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에 의한 현장관리 방안'을 고민하고 있었다. 제목과 아이디어를 몇 개 끄적거렸다. 글이 한 줄도 나가지 않았다. 매일매일 시간은 흘러가는 데 보고서 진도가 안 나갔다. 마감시한이 다가오고 있다.'빨리 써야 하는데'. 쓸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이었다. 미치는 것 같았다. 거대한 벽이 앞을 막고 있는 것 같았다.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싫어지기도 한다. 계속 글을 써야 하는지 회의가 들기도 한다. 잘 쓰는 사람의 글을 보면서 위축되기도 한다. 계속 쓸 수 있을지 자신감을 잃는 경우도 있다. 상사와 동료의 좋지 않은 반응에 좌절하기도 한다.
직장인 글쓰기에는 벽이라는 놈이 존재한다. 신입사원도, 글쓰기 베테랑인 김 부장도 글쓰기의 벽에 부딪힌다. 글쓰기의 벽에서 자유로운 직장인은 없다. 글을 쓰다 보면 반드시 슬럼프가 찾아온다. 한 줄도 써지지 않는 상황에 내몰린다.
글쓰기의 대가들도 글쓰기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는 했다. <아웃라이어>의 말콤 글래드웰, <노르웨이의 숲>의 무라까미 하루키, <유혹하는 글쓰기>의 스티븐 킹이 그랬다. 창작의 벽에 부딪혀 신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버지니아 울프, 김소월 같은 작가들이 그랬다. 정신분석학자 에드먼드 버글러는 이러한 벽을 작가의 장벽(Writer's Block)이라고 이름 지었다. 우리가 문제가 아니다. 글쓰기를 하는 한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숙명이다. 그것이 글쓰기의 벽이다.
직장인으로서 살아가는 한 글쓰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퇴직하지 않는 이상 써야 한다. 글쓰기가 되지 않을 때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어떻게 글쓰기의 벽을 벗어날 수 있을까?
"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 압박감이 사라진다. 어떤 일이든 그렇듯이 글을 쓸 때도 시작이 중요하다. 답이 하나가 아니기에, 나는 몇 개의 '시작'을 만든다. 맨 처음 시작하는 첫 문장을 몇 개씩 만들어놓는다. 이 중 하나가 진짜 첫 문장이 되고, 나머지는 그 문장을 이어가는 실마리들이 되어준다. 물론 모두 지워버리고 시작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답은 하나가 아니기에 부담은 없다. 이렇게 작업을 시작하는 습관을 들이면, 시작이 꼭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니라는 깨달음에까지 올라선다. 중간부터 시작해도 상관없다는 걸 알면, 즉 굳이 처음부터 반드시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면 삶이 한결 단순해진다."
팀 페리스 <타이탄의 도구들>
강원국 작가는 글쓰기가 막히면 '아는 것, 쉬운 것부터 쓰기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조금만 쓰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해서 조금씩 분량을 늘려가라는 것이다. 한꺼번에 많은 분량을 쓰겠다고 덤비면 뇌가 겁을 내고 글이 막힌다.
일단은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자. 오피스 프로그램을 열자. 첫 시작이 풀리지 않는가? 중간에 생각나는 내용들을 채워 넣자. 먼저 생각나는 것을 쓰는 것이다. 채워나가다 보면 글은 완성을 향해 달려간다.
글이 써지지 않는 시기에는 다른 일을 하면 도움이 됩니다. 다시 글쓰기에 돌아오고 싶도록 만드는
‘딴 짓’이죠. 독서, 산책, 누군가와의 대화와 토론을 꼽고 싶어요. 저는 주로 산책을 합니다. 책상을
벗어나 걷는 것만으로도 실마리가 어느 정도 풀리고 다시 글을 쓰고 싶어집니다.
의도적으로 글쓰기를 피하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다. 다시 글쓰기에 돌아오고 싶도록 만드는 ‘딴 짓’을 하는 것이다. 독서, 산책, 동료와 대화 같은 것이 딴 짓이다. 필자의 경우에는 사내 도서관으로 간다. 책들을 열어 목차를 본다. 그러다 관심이 가는 책이 있으면 그림책을 보듯 훑어본다. 자신의 글과 관련된 내용도 좋고 아예 다른 분야의 책도 좋다. 보다 보면 아이디어가 생각난다.
글이 안 써지면 PC 앞에 앉아 있어도 답이 없다. 일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회사 건물을 한 바퀴 돈다. 멍하니 걸으면서 머릿속으로는 글쓰기 주제를 생각한다. 걷다가 정리되는 경우가 있다. 자리에 일어나서 걷는 것만으로도 실마리가 어느 정도 풀린다. 그러면 사무실로 달려가서 정신없이 써내려간다. 생각보다 많은 작가들이 글쓰기가 막히면 산책을 활용한다.
글쓰기 주제를 가지고 관련부서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한다. 무겁지 않게 대화한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글쓰기가 풀리는 경우가 생긴다. 필자는 업무상 해외법인 주재원들과 이야기를 많이 한다. 대화하다 보면 해결책을 찾기도 한다.
관련부서 직원들을 만나기 어렵다면 팀원들과 대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서로 의견을 나누는 것이다. 서로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힌트를 발견하기도 한다.
자신을 믿어야 한다. 당신 안에 쓸거리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글쓰기가 안될 때는 아래의 주문을 마음속으로 외워보는 것이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고, 모든 직장인들이 어려운 것이 글쓰기이다.'
'모두 나처럼 빈 페이지에서 글쓰기를 시작한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 직장인의 글쓰기다.'
'나는 이미 여러 번 글쓰기를 성공시킨 베테랑이다. 이번에도 글쓰기에 성공할 것이다.'
글이 써지지 않으면 절박한 상황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사람은 위기감을 느끼는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아이가 깔린 자동차를 들어올렸다는 어머니 이야기가 있다. 위기 상황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한 것이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몸이 좋지 않았다.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다. 췌장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이었다. 걱정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가장이 잘못되면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무엇인가를 준비해야 했다. 글에 몰입했다. 절박함에 글을 써내려갔다. 몇 달을 지지부진하던 글이 폭포수처럼 써내려졌다.
항상 위기가 생길 수는 없다. 항상 절박한 상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인위적으로 절박한 환경을 만들면 된다. 기한 내에 글을 쓰지 못했을 때 생기는 곤란한 상황을 상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기한 내 작성하지 못하면 상사의 질책, 주변 동료의 실망스러운 시선에 노출된다. 곤란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글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일단은 시도를 해야 한다. 넋놓고 있을 수는 없다. 회의실에 가서 끄적거려 보기도 한다. 서점에 가서 관련된 책들을 보면서 마음이 뜨거워지도록 기다려도 본다.
스콧 배리 카우프만은 펜실베니아 대학 상상력 연구소 과학소장이자 심리학자이다. <타고난 창조자(Wired to Create)>의 공저자이다. 그는 작가의 벽에 대해 이렇게 조언한다.
“작가의 벽을 만난다면 그저 종이에 어떤 아이디어나 지식 등, 무엇이건 써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도 써지지 않을 수 있다. 이런저런 노력이 모두 효과가 없을 때는 잠시 펜을 내려놓자. 스스로를 위로하자. 최선을 다한 당신 스스로를 토닥거리자.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해지지는 말자. 또 아는가? 이 글을 쓰기에는 아직 시간이 무르익지 않았는지.
글을 잘 쓰는 선배에게 '글쓰기가 어려운 순간이 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선배는 피식 웃었다. 두려움과 싸워가며 꾸역꾸역 쓴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안 써지면 월급을 생각한다고 한다. '돈을 받고 쓰는 글인데 써야지'하고 마음을 다잡다고 한다.
어느 날 당신에게도 글쓰기의 벽이 찾아올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