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성에 대하여]
황 차장은 보고서를 잘 쓰는 편이다. 문제는 주변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주변에서 조언을 해주어도 자신이 쓴 글만을 고집한다. 누가 조언이라도 해줄라치면 날을 세우고 설전을 벌인다. 사람들은 황 차장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황 차장 글쓰기는 발전이 없다. 항상 제 자리를 맴돈다. 다양한 분야의 의견을 듣지 못하다 보니 항상 한계를 노출한다. 현장에서 실행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김 과장은 글쓰기를 하면 팀원들과 상의한다. 출력해서 보여 주거나 팀원들이 함께 이용하는 업무용 클라우드에 올려둔다. 팀원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는다. 심지어 다른 부서 동료에게 자신의 글쓰기 초안을 공개하기도 한다. 다양한 조직과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글을 퇴고해나간다. 항상 김 과장의 글은 완성도가 높다. 상사가 고민할 만한 내용이 대부분 담겨있다. 현업 부서에서도 김 과장 글쓰기에 대한 이해도와 수용도가 높다. 자신들의 생각이 이미 담겨있기 때문이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것이 로마인이라고,
로마인들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만이 그토록 번영할 수 있었을까요.
커다란 문명권을 형성하고 오랫동안 그것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로마인 이야기 1권 서문>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로마 사회의 개방성에서 찾았다.
로마는 수많은 정복을 통해 이민족과의 접점이 생겼다. 그들은 이민족들 배제하지 않았다. 이민족들을 로마 안으로 끌어 들었다. 패자까지 포용하는 로마인의 개방적 사고가 로마 천년을 융성하도록 만들었다.
“고대 로마인이 후세에 남긴 진정한 유산은 광대한 제국도 아니다. 2천 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서 있는 유적도 아니다. 민족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인종도 다르고 피부색이 다른 상대를 포용해 자신에게 동화시켜 버린 그들의 개방성이 아닐까?” 하고 시오노 나나미는 이야기하고 있다.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1800년대 일본과 조선은 선택의 기로에 있었다. 1868년부터 일본은 메이지(明治)유신을 통해 '개방'을 선택한다. 조선말기 우리는 '폐쇄'를 택했다. 물론 당시 정권자를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이 선택이 대한제국으로 하여금 일본 식민지를 경험하게 만들었다. 100년 이상 일본의 그늘 아래에서 그들을 부러워하면서 살게 만들었다. 서구의 앞선 지식과 문물에 눈과 귀를 닫았던 우리는 6.25 전쟁 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변방의 힘없는 나라'로 살 수밖에 없었다.
2021년 현재 한국은 엄청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현대차, 삼성, LG, SK와 같은 한국의 주요 기업들이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서 선전하고 있다. 삼성은 누구나 인정하는 비즈니스계의 거인이다. 한국은 전기차 배터리 글로벌 1위의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다. LG화학, SK이노베이션, 삼성SDI가 미래 전기차배터리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그동안 취약하다고 여겨졌던 바이오 산업에서도 한국기업의 저력을 확인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자율주행 연구를 위해 자율주행기술을 개발하는 기업 앱티브와 '모셔널'이란 이름의 40억 달러 규모의 조인트벤처를 설립했다. 지난 12월에는 로봇 스타트업인 '보스턴다이나믹스'를 인수해서 재계를 놀라게 했다. 전기차배터리 업체인 LG, SK, 삼성의 경영진을 만나 협업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클라우스 슈바프(Klaus Schwab)는 빅 데이터, 인공지능, 로봇공학 등 새로운 기술 혁신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기업들이 대비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현대차그룹은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는 데 있어서 '개방성'을 기본 전략으로 삼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로마의 성공 DNA인 '개방성'을 비즈니스에 적용하고 있다. 홀로 성장하려 하지 않는다. 필요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과 손을 잡고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미래에 대한 도전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 초 애플이 현대차그룹에게 애플카 협력을 제안한 것은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현대차그룹의 '혁신가 이미지'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 성사 여부를 떠나서 한국 기업의 위상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애플이 미래 협력을 제안할 정도로 한국기업의 위상이 높아졌다.
기업도 천년 제국의 로마의 성공 DNA '개방성'을 이식하고 있다. 로마의 '개방성'을 글쓰기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글쓰기의 개방성을 높이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실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동시대 천재 미켈란젤로와 달리 공동으로 작업을 했다. 역할 분담을 해서 공동으로 작업하고 제자들에게도 그림을 그리게 했다. 그는 협업을 통해 위대한 업적과 노트를 남긴 것이다. 천재의 이면에는 동료와의 협업이 자리잡고 있었다.
<대통령의 글쓰기>의 작가 강원국은 참여정부 때 연설비서관이 됐다. 연설비서관은 행정관이 쓴 글을 고치는 사람이다. 그는 고칠 자신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다 함께 모여 고치고 쓰자고 제안했다. 각자 초안을 쓰고 5명이 함께 모여 고치는 것이었다. 이러한 협업하는 글쓰기가 좋은 연설문을 쓰는 힘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최근에 '글로벌 인사노무환경 분석'에 대한 글을 쓴 일이 있다. 주제를 분류하고 목차를 정리했다. 후배 2명과 함께 주제별로 나누어서 글을 썼다. 모여서 수정하고 다듬었다. 완성된 보고서는 현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협업을 통해 좋은 보고서를 만들어낸 것이다. 혼자 썼더라면 엄두가 안나는 프로젝트였다.
나누어서 쓸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협업하는 글쓰기를 하려고 노력해보자. 백지장도 맞들면 낫고, 백지 보고서도 맞들면 명품보고서가 된다.
매번 협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경우는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직장에서 혼자만의 생각으로 나오는 글과 보고서는 많지 않다. 모든 정보를 개인이 독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서만 쓴 글은 품질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실제 실행을 해보면 문제가 발생한다. 동료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글쓰기 주제를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신이 글쓰기를 시작하면 '이러한 글을 쓰고 있다'고 주변에 공개하는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한다. 물론 매번 모두가 좋은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마음을 열고 동료들의 아이디어와 생각을 들어보는 것이다. 동료와 소통을 통해 자신이 쓰는 글의 방향성이 맞는지 끊임없이 점검해나가는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지도 못한 좋은 글감이 발견되기도 한다.
코로나 19 확산 이후 '해외법인 특별 관리'에 관한 글을 쓸 때 그랬다. 주제를 공개했다. 귀를 열고 팀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해외법인 주재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좋은 아이디어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의 이야기를 보고서에 담았다. 현장에서 실제 적용이 원활했음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로마는 정복한 부족을 죽이지 않았다. 그들을 수용하는 개방성을 넘어서서 로마의 시민으로 받아들였다. 심지어는 그들을 로마를 지배하는 지배계급으로 편입시키고, 원로원 의석까지도 함께 나누었다. 이것이 로마의 위대한 점이다.
비슷한 시기 융성했던 아테네의 경우 폐쇄적이었다. 부모가 아테네인이어야 시민권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조차도 마케도니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시민권을 얻지 못했다. 이것이 위대한 로마와 평범한 아테네를 가르게 된 요인이 되었다.
로마의 개방성을 직장인 글쓰기에 적용하는 핵심 스킬이 있다. 글을 쓰면 공이 생긴다. 진정한 글쓰기의 개방성은 그 공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직장생활은 평가를 기반으로 한다. 그 근저에는 경쟁이라는 구도가 자리 잡고 있다. 혼자서만 공을 차지하면 다시는 협업을 할 수가 없다. 직장인에게 밥줄의 문제이고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혼자서만 공을 차지하려고 하면 동료들이 귀신같이 안다. 상사에게만 살짝 '제가 다 썼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해도,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 부서 내에 다 퍼진다. (나중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반면에 상사에게 이번 글은 '박 대리와 같이 썼습니다. 한 과장의 도움이 컸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반드시 동료들의 귀에 들어간다. 공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라는 공감대가 생긴다. 서로 앞다투어 당신과 아이디어를 공유할 것이다. 당신과 글감을 나누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된다. 당신은 공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로마가 그랬다. 로마가 가는 정복의 길에 부족들이 서로 앞다투어 충성을 맹세했다. 로마는 싸우기 전에는 승리했다. 로마가 공을 함께 나누는 것을 알기에 서로 앞다투어 로마에 몸을 의탁한 것이다.
하나 더 고민할 것이 있다. 글쓰기가 실패할 수 있도 있다. 상사의 질책이 있을 수도 있다. 과오가 있을 때는 내가 책임지는 것이다. "이 생각은 박 대리 아이디어인데, 별로인가 보네요"라고 상사에게 이야기를 하면 박 대리는 다시는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지 않는다.
로마는 폐쇄성 대신 개방성을 택했다. 그 개방성이 세계 역사에 전무후무한 로마의 부흥을 이끌었다. 위대한 천년 기업 로마는 당신에게 글쓰기의 비법에 대해 살짝 이야기하고 있다. 당신의 글쓰기에 폐쇄성을 택할 것인가 개방성을 택할 것인가? 이제 당신의 선택이다.
[P.S]
휴일 아침 <로마인 이야기>를 읽다가 함께 나누고 싶어서 정신없이 써보았습니다.
당신과 같이 완성하려고 합니다. 언제든지 조언해주세요. 글에 반영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