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 나는 누구인가 평생 물어온 질문, 아마 평생 정답은 찾지 못할 그 질문, 나란 놈을 고작 말 몇 개로 답할 수 있었다면 신께서 그 수많은 아름다움을 담아주시진 않았겠지.”
BTS의 ‘페르소나’ 중
아침에 출근을 하는 길이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면 반가운 후배들의 얼굴이 보인다. 그래도 안부를 건네거나 대화하지는 않는다. 눈이 마주치면 가벼운 눈인사를 하는 정도이다. 후배들의 귀에는 아이팟이 꽂혀있다. 요즘은 업무가 시작하기 전에 후배들을 만나도 아는 척하지 않는 것이 미덕인 시대다. 업무시간 전에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후배들의 시간을 방해하면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이다. 후배들은 업무가 시작되어야 직장인 페르소나로 바꾸어 활동하기 시작한다.
I 페르소나 너는 누구냐?
페르소나(persona)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pers는 '앞'를 의미하고, ona는 '얼굴'의 뜻을 가지고 있다. 페르소나는 '얼굴 앞에 쓰는 것'을 의미한다. 얼굴 앞에 쓰는 '가면'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배우들이 가면을 쓰고 연기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배우, 역할'의 뜻도 가지고 있다.
요즘은 심리학 차원에서 '타인에게 비추어진 외적 성격'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생각해보자. 당신은 삶 속에서 여러가지 역할을 바꾸어가면서 주변 세계와 소통하고 관계를 형성해나간다.
나의 경우에도 회사에서는 '김 부장'이라는 페르소나를 쓴다. 집에서는 아빠이자 남편의 페르소나로 바꾼다. 한 달에 한 번 산에 가면 '김 총무'라는 페르소나가 기다린다. 브런치에서는 '김 작가'라는 페르소나로 글친구들과 소통한다.
I 멀티 페르소나의 시대
멀티 페르소나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유재석 씨는 무려 7개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드러머인 '유고스타', 트로트가수 '유산슬', 라면 요리사 '유라섹', '유르페우스', '유DJ뽕디스파뤼', '닭터유', 가수 이효리, 비와 함께한 '유두래곤'까지 7개의 부캐를 가지고 있다. 서로 전혀 다른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유재석의 멀티 페르소나>
페르소나란 말을 처음으로 대중화한 정신분석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인간은 1,000개의 페르소나를 갖고 있고, 상황에 맞게 페르소나를 꺼내 쓴다”고 했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여러 개의 자아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I 나는 왜 멀티 페르소나를 꿈꾸는가?
직장인 페르소나가 달라졌다.
요즘 직장인들은 회사와 자신의 관계를 규정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과거의 직장인 선배들은 직장에 헌신하고 희생했다. 회사가 발전하면 자신도 발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직장인으로서의 페르소나가 인생의 모든 것이었다.
요즘의 직장인들은 다르다. 회사와의 관계를 독립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회사에는 충실하되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2020년 3월, 잡코리아가 직장인 559명을 대상으로 <멀티 페르소나 트렌드>조사를 실시했다. 직장인 4명 중 3명은 "회사에서 모습이 평상시와 다르다"고 답했다. "회사에 맞는 가면을 쓰고 일한다"고 답했다. 설문에 참여한 직장인 중 87.8%가 멀티 페르소나 트렌드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과거에는 업무 외에 다른 페르소나를 가지는 것에 대해서 색안경을 끼고 보는 분위기가 있었다. 책을 출간했다고 하면 '요즘 한가한가?'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쳐다봤다. 요즘은 달라졌다. 이제 직장인으로서 떳떳하게 멀티 페로소나를 노출해도 되는 분위기가 되었다. 회사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는 개인의 페로소나는 존중하는 분위기로 바뀌어가고 있다.
50년을 남을 위해 살았다. 이제 후반전은 나를 위해 살고 싶다.
한국은 고령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에 의하면 2041년에는 셋 중 한 명이 노인인 나라가 되고, 2048년에는 가장 나이든 나라가 될 전망이다. 예전의 선배들은 회사에서 정년퇴직하면 10년 정도 살다가 가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 이제는 퇴직 후에도 20, 30년이상의 인생을 염두에 두고 인생설계를 해야 한다.
길어진 노후를 어영부영살고 싶지 않다. 의미있는 일을 하면서 인생의 후반전을 살고 싶다. 억지로 남을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닌 나를 위해 하는 즐거운 일을 찾고 싶다.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경험해보고 싶다. 다양한 페르소나를 쓰고 쓰다보면 가슴이 설레게 하는 신나는 일을 찾을 수 있다. 한 번 뿐인 인생, 나다운 일을 하면서 살고싶다.
I '페르소나 부자'를 꿈꾼다.
나는 페르소나 부자가 되기를 꿈꾼다. 또다른 페르소나 만드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오늘도 새로운 페르소나를 경험하기 위해 호심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본캐는 아빠이자 남편이다. 본캐 외의 나의 페르소나를 소개해본다.
첫번째 페르소나는 '김 부장'이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페르소나다. 조직에서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조금은 연출된 모습을 연기하기도 한다. 희노애락과 같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경계한다. 약한 모습을 보이게 될까봐 두렵다. 다소 과장된 가면을 쓰기도 한다. 내 생각은 그렇지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억지로 조직의 생각을 따라가기도 한다. 그렇게 직장인 페르소나로 20년을 세상과 소통했다.
두번째 페르소나는 '김 작가'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삶이 아니라 생산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6개월전부터 브런치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에서 쓴 글들을 모아서 <일 잘하는 사람은 글을 잘 씁니다>의 저자가 되기도 했다. 온라인에는 다양한 글친구들이 있다. 조악한 내 글을 읽어주고 공감해주는 친구들이다. 마음속의 상처를 쏟아내면 손을 꼭 잡고 위로해준다. 기쁜 일은 함께 축하해준다. 작가의 페르소나로 활동하면서 귀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온라인에서는 보고서를 쓰는 김 부장이 아니다. 꿈을 쓰는 '김 작가'다.
세번째 페르소나는 '김 선생'이다.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큰 결심을 한 아이들이 있다. 단국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외국인 학생들이다. 나는 그들의 한국어 선생님이라는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유학생들과 인도네시아 유학생들의 한국어 멘토 역할을 했다. K팝 노래 가사와 한국 드라마를 가지고 한국어 공부를 한다. 수업 후에는 떡뽁이도 먹으러 가고, 인도네시아 전통음식도 먹으러 간다. 집으로 초대해서 한국 가정의 식사를 소개하기도 한다. 나는 그들의 한국어 선생님이자 한국인 친구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직장인 페르소나가 모든 것인 때가 있었다. 퇴근 후에는 업무 실력을 높일 수 있는 공부를 했다. 자격증을 땄다. 경영대학원을 다녔다. 주말이면 직장 상사들을 모시고 등산을 했다. 그러면 한꺼번에 보상을 받을 줄 알았다.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인생의 후반전을 앞두고 또다른 나를 만나게 되었다. 세상과 소통하는 글을 쓰는 페르소나를 만났다. 외국인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페르소나를 만났다. 더 많은 페르소나로 활동하고 싶다. 더 많은 페르소나를 만나고 만나다 보면 진정한 나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오늘도 멀티 페르소나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