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 Jan 07. 2021

소심한 4:57분형 인간

직장인에게 기상 시간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다. 


20년 이상 직장생활을 했지만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뜻한 이불 속을 박차고 나와 차가운 새벽 공기에 몸을 맡기는 것은 정신적 에너지가 엄청나게 소모되는 작업이다.


2003년경 <아침형 인간>을 읽으면서 왠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강해졌다. '잠을 넉넉하게 자고 업무 시간에 맞추어 출근하면 실패'라는 프레임에 갇힌것 같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잡는다', '성공한 사람들은 새벽에 일어난다.'와 같은 오래된 근거없는 메시지들이 직장인의 이른 시작을 부추긴다.



솔직히 새벽 기상에 대한 은근한 사회적 압박을 거부할 용기는 없다. 아침형 인간 만들기에 슬쩍 발을 담근다. 아침형 인간이 되려고 노력해 본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성공은 해보고 싶다.' 아침의 편안함을 담보삼아 성공의 달콤한 과실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혹시 새벽에 안 일어나면 성공 못하는 것 아닐까?' 하는 마음이 새벽을 열게 하는 것이다. 나는 귀가 얇은 중년이다.


20년 동안 꾸준하게 새벽을 열었는데도 불구하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사는 것을 보면 '새벽기상'한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니면 '20년 동안 직장생활 한 것'을 나만의 성공이라고 정의해야 한다.



소심한 4:57분형 인간


내 기상알람은 4:57, 5:00, 5:05, 5:17, 5:30이다. 무려 5번에 걸쳐서 설정해 둔다. 기상 시간에 대한 집착이다. 이 정도면 강박관념 수준이다.


특히 4:57분 기상알람은 나만의 복잡하고 유치한 마음이 담겨있다.

'5시에는 일어나고 싶다.' 내가 알람을 듣고 스프링처럼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안다. 그래서 4:57분이다.

'5시에 알람을 설정해두는 사람들이 많겠지? 나는 그럼 3분 먼저 일어날테다!' 그래서 4:57분이다.

웃긴 것이 4:57분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거의 두번째 알람에 일어나게 된다.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 중이다.

오늘은 5:17분 알람에 일어났다. 알람을 3번이나 해제하고 다시 잠들었다.

'오늘은 사무실로 출근 안 하잖아. 출근 시간 만큼 더 자도 돼!'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했다. 신께서 '자기 합리화'라는 것을 선물로 주시지 않았다면 죄책감에 끊임없이 고통받았을 것 같다.


그래도 오늘은 새벽에 일어나서 브런치에 '기상시간'에 대한 글을 올리고 있다. 그럼 나름 성공한 아침이다. 의미있는 하루다. '그럼 아침형 인간이 작은 성공을 가져다 준 것일까?' 복잡한 마음이다.


당신의 아침은 어떤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