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엄격하셨다. 무뚝뚝하신 분이었다. 감정표현을 잘 안하셨다. 속정은 있는 분이었는데 내색을 안하셨다. 가을이 올라치면 퇴근길에 단감을 사오시곤 했다. 어머니가 단감을 좋아하셨다. 어머니에게 직접 주는 일이 없었다. 주방 어디께 슬쩍 올려놓으셨다. 다음 날 전화를 하셔서는 '자네...주방에 뭐 있더라. 찾아보시게!'하고 툭 끊으셨다. 무뚝뚝한 아버지를 알기에 어머니는 검은 봉지에 담긴 단감을 보면서 미소지으시고는 했다.
1980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여수로 향했다. 목적지가 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음식점으로 향했다. 잠시 뒤 하얀 빙수가 가득한 대접 한 그릇이 나왔다. 사각사각한 빙수를 숟가락으로휘이 저으며 내려가니 고소한 콩물이 나왔다. 콩물을 살짝 머금은 햐얀 국수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 해 여름 만난 인생 첫 콩국수였다.
여수 친구네 분식
콩국수를 좋아한다. 인생 첫 콩국수 기억이 강열했던 탓일까? 여름이면 콩국수가 땡긴다. 안타깝게도 가족들은 콩국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족들을 위한 요리가 아니다. 콩국수를 준비하면 나만 홀로 먹어야 한다.
휴일 오후 콩국수가 생각난다. 쿠팡을 통해 사두었던 콩물을 냉동실에 넣어 살짝 얼려둔다. 건강에 좋을까 싶어서 소면 대신 메밀면을 고른다. 국수가 팔팔 끓어오르면 찬물 한 컵을 붇는다. 찬물을 2차례 붇다보면 면이 삶아지는 시간이 된다. 대략 5분이 지나면 쫀득하게 메밀면이 삶아진다. 전분기가 가시도록 찬물에 탈탈탈 헹구어낸다. 그릇에 적당량을 담는다. 살짝 얼려둔 콩물만 부어내면 콩국수다. 오이채를 살짝 올려도 된다. 깨소금을 올리면 더 고소하다. 한창 콩국수를 자주 먹을 때는 콩물에 아몬드, 깨를 함께 갈아내었다. 고소함이 극대화되었다. 라면보다 쉽다. 라면을 먹을 때 느끼는 죄의식(나트륨 섭취)이 없다.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국수 한 그릇, 그것이 콩국수다.
나는 설탕파다. 보통 콩국수를 먹을 때 설탕을 넣기도 하고, 소금을 넣기도 한다. 유년의 첫 기억이 설탕이 들어간 콩국수였다. 그 뒤로는 콩국수 위에 설탕을 반 숟갈 털어넣어 달달한 콩물을 즐긴다. 장인 어른은 소금파다. 콩국수에 설탕을 치는사위가 마음에 안드시는 것 같지만 달달한 콩물이 더 좋다.
나는 겉절이파다. 고소한 콩국수를 한 젓가락 입에 가득 넣은 후에 몇 번 씹는다. 고소해진 입안에 겉절이를 한 쪽 넣는다. 고소함, 매콤함, 짭조름함이 입 안에서 어우러진다. 더운 여름 이만한 호사가 없다. 겉절이가 준비되어야 진정한 콩국수의 완성이다.
4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빙수를 가득 올린 콩국수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이토록 음식에 대해 강렬한 기억이 또 있었나 싶다. 더운 여름 오후가 되면 고소한 콩물을 머금은 국수 한 젓가락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아버지! 콩국수 드시려 가시죠!"라고 전화를 드렸을텐데... 부자(父子)의 콩국수 기억은 거기가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