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어른과의 대화
몇 십년 간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로 지내온 여든의 어른 앞에서 나는 아주 어려졌다. 그곳엔 노쇠한 사람은 없었고, 자신감과 통찰이 빛나는 어른만 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그래서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오랜 세월을 겪어 더 잘 알고 있는 사람. 그 어른이 뿜어내는 기운에 자꾸만 눌렸다.
곧 가루가 될 것만 같았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최선을 다해 단어를 골랐다. 더 정중하고 더 정확해서 설득력 있는 단어. 그러면서 계속 기도했다. 좋은 단어가 떠오르길, 실언하지 않기를, 제발 진심이 닿기를. 그런데도 아무말이나 튀어 나왔다. 더듬거리다가 못한 말도 있었다. 말 좀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렇게 말이 어려울 수 없었다. 나의 단어는 힘이 하나도 없어서 설득은 못하나, 그 힘 없는 단어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는 있었다. 단어의 무게를 이기진 못한 나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저 그 분이 하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착한 얼굴로 웃었다. 측은지심 말고 감히 바랄 수 있는 게 없었다.
세상에는 최선과 노력으로 안되는 일이 있다. 간혹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그렇다. 내게 열리지 않는 그 마음 앞에서 내가 얼마나 아무 것도 아닌지 한 시간 동안 백 번쯤 깨달았다.
‘이 대화를 잊지 말아야지, 이 시간을 꼭 기억해야지. 오늘 일기 써야지. 그리고 꼭 평소에 기도해야지.’
하지만 어느 새 한 달이 지났고, 간사해진 기억은 자꾸 가물거리기 시작한다. 가루가 될 것만 같았던 시간이 믿기지 않을 만큼 일이 순탄하게 흘러 더 그랬다. 더 간사해 지기 전에 그 기억을 글로 남긴다. 그리고 이제 묵히지 않고 그 때 그 때 쓰기로 다짐한다.
+ 고마워요. #목요일의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