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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Nov 05. 2023

나를 혼내는 상사들이 사라지고 있다.

20대 신입사원 시절이었다. 업무상 큰 실수를 했다. 신입사원의 실수가 크게 번져 노사 간 이슈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상사의 호된 질책이 이어졌다.


"김 OO 사원, 정신을 어디다 팔고 다니는 거야?"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상사의 호된 질책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화장실로 달려갔다. 울어서는 안 되었다. 이겨내야 했다. 찬 물로 세수를 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다시 일어섰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이불 킥할 만큼 부끄러운 기억 중의 하나다.


20대의 김 사원은 선배들의 질책, 조언, 나무람을 먹고 무럭무럭 성장했다. 

50대의 노련한 김 부장이 되었다. 일명 고참(선임)이 되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혼내는 선배들이 사라진다. 쓴소리를 해주던 상사들이 적어진다. 혼내는 사람이 없으니 처음엔 좋았다. 마음 졸일 필요가 없으니 편했다. '직장생활이 갈수록 좋아진다'라고 생각한다.



쓴소리하는 상사가 적어진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요즘은 혼자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실무자 시절에는 보고만 잘하면 상사들이 의사결정을 했다. 의사결정에서 자유로웠다. 리더가 되고 나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려운 의사결정은 부담이 됐다. 올바른 결정인지에 대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책임을 져야 한다. 실무자 시절에는 선배들이 우산이 되어주었다. 책임을 져 주었다. 상사들은 책임을 걱정하지 말고 한 번 도전해 보라고 격려해 주었다. 지금은 책임을 져주고 우산이 되어주는 사람이 없다. 내가 오롯이 책임을 져야 한다. 후배들의 우산도 되어주어야 한다.


혼을 내기도 했지만 나를 든든하게 지지해 주던 상사들과 선배들이 그립다.



쓴소리 해주던 선배들이 그립다.


나를 쓴 소리를 해주던 상사들이 점점 줄어든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모르겠다. 선배가 있다면 묻고 싶은 마음이다. 상사의 호된 쓴소리에 정신을 번쩍 차리고 싶을 때도 있다. 

지금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상사들은 바쁘다. 김 부장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내가 알아서 결정해야 한다. 알아서 일해야 한다. 그래서 방법을 찾는다. 김 부장을 혼내주는 사람을 찾아 나섰다.


첫째, 부서원들에게 혼난다. 후배들에게 혼난다. 직원들이 나에게 쓴소리를 하면 '고맙다'고 한다. 절대 반박하지 않는다. 반박을 해버리면 아랫사람들은 입을 닫아버린다. 입을 닫고 귀를 열어서 듣는다. 

중국 직원 중 한 명이 쓴소리를 건네왔다. 

"김 부장님! 너무 남자 직원들과만 소통하는 것 같습니다. 여직원들과도 소통을 해주세요."

'아 내가 그랬구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소통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후배들이 건네는 쓴소리도 감사한 마음으로 듣는다. 얼마 전 후배가 쓴소리를 건넸다. 

"형! 너무 자기 계발서만 편식하지 말고 인문 교양서도 좀 읽으세요!"

후배의 조언이 일리가 있다. 독서 리스트에 인문 교양서를 추가했다. 

듣기에 불편하다고 귀를 닫아버리면 변하지 않는다.


둘째, 스스로 혼낸다. 나를 나무라는 상사들이 없으니 스스로 혼내려고 노력한다. 

'이 일은 이렇게 하면 안 되잖아!'

'이건 내가 권한이 있다고 해서 이렇게 처리하면 안 되지!'

스스로 엄격한 잣대를 만든다. 정한 기준에 달할 수 있도록 스스로 독려한다.


셋째, 책에서 길을 묻는다. 쓴소리를 해주는 선배들이 없으니 요즘은 책을 좀 더 읽는다. 좋은 책을 만나면 혼쭐이 난다. 책에서 호된 가르침을 듣는다. 저자가 귀에 대고 쩌렁쩌렁 혼내는 것 같다.

최근 <오십에 읽는 장자>를 읽고 호된 가르침을 받았다. 

'너는 오십에 왜 그렇게 사니?'라고 호통을 치는 것 같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좋은 책을 만나면 혼쭐이 난다.




나무라는 사람이 줄어든 지금 내 스스로 생각을 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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