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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Dec 18. 2020

#17. 글쓰기는 보고에서 꽃을 피운다.


주 과장은 필자가 보아온 동료 중에 가장 보고를 잘하는 직원이다. 차분하게 잘 설명한다. 상황에 따라서 보고가 달라진다. 핵심만 설명하기도 한다. 필요할 때는 사례를 들어가며 세세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주 과장이 보고하러 가면 결재가 반려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대부분 결재를 받아온다. 보고하는 스킬이 남다르다.


후배 중 최 과장은 글쓰기 고수이다. 글로 하는 일은 동료들을 압도한다. 팀장이나 실장에게 보고를 할 때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한다. 작성한 보고서를 그대로 읽는 경우가 많다. 고생해서 작성한 보고서가 빛이 바래는 경우도 생긴다.


직장인의 보고는 종합예술이다. 여러가지 상수와 변수들이 모여 상사에 대한 보고가 이루어진다. 글쓰기 내용, 보고 분위기, 보고 시 멘트, 보고자 시선처리, 상사와의 공감대 형성, 관련 부문의 협조, 보고자의 자신감 같은 요소들이 합쳐지는 것이 보고이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업무가 확대되면서 대면 보고의 중요성이 감소하기는 했다. 그래도 여전히 중요한 것이 보고하기 스킬이다. 보고하기 스킬을 잘 갖추면 당신의 글쓰기를 빛낼 수 있다. 직장생활의 고수들이 보고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책에서 얻는 지식이 아니다. 여기에 몇가지 노하우를 공유한다. 실전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팁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첫째, 타이밍이 중요하다. 정말 중요하다


필자 경험에 비추어 보면, 타이밍에 따라서 상사의 결재여부가 결정되는 경우도 있다. 솔직히 좀 있다. 상사의 컨디션, 보고 당시 분위기도 중요하다. 상사가 경영진에게 질책을 당하고 온 경우라면 어떠한 보고라도 좋은 타이밍이 아니다.


이 차장은 주말을 넘기지 않기 위해 금요일 오후 퇴근 전에 던지듯 상사에게 보고를 했다. 보고를 받은 상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상사는 추가로 수정을 하고 싶다. 주말에 잔업을 지시해야 한다. 상사들도 주말에 작업을 시키면 마음이 좋지 않다. 금요일 오후 퇴근 전에 일상의 보고라면 상관없다. 시간을 가지고 검토해야 하는 기획은 급하지 않은 경우라면 차라리 월요일에 하는 것이 좋다.


보고 사안이 이슈화되기 전에 보고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문제가 생긴 후 뒤늦게 보고하면 뒷북이다.  '재택근무 활성화 방안'을 검토한다고 생각해보자.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에 돌입하기 전에 상사에게 보고가 되어야 한다. 실행이 되어야 한다. 이미 재택근무가 시행된 이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보고서 수준보다 더 중요한 것이 타이밍인 경우가 있다.



둘째, 당신의 글을 당신이 먼저 믿어야 한다.


프랑스 약사 에밀 쿠에(Emile Coué)에게 친한 지인이 찾아왔다. 병원에 가지 못한 그 지인은 통증을 호소하며 약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쿠에는 이를 거절하지 못하고 인체에 무해한 포도당 알약을 거짓 처방해 주었다. 며칠 뒤, 그 사람이 찾아와 감사인사를 했다. 병원에 갈 필요도 없이 쿠에에게 받은 그 약을 먹고 깨끗이 나았다는 것이다. 환자의 약과 약사에 대한 믿음이 병을 치유한 것이다. 쿠에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하여 '자기 암시법'을 창안하였다.


글쓰기에서 자기 암시는 중요하다. 자신이 쓴 글을 믿고 안 믿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자신이 쓴 글을 믿어야 생명력을 얻는다. 위대한 글이 될 수 있다. 보고자가 믿음을 가지고 보고해야 실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새로운 사업계획을 한 달 여에 걸쳐서 팀원들이 준비했다. 오랫동안 준비한 만큼 내용에는 자신있었다. 발표 경험을 준다는 의미로 박 대리에게 발표시켰다. 문제는 박 대리가 보고 내용에 대해 100% 자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보고를 받은 임원은 재검토를 지시했다. 보고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다는 것이었다. 직원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 일부를 수정한 후에 사업계획에 대해 가장 확신을 가지고 있는 김 차장이 보고에 나섰다. 내용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임원은 새로운 아이디어라며 사업계획을 승인했다.


자신이 쓴 글을 믿지 못하는 보고자들이 있다. 상사를 설득할 수 없다. 매러비언의 법칙이 있다. 커뮤니케이션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비율은 7%밖에 되지 않는다. 말의 뉘앙스 같은 청각적 요소가 38%를 차지한다. 표정, 태도 같은 시각적 요소가 55%라는 것이다. 아무리 잘 쓴 글이라고 하더라도, 보고를 하는 당신이 주저주저한다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당신이 쓴 글은 당신이 먼저 믿어야 한다. 확신에 찬 말투와 당당한 자신감이 글을 빛나게 해준다.


<게티이미지뱅크>


셋째, 예상질문을 준비하라.


보고서에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담을 수는 없다. 보고받은 상사가 궁금한 점이 생길 수 있다. 질문에 적절하게 답하는 것도 보고의 기술이다. 질문에 우왕좌왕하면 보고의 신뢰도가 떨어진다. 상사는 상식적인 선에서 질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산 확보방안, 기대효과, 예상 리스크, 관련 부문과의 협업 방안 같은 것들이다. 충분히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질문이다. 예상 질문은 먼저 생각해보고 보고에 임하는 것과 그냥 보고서를 들고 가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보고를 잘 하는 동료들을 보면 상사 질문에 잘 대응한다. 대답이 매끄럽다. 상사의 질문에 잘 대응한다는 것은 충분하게 글에 대해 검토하고 공부를 했다는 증거다. 자신의 글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면 대답이 궁색해진다. '다시 확인해보겠습니다'라는 말밖에 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대답이 반복되면 보고자가 충분하게 검토를 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상사의 질문에 대답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모르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추측성 답변을 하는 것이다. 한 두 번은 넘어갈 수 있지만 반드시 밑천이 드러나게 되어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 것이 낫다. 공자는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보고서에 내린 결론 말고 다른 대안, 플랜 B도 머릿속에 준비해두면 좋다. 상사가 당신 보고서 결론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대안이 없는지 물어보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 당황하지 말자. 준비한 대안을 차분하게 답변하면 된다. 상사는 센스있는 직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넷째, 무조건 결론부터 이야기하라.


김 대리는 상사에게 한참을 보고하고 있다. 보고서 작성 배경, 동종사 동향, 시장 전망, 환경 분석, 관련 부서간 협업체계에 대해 상세하게 보고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결론을 이야기한다. '팀장님! 이게 결론입니다. 잘했지요?'라는 표정으로 삼사를 쳐다본다. 상사는 망연자실하다. 한참을 보고받았는데 결론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상사는 황망하다. 결론을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다.  


『더미를 위한 비즈니스 글쓰기』의 저자 나타릴 카나보르는  “헤드라인이나 글의 도입부에 키워드를 포진시키는 것이 좋다."라고 조언한다. 소설이나 시의 경우에는 결론을 마지막에 쓰는 경우가 있다. 회사에서 글쓰기는 무조건 결론이 앞에 나와야 한다. 상사에게 보고할 때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라. 상사의 시간을 도둑질해서는 안된다. 한참 이야기하다가 마지막에 결론을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다섯째, 마법의 표현 '당신의 생각대로'


필자가 20년 동안 사용한 보고 비법을 공개하려고 한다. 필자가 창안해낸 기법이 아니다. 이 시대의 거인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다. 당신의 주변에 일을 잘하고 있는 동료는 이미 사용하고 있을 팁이다. 필자는 이 보고 비밀을 데일카네기 <인간관계론>과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에서 배웠다.


아주 간단하다. '당신의 의견대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팀장에게 보고를 하는 경우라면 '팀장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보고서 방향을 잡아보았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수정해서 재보고하는 것이라면 '팀장님께서 지적해주신 대로 한번 수정해보았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나의 생각이 아니라, 상사의 눈으로 바라보고 수정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잘되고 있는 일의 마무리를 상사의 공으로 돌리는 것이다. 당신의 보고서 공저자로 상사를 참여시키는 것이다. 당신의 상사는 당신이 쓴 글의 열렬한 팬이 될 것이다. 누가 당신의 보고서를 비난한다면 당신의 글을 지킬 것이다. 상사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팀장님의 지시/조언/충고/말씀대로 작성해보았습니다.'라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강철왕 카네기도 이 방법으로 수많은 위대한 비즈니스 계약들을 따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그 순간까지도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했다.





자동차를 만드는 것은 소비자가 있기 때문이다. 고객이 차를 사주기 때문에 차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직장인의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의 소비자인 상사가 있다. 상사가 당신의 글을 소비해주어야 한다. 상사가 글을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대로 된 보고이다.


다 된밥에 재뿌린다는 속담이 있다. 그동안 고생한 글쓰기를 잘 마무리 짓는 것은 당신의 보고이다. 어떻게 보고하느냐에 당신의 글이 달려있다. 글이 마무리되었다고 상사에게 달려갈 것이 아니다. 어떻게 보고할 지 전략을 세우자. 보고 전에 5분만 생각하면 된다. 그 5분이 당신의 5시간을 세이브할 수도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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