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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쓰기도 양으로 승부하라

by 김선


두번째 : 양으로 승부하라



나는 한 달에 노트 한 권은 채우도록 애쓴다.
글의 질은 따지지 않고 순전히 양만으로 내 직무를 판단한다.
내가 쓴 글이 좋은 글이든 쓰레기든 상관없이
무조건 노트 한 권을 채우는 일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25일이 되었을 때 노트가 5장밖에 채워지지 않았다면
나머지 5일 동안 전력을 다해 노트의 나머지를 꽉 채우고야 만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용인 에버랜드 캐리비안 베이에는 대표적인 물놀이 기구가 있다. 높은 곳에 매달린 큰 양동이에서 물을 쏟아붓는 '워터폴 버킷’이다. 물을 쏟아붓기 위해서는 양동이 안에 물을 채워 넣어야 한다. 졸졸 흐르는 물이 일정량 채워져야 시원하게 쏟아져 내릴 수 있다.



다이슨 청소기, 날개 없는 선풍기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는 영국의 발명가 제임스 다이슨은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를 처음 개발해 시장을 휩쓸었다. 그가 먼지 없는 진공청소기를 위해 만든 시제품만 5,127개다. 5,126번의 실패를 경험한 것이다. 처음부터 명품 청소기가 나온 것이 아니다. 5,126번의 양을 채운 후에 최고의 결과물이 나온 것이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작가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루 4~6시간의 집필과 독서라고 한다. 그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생일, 독립기념일, 성탄절만 빼고 일 년 내내 글을 쓴다"라고 이야기를 한다. 사실이 아니다. 그는 생일, 독립기념일, 성탄절마저도 글을 쓴다고 후일 고백했다. 너무 일벌레처럼 보이는 것이 싫어서 쉬는 날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위대한 작품들은 절대적인 양을 채우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다.



진부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고백한다. 어쩔 수 없다. 진리라는 것은 때로는 평범하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진리이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堂狗風月)’이라는 속담이 있다. 서당개도 절대량을 채우면 풍월을 읊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된다는 말이다. 영어로는 Th e sparrow near school sings the promer(학교 옆의 참새가 입문서를 노래한다.)라는 비슷한 속담이 있다.



직장인이 글을 잘 쓰기 위해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양'이다. 입사하자마자 글쓰기 실력을 발휘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직장인 글쓰기는 일반적인 글쓰기와 다르기 때문이다. 아기가 말을 배우기 위해서는 수천 수만번 엄마 아빠의 말을 들어야 한다. 영어도 일정량을 채워야 듣기, 말하기가 된다.



강원국 작가는 <회장님의 글쓰기>에서 글쓰기 양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 글은 머리가 아니가 엉덩이로 쓰라고 조언한다. 책상위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수록 좋은 글이 나온다고 조언하고 있다. 박용환 작가의 <양에 집중하라>에서는 '양질전환의 법칙'에 대해 소개한다. 양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법칙이다.



양질전환의 법칙과 관련된 대표적인 자연 법칙이 얼음에서 물, 물에서 수증기로 성질이 변하는 과정이다. 상온에서 물은 99도까지는 액체 상태의 성질을 그대로 보존하지만 100도라는 임계점이 되면 수증기가 되어 질적으로 변화한다. 그런데, 여기서 100도라는 임계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물이 100도가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끓여왔다는 것이다. 반대로 물이 얼음이 되는 것도 같은 원리의 적용을 받는다.
<양에 집중하라> 박용환



갑자기 글쓰기를 잘하는 법은 없다. 오늘 쓰레기가 되더라도 한 페이지를 써야 한다. 쓰다보면 명품 보고서가 나온다. 20세기 최고의 천재 과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도 395개의 논문을 썼다. 그 중 사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극소수다.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논문이 다수이다.



중국 북산에 어리석은 노인(우공, 愚公)이 살고 있었다. 노인 집 앞에는 커다란 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다른 지역으로 갈 때 멀리 돌아가야 했다. 우공은 이 산을 옮겨서 산을 돌아서 가야 하는 불편을 덜고자 했다. 그 때 나이가 90세였다. 우공은 자식들과 함께 산의 돌을 깨고 흙을 파서 날랐다. 주변에서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비웃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조금씩 흙을 퍼서 날랐다. 옥황상제가 우공의 정성에 감동해서 그 산을 옮겼다고 한다. 유명한 고사성어 우공이산(愚公移山)이다.



"수업 첫날 도예 선생님은 학급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작업실의 왼쪽에 모인 조는 작품의 양만을 가지고 평가하고, 오른편 조는 질로 평가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평가방법은 간단했다. 수업 마지막 날 저울을 가지고 와서 '양 평가' 집단의 작품 무게를 재어, 그 무게가 20킬로그램 나가면 'A'를 주고, 15킬로그램에는 'B'를 주는 식이다. 반면 '질 평가집단의 학생은 'A'를 받을 수 있는 완벽한 하나의 작품만을 제출해야 했다. 자, 평가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가장 훌륭한 작품들은 모두 '양 평가' 집단에서 나왔다. '양' 평가 집단이 부지런히 작품들을 쌓아 가면서 실수로부터 배워 나가는 동안, '질' 평가 집단은 가만히 앉아 어떻게 하면 완벽한 작품을 만들까만 궁리하다 종국에는 방대한 이론들과 점토 더미 말고는 내보일게 아무것도 없게 되고 만 것이다."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Art and Fear)>, 데이비드 베일즈



"어떤 일을 마무리했다고 그것이 곧 걸작이 되는 건 아니다. 나는 책을 100권 이상 만들어 냈다. 물론 모든 책이 잘 나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책들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이 책을 쓸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피카소는 1,000점 이상의 그림을 그렸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피카소의 그림을 3개 이상 알고 있는 것이다."-<린치핀>, 세스 고딘,



2015년 6월 학술지 Frontiers in Psychology에 발표된 논문이 있다. 뉴멕시코 대학의 신경과학자와 심리학자가 발표한 논문으로 '창조성에서는 양이 질을 양산한다'(원문 : Quantity yields quality when it comes to creativity) 라는 제목이다. 이 논문에 의하면 아이디어의 질과 아이디어의 양이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분석했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량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신이 회사에서 멋진 아이디어가 담긴 글쓰기를 하고자 한다면, 갑자기 하늘에서 아이디어가 내려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일정량의 글을 쓰고 또 써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초안을 두려워하지 말라


글쓰기에는 초안이 있기 마련이다. 초안을 두려워하지 말자. 초안은 마음이 가는 대로 써도 된다. 틀을 정하고 작성하면 고정관념에 매이게 된다. 생각의 흐름을 따라 작성하라. 생각이 있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다보면 생각이 정리된다. 자리에 앉아서 생각을 멈추지 말고 부지런히 써보아야 한다. 계속 생각을 써내려가라. 결국은 글이 모이고 모여야 보고서가 완성이 된다.



우리가 평범하다는 것을 인정하자.


우리가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임을 인정하자. 처음부터 대한민국의 경영계의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글쓰기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위대한 글쓰기를 하라고 하면 부담이 되어 못쓴다. 그저 주변의 작은 것들을 바꾸는 글쓰기를 하면 된다.


필자는 회사 기획실에 근무할 때 조직문화를 담당했다. 처음에는 기획실 내부의 조직 문화 변화를 위한 보고서를 썼다. 규모가 작으니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점점 켜져서 전사를 움직이는 글쓰기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라.



글쓰기에 필요한 자질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이다.


마음이 위축된다. 한없이 낮아진다. ‘내가 제대로 아는 것일까’하는 의심이 든다. ‘내가 이런 내용을 써도 되는 것일까’하는 마음이 든다.


글쓰기를 할 때 이런 마음이 들지 않는가? 당신을 향한 스스로의 의심을 걷어버려라. 당신은 이미 쓸 준비가 되어 있다. 필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일단 쓰기 시작해야 한다.



당신의 글쓰기를 도울 자료의 양을 채워라


업무와 관련된 자료들을 수시로 모아두어야 한다. 당신이 작성한 글을 모아 두어야 한다. 회사에서 당신의 보고서를 참고한다고 해도 표절이 아니다. 오늘 쓴 글은 내일 당신에게 힘이 된다.


늘어가는 뱃살을 보면서 운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코로나로 헬스장 이용이 어려웠다.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철봉을 잡았다. 80kg이 넘는 거구를 팔이 들어올리지 못했다. 지구의 중력이 무서운 것을 제대로 느꼈다. 땅이 몸을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그날부터 철봉에 매달리기를 했다. 그저 매달리기만 한 것이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이 주가 지나니 매달리기가 조금 수월해졌다. 슬쩍 몸을 잡아당겨보았다. 몸이 쓰윽 하고 철봉을 향해 올라가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개가 되고 두 개가 되고 열 개가 되었다. 운동에도 양이 필요한 것처럼 글쓰기에도 양이 필요한 것이다.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오늘 당신이 채운 작은 글 하나가 내일 팀을 움직이는, 회사를 움직이는 멋진 글쓰기가 될 것이다. 하루 몇 줄이라도 꾸준하게 채워야 한다. 오늘 하루 양을 채우는 글쓰기를 하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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