는 듯이 멀쩡해졌다. 일요일 저녁만 되면 몸이 알아서 반응했다. '몸이 안 좋아졌나?' 한참을 생각했다. 불편한 증상이 계속되니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공황증상의 일종이라는 것을...


열정적으로 살던 김 차장에게 그렇게 '마음의 감기'가 찾아왔다. 하소연을 할 데도 없었다. 이야기를 들어줄 선배도 없었다. 현지 병원에 갈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그저 버텨야 했다. 내가 알아서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무너진 마음을 다시 회복하게 했던 3가지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면 직장생활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다. 공황증상, 공황장애를 호소하면서 휴직하는 동료도 보았고, 우울증세로 퇴직하는 지인들도 있었다. 주재원 생활 중에 극심한 스트레스로 우울증 진단을 받고 귀국하는 동료도 있었다.


직장에서 무너진 마음을 다시 회복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없다. 마음의 병이 심하다면 전문의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가벼운 초기 증상일 때이다. 이 때도 힘들기는 하지만 의사의 조언을 받기 어렵다. 스스로도 의사 상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필자의 경우 해외에 있어서 의사와 상담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했다.



I 첫째, 가족이 있었다. 


새벽에 출근하면서 곤히 잠들어 있는 가족들을 보면서 펑펑 울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졌다. 잠자는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잡으면서 이 상황을 이겨내리라 다짐했다. 


마음이 힘든 부분을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아내는 내 손을 잡고 힘들면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 무엇보다 남편이 더 중요하다며 토닥거려 주었다. 아내에게 털어놓는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아내는 다시 마음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함께 해주었다.



둘째, 직장인의 루틴으로 버텼다.


갑자기 맥이 풀린 상태였지만 회사는 출근해야 했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며칠 푹 쉬라고 하는 직장은 없다. 나를 지켜보는 팀원들과 상사들이 있었다. 일은 해야 했다. 일 속으로 나를 다시 들여보내야 했다.

 

여전히 회사에는 일찍 출근했다. 예전과 달리 바로 회사 업무를 시작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루틴 몇 가지를 매일 꾸준하게 실천했다. 업무 전에 스페인어 단어 한 장을 정리했다. 잠언 한 절을 영어와 스페인어로 필사했다. 회의실로 가서 팔굽혀펴기를 했다. 그리고 탕비실에 들어가 달콤한 맥심커피 한 잔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꾸준한 루틴을 통해서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루틴을 진행하는 동안은 일을 잊고 멍해질 수 있었다.(일종의 '루틴멍'). 루틴을 진행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힘들었던 순간을 이겨내는데 평범하고 꾸준한 루틴들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I 셋째, 나에게 물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남들이 대학을 가기에 나도 대학을 갔다. 친구가 입사원서를 쓰길래 나도 따라 썼다. 동기들이 진급을 하면 나도 진급을 했다. 왜 대학을 가고, 왜 회사에서 일을 하고, 왜 오늘을 사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 결승점이 어디인지, 내가 오늘 왜 달리고 있는지 몰랐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길을 잃고 나니 달릴 수가 없었다. 그대로 멈춰섰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에서 사이먼 사이넥(Simon Sinek)은 독자들에게 'why'라는 질문을 던져보라고 한다. 당신이 직장인이라면 한번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나는 왜 일을 하는가?'

임원이 되기 위해...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조직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남들이 다 일을 하고 있어서 어쩌다보니...
돈을 벌기 위해,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당시에 내가 생각했던 why였다. 솔직하고 나름대로 의미있는 이유이기는 하지만, 가슴 설레는 why는 아니었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자.' 새롭게 생각한 why였다. 흔하고 진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다만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있다'보다는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 같았다. 

(당신만의 특별한 why를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잠시 길을 잃더라도 다시 달릴 수 있는 사람이다.)



여전히 달리고 있다. 오늘을...


새벽 4:57분에 기상한다.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침대에서 팔굽혀펴기 5개를 한다. 들기름 한 숟가락을 마신다. 출근하는 동안 영어 동영상을 듣고, 새벽에 가장 먼저 사무실의 불을 켠다. PC를 켜서 5개 국어로 잠언을 묵상한다. 스페인어로 된 인사 관련 뉴스를 찾아서 공부한다. 팔굽혀펴기를 150개를 하고, 14층 사무실까지는 하루 2번 계단으로 오른다. 회사 업무는 일간, 주간, 월간 스케줄 관리를 통해 놓치지 않도록 관리한다. 업무 성과에 대한 상사의 평가도 후한 편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외국인 학생들의 한국어 교육 봉사를 한다. 일요일에는 교회 고등부 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시간이 나면 팝아트 초상화를 그려서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퇴근 후에는 아이들과 영어공부를 하거나, 브런치에 글을 쓴다. 2021년 3월에는 그동안 쓴 글들을 모아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도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다시 열정을 회복하여 오늘을 달리고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가끔은 멈추어 서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그래야 길을 잃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달리는 방향이 다르다면 몸을 틀어 다른 방향으로 달릴 용기가 조금은 생겼다.


'당신도 열정을 잃어본 일이 있는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페르소나 부자'를 꿈꾼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