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 Jan 03. 2021

♨6. 길거리 토스트의 추억

벌써 25년 전이다. 대학교 3학년 때 휴학을 했다. 신림동에 자리잡고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정말 후회없이 공부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지독하게 공부했다. 합격해서 세상을 바꿀 줄 알았다. (누구나 그런 시절이 있겠지...) 아쉽게도 실패였다. 3년 연속 낙방하고 취업의 길로 들어섰다.


아버님의 사업실패와 장기간 병환으로 인해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가난한 고시생이었다. 늘 출출했다. 고시원 앞에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포장마차가 있었다. '길거리 토스트'는 가난한 고시생에게 싼 값에 든든한 한 끼가 되어주었다. 간식이 되어주었다. 천 원이었던 것 같다.


양배추와 당근이 두툼하게 들어간 계란 부침,

마가린에 고소하게 구워진 식빵,

설탕이 녹으면서 케첩과 함께 버무려지는 달콤새콤한 소스...

 

추운 겨울에도 속을 따뜻하게 채워준 고마운 음식이었다. 할머니는 '젊은 놈이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면서 계란 속을 조금 더 두툼하게 부쳐주시기도 했다.



아빠표 길거리 토스트


25년이 지났다. 할머니의 포장마차 길거리 토스트의 맛은 아빠를 통해 아이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일 아침 아빠가 하는 브런치 메뉴 중 가장 많이 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요리가 간단하면서도 맛있다. 휴일 아침에 먹기에 가볍고도 든든하다.


양배추와 당근을 다각다각 최대한 얇게 썰어낸다. 채소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토스트에 들어가는 채소는 잘 먹는다. 계란 4개를 깨서 넣고 휘리릭 섞어준다. 부침으로 구워낸다. 빵은 마가린이 아니라 버터에 굽는다. 버터는 '치이익' 소리를 내며 프라이팬을 달군다.

'가난한 고시생이 참 출세했다. 비싼 버터로 빵을 굽다니...'


잘 구운 빵에 계란 부침을 올리면 끝이다. 소스는 아빠 맘대로이다. 설탕 약간, 케첩, 마요네즈, 꿀, 머스터드 소스를 기본 베이스로 바른다. 길거리 토스트보다 많이 세련되어졌다.

치즈도 한 장 턱하니 올린다. 냉장고에 오이피클이 있으면 같이 올리면 뒷맛이 개운상큼하다. (피클은 노브랜드에서 한 병에 1,980원이다. 저렴해서 쟁겨놓고 쓰고 있다.)


아이들이 커서 나중에 길거리에서 토스트를 먹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아빠표 토스트 맛을 추억할까? 할머니는 지금도 고시원 앞에서 토스트를 굽고 계실까? 아니면 따뜻한 아랫목에서 손주 재롱을 보고계실까? 오늘은 왠지 뜨거운 철판에 마가린으로 구워내던 길거리 토스트의 고소한 향이 코끝에 맴돈다. <끝>


<아빠표 길거리 토스트>
매거진의 이전글 ♨5. 아빠도 떡국 끓일 줄 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