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 Oct 07. 2023

[34] 유언을 쓴다. 여보 고마워

2011년 인생 첫 해외출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첫 출장지가 인도였다. 출장을 준비하면서 사무실에서 아내에게 메모를 쓰기 시작했다.

'여보, 인도 출장 중에 혹시 잘못되면 내 수첩의 자산 목록을 꼭 참고해.'

쓰다 보니 아내에게 할 말들이 더 생각났다. 글이 길어졌다.

'나와 결혼해 주어서 고마워. 많이 행복했어'


아이들에게 할 말도 생각났다.

'사랑하는 딸, 아빠의 딸로 태어나주어서 고맙고 사랑한다.'

이러다 보니 메모 한 줄이 3~4페이지 장문의 글이 되었다. 가족에게 남기는 유언이 되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절로 났다. 사무실에서 메모 한 줄을 쓰기 시작하던 40대 중년 아저씨는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가 펑펑 울었다.



인생의 마지막 날은 반드시 찾아온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은 반드시 찾아온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당신은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회사에 아직 다 못한 일들이 있는데...”

"돈을 더 벌어야 하는데..."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회사 일과 돈이 당신의 모든 가치는 아니라는 것이다.

유언을 쓰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필자도 실제 유언을 써보니 적어도 ‘회사 일과 돈’이 인생의 목적은 아니었다. 직장에서의 승진과 성공이 인생의 최종 목적이 아니었다. 가족이 더 중요한 가치이자 삶의 목적임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유언은 남은 가족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다.


당신은 '유언’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연상되는가?

- 인생 마지막을 앞둔 사람이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일어날 문제를 피하기 위해 정리하는 문서?

- 재산이 많은 사람이 재산을 분배하는 절차?

평범한 사람과 그다지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유언이 죽음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꺼릴지도 모르겠다. 심지어는 재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유언을 쓰기 전에는 그랬다.


유언은 특별한 사람이나 죽음을 앞둔 사람이 쓰는 글일까? 그렇지 않다. 평범한 사람들도 유언을 써야 한다. 가족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다. 세상에 남은 사람들에게 나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마지막 기회다.

사람은 태어난 이상 누구나 끝을 향해 달려간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반드시 마지막 날을 맞이한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당황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기보다는 아직 여유가 있을 때 미리 유언을 써 두는 것이 좋다.



유언은 나를 위해 쓰는 글이다.


필자는 유언을 쓰면서 많은 것을 발견했다. 가족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자녀들에게 간절한 아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뒤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생각을 해보자. 죽음을 앞두고 가족들에게 단 한 마디만 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 중에서 고르고 고를 것인가?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내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유언을 쓰는 과정은 ‘자신과 나누는 조용한 대화’가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었다.


유언을 쓰기 위해 펜을 잠시 멈추고 내 삶을 돌아보았다. 뒤돌아보니 일상에 치여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벌써 50년이 흘렀다고?'

‘나는 그동안 잘 살아온 것일까?’

'지금 나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세상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죽음을 앞에 두면 누구나 솔직해진다. 위선과 거짓을 벗게 된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진실된 자신을 대면할 수 있다.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가장 소중한 것에 집중하자는 다짐을 하게 된다.



유언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중요한 것은 수첩에 적어둔 유언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언을 쓰고 나면 새로운 후반전이 시작된다. 유언에서 느낀 감정과 다짐을 기반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자고 결심하는 것이다. 필자도 유언을 쓰면서 많은 것을 다짐하게 되었다. 수첩에서 유언을 적은 공간을 마추지면 절로 숙연해진다.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자고 자신을 다독이게 된다.


유언은 계속 수정되어진다. 사람은 계속 성장한다. 변화해 간다. 생각도 바뀐다. 유언에 새로 적을 내용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유언을 업데이트한다. 유언은 죽는 그 순간까지 완성되어 간다.



유언은 어떻게 쓰나요?


유언에 특별한 양식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유언을 세상에 남은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보내는 편지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여 적어내려가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를 하고 싶다면 필자의 유언 형식을 공개하도록 하겠다.


1.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

아내, 자녀들에게 각각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었다. 감사, 슬픔에 대한 위로, 앞으로의 남은 인생에 대한 격려의 메시지를 담았다.


2. 자산 정리

필자는 20년 전 부친이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자산정리에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이 있다. 필자의 유언에는 자산 현황에 대해 정리를 해두었다. 아내와 자녀들에게 자산 분배도 나름대로 해주었다.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가족들이 혼선을 겪지 않도록 명확하게 의사표현을 했다.)


3. 장례절차 및 추가 의사표현

죽음과 관련하여 장례절차 및 장기 기증에 대한 생각을 막연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언에 명확하게 표현해 두면 남은 가족들의 혼란을 예방할 수 있다. 가족들은 망자의 유언을 존중하여 실행하면 된다.

필자의 경우는 묘지를 남기거나 납골당에 안치하지 말라고 했다. 가급적이면 수목장으로 해달라고 했다. 죽어서까지 살아있는 사람들의 땅을 차지하고 싶지는 않았다.

할 수 있다면 장기는 기증을 해달라고 했다. 썩어 없어질 육신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얼마나 의미 있겠는가? 뇌사 상태에 빠지는 경우에는 생존을 위한 연명치료는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죽음에 이르러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하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유언에 의사를 남겼다.

  




눈을 감아보자. 상상을 해보자. 당신은 내일이면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 펜을 든다.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 내려간다. 감사, 위로, 격려의 메시지를 하얀 종이 위해 꾹꾹 눌러 담는다. 쓰다 보니 후회가 막심하다. '조금 더 잘할걸... 조금 더 의미 있게 살아갈걸...' 눈물이 앞을 가린다.


눈을 떠보자. 다행히 당신에게는 아직 인생의 시간이 남아있다. 지금 유언을 써보자. 30년 뒤. 40년 뒤, 50년 뒤에 할 후회를 지금 해버리자. 그리고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가기로 다짐해 본다. 그것이 유언의 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33] 건강도 노트로 관리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