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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Aug 21. 2021

김 부장의 '사가독서'

사가독서 [ 賜暇讀書 ]
조선시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전념하게 한 제도를 말한다. 세종대왕은 집현전 학사 중에서 젊고 재주가 있는 자를 골라 관청의 공무에 종사하는 대신 집에서 학문연구에 전념했다. 신숙주(申叔舟)·성삼문(成三問)과 같은 문신들이 휴가를 받아 관청에서 일하는대신 절에서 글을 읽었다고 한다.


출처 : http://ehbook.co.kr/23474


'사가독서'에서 돌아왔습니다.


2주간 휴가가 주어졌다. 회사 조직문화가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일주일 휴가도 눈치보면서 사용했다. 보통은 회사 단협에 보장된 5일 중 3일 정도만 쉬었다. 남은 이틀을 출근하면 열정이라고 포장하는 분위기였다. 주재원 근무를 마치고 복귀해보니 3일 휴가가 아니라 2주 휴가를 독려하고 있었다.


3일 휴가면 놀기 바쁘다. 제대로 쉬기도 부족한 시간이다. 2주 휴가가 주어지니 의미있는 일을 찾게 되었다. 그냥 놀면서 보내기가 아까웠다.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올해도 '사가독서'를 하기로 했다. 2주간 '사가독서'를 보내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다.



2020년 사가독서 _ 나는 도서관에서 꿈을 만났다.


2020년 2주 휴가가 시작되었다. 휴가를 즐기기 위해 춘천에 있는 처가집으로 향했다. 역대급 비가 내렸다. 2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장대비가 내렸다. 계곡에서 휴가를 즐기려던 계획이 취소되었다. '책이나 볼까?' 하는 마음에 춘천중앙도서관으로 향했다. 거기서 글쓰기에 대한 책들을 만났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미친듯이 글쓰기에 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다보니 쓰고 싶어졌다. 수첩에... A4지에 가슴을 채웠던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쏟아낸 글들이 모여 <일 잘하는 사람은 글을 잘 씁니다>라는 책이 만들어졌다. 20년동안 꿈을 꾸었던 버킷 리스트 중 하나를 달성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스로에게 '사가독서'를 준 것이었다. 소비하는 휴가가 아닌 생산하는 휴가를 보내서인지 휴가 후 맞이한 '20년 하반기가 보람찼다. 글을 쓴다는 것이 사람을 생기있게 만들어주었다. 알차게 보낸 2020년 하반기였다. 2020년 그렇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2021년, 김부장의 사가독서


2021년에도 2주 휴가가 주어졌다. 올해도 책을 보려고 했다. 가슴 설래게 만드는 테마의 책들을 읽고 2번째 책을 쓰려고 했다. 그러던 차에 휴가 전 회사에서 인사발령이 났다. 해외 인사(HR) 조직에서 국내 인사 조직으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국내 인사 업무를 알아야 했다. 새로운 정보와 시스템에 적응해야 했다. 고참에게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다. 스스로 길을 찾아야 했다.


국내 HR 업무를 접하다보니 「근로기준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대한 기본 이해가 필요했다. 기준근로시간, 평균임금, 통상임금, 탄력적근로시간제, 단체교섭, 쟁의조정, 근로시간면제 같은 생소한 용어들에 익숙해져야 했다.


관련된 책과 정보를 접하다보니 '공인노무사' 시험이 눈에 들어왔다. 공인노무사 시험은 '노동법, 민법, 인사관리, 경영조직론' 같은 것들이 시험과목이다. '공부해두면 나쁘지 않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2주 휴가 중 아내와 휴가가 겹친 날을 빼고 8일을 사가독서에 투입하기로 했다. 용인 죽전도서관으로 향했다. 공인 노무사 교재를 구입하고 읽기 시작했다. 오랜만의 공부에 엉덩이가 들썩 들썩...좀이 쑤시기도 했다. 그래도 무식하게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8일이 지났다.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완독하고 사가독서를 마무리했다. 2021년 그렇게 나는 국가고시 수험생이 되었다.


노장 수험생?


솔직히 속으로는 '나이 50에 무슨 공인노무사 시험이냐' 하는 마음이 들었다. 노무사 시험은 20대 청년들이 취업을 위해 공부하는 시험인데... '이제 퇴직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기에 무슨 자격시험 준비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휴가 때 놀러나 가지, 도서관에서 이제 무슨 미친 짓인가'하는 후회도 생겼다.


2021년 휴가를 잘 보낸 것일까? 지금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공부해보지 않았다면, 도전해보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것 같다.



끝 새로운 시작입니다.


노동법 교재를 완독하고 책장을 덮으려는데 마지막 페이지가 눈에 들오왔다.

'끝 새로운 시작입니다.'

울컥했다.

'아~ 끝이라고 생각하고 멈추려고만 했구나...'

'이만하면 이제 됐다고 포기하려고만 했구나...'

50대에 새로 시작하면 어떠한가. 

수험생이 되면 어떠한가. 

공부하는 것이 즐거우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래서 토요일 아침, 가족들이 잠든 이 시간 노동법 한 페이지를 읽어내려가고 있다.

<전시춘 노동법2> 45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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