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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Mar 21. 2021

동료를 죽이는 글쓰기를 하는 자

주재원 시절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2018 러시아 월드컵이 준비되고 있었다. 필자는 당시 공장홍보팀 업무도 담당하고 있었다. 지역언론을 통해 국가대표팀 응원광고를 냈다. 언론사 법무팀을 통해 광고에 법적 문제가 없다는 것을 사전에 확인받고 광고를 내보냈다. 반응이 좋았다. 축구에 워낙 관심이 많은 나라라서 뜨거운 반응이 왔다.




본사에서 연락이 왔다. '필자가 월드컵 국가대표팀 초상권을 침해했다'는 지적이었다. 판매 홍보담당 P 차장이 본사로 문제를 지적하는 보고서를 보내왔다는 것이다. '아차 싶었다.' 필자 잘못으로 회사에 손실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하니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판매 홍보담당 J 차장 보고서 주요 내용]
공장 홍보팀에서 광고를 잘못했다.
크라이슬러사의 월드컵 대표팀 독점초상권을 침해했다.
크라이슬러사에서 항의 레터가 왔다.
향후 엄청난 손해배상 청구가 예상된다.


월드컵 응원 광고를 게재한 지역 언론사에 문의했다. 현지 언론사 법무팀 입장은 확고했다. 공장 홍보팀 광고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현지인 홍보팀장을 통해 직접 크라이슬러를 접촉해보았다. 다행스럽게도 크라이슬러 홍보팀에 우리 홍보팀장의 지인이 있었다.


진실이 드러났다. 크라이슬러사는 공장홍보팀 월드컵 응원 광고를 보고 항의한 것이 아니었다. 판매홍보팀 광고를 보고 항의한 것이었다. P 차장은 자신에게 불똥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해 희생양을 찾았던 것이다. 본사로 '공장홍보팀 광고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는 허위 보고를 한 것이었다. 동료를 죽이는 글쓰기를 한 것이다. 


나는 진실을 알게 되었고 법인장을 찾아갔다. P차장 허위보고를 본사에 공식적으로 문제삼겠다고 이야기했다. 필자도 P차장의 허위보고에 반격하는 글쓰기를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법인장은 본사 보고를 허락하지 않았다. 사건이 확대되어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직속 상사가 허락하지 않으니 임의로 보고서를 작성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본사에는 구두로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을 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크라이슬러에서는 더 이상의 항의는 없었다. 


'동료를 죽이는 글쓰기를 했던 P차장은 어떻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까?'

'나는 그 때 어떤 글쓰기를 해야 했을까?'

'법인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반격의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을까?'

내게는 영원한 숙제로 남은 글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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