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요즘 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콩콩 Sep 25. 2018

내가 슬럼프라니?!

얼마 전 목요일의 글쓰기 1주년 행사에서 멤버들이 아가며 지난 1년 동안 목글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이야기했다. 하나같이 글쓰기가 얼마나 늘고, 얼마나 행복했으며, 그래서 어떻게 달라져는지를 고백했다.

내 순서가 다가올수록 걱정이 됐다.

그 1년 동안 나는 목요일에 글을 완성한 날이 거의 없었다. 처음 몇 번의 목요일을 지나자 조금 속도가 잡히는가 싶었지만 목요일이 거듭될수록 무엇을 쓸지 어떻게 쓸지 왜 쓰고 있는지 갈피 잡기가 힘들었다. 목요일에 시작해서 그 주 주말에 끝나면 그나마 다행인 날들이 이어졌다. 그냥 넘어가는 목요일도 많았다. 표면상은 “바빠서”였지만 대부분 쓸 게 없 어서 이거나 쓰고 싶은 게 없어서였다.

목글 멤버들의 문장


목요일이면 같이 쓰기 시작해서 글을 완성하고 먼저 사라지는 멤버들을 볼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겨우 소재를 골라서 문단 두어 개를 썼을 뿐인데 벌써 다 썼다고??

나는 그 사이 글쓰기가 는 것 같지 않았다. 40편에 가까운 글이 쌓였으니 이전과 같을 수는 없겠으나 얼마나 달라졌는지도 실감이 안났다. 그저 쓰면 쓸수록 쓰기가 어려웠다.

재미나 감동은 커녕 내용도 없이 길이만 긴 글들이 완성되는 기분. 그럴바에야 오늘은 가볍게 두 문단만 쓰자! 하고는 결국 주절주절 묽은 똥을 배설하는 기분.






글쓰기를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발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짓기 대회만 있으면 글을 써서 냈다. 방학에도 일기를 밀리지 않았고, 중고등학교 때에도 3년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일기를 썼다. 수학 문제를 풀다가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울쑥불쑥 튀어나와 ‘수능만 끝나봐라!’ 하던 고3 시절을 지나 대학을 졸업할 즈음엔 소설가가 되어있을 줄 알았던 때도 있었다. 쓰고 싶은 마음과 쓰고 싶은 이야기가 늘 있었고, 때로는 너무 많았다.


힘들 때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스무살 무렵이었다. 인터넷 공간에 글을 게시하고 공유할 수 있던 세상이 열렸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글을 쌓아 나갔다. 사랑도 이별도 졸업이나 취업도 야근과 야근 또 야근은 글을 불렀다. 새로 만나는 힘든 일은 아주 많았고, 글쓸 거리는 넘쳐났다. 새벽 두 시에 퇴근하고 기어이 글을 쓰고 잠든 날들이라니. 그랬다. 그때 분명 그랬어.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취미도 아닌 특기를 “글쓰기”로 적어냈다. 정말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였다. 고작 2년 전까지도 이 깜찍한 특기를 적어 놓았었는데...


이제까지 그랬는데 왜지? 쓰는 게 왜 힘들지? 내 특기는 “글쓰기”인데. 쓰는 사람. 그게 내 정체성인데 왜?





혹시 나는 그저 그런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걸까. 어제와 오늘이 똑같고, 새로운 게 없고, 좋은 것도, 슬픈 것도 화가 나는 것도 없는 재미없는 어른. 무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 생각에 끝까지 가기에는 무디어져서 힘만 들고 그 힘듦을 극복하려는 의지는 자꾸 약해져서 그러는 건가.

처음에는 뾰족하던 마음이 동그래져서 그런 줄 알았다. 기분이 좋을 때와 안 좋을 때 격차가 크고 산만해서 늘 차분한 사람들을 동경하며 살았다. 이직을하고 생활이 좀 안정되면서 기분의 격차가 줄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그동안 쌓인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쪽이었는데 어느새 내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세상에 내게 이런 날이 오다니.

그럼 화날 때만 글을 썼더니 화가 안나니까 글이 안써지는 거란말야?

급기야 나는 ‘이별’이 없어서 영감이 안온다며 <내 꿈은 이별>이라는 망발을 쏟아냈다.


하지만 마음이 동그래진 것이 무엇이 문제일까. 그렇다면 글쓰는 사람들은 다들 울화병 하나씩은 가슴에 있어야 되겠지.

아마도 슬럼프는 잘 쓰고 싶은 마음과 자기검열에서 온 것 같다. 잘 써야해. 재미있어야 하고, 지루하면 안돼. 이건 자랑같아. 이건 너무 찌질해. 정말 이렇게 생각했어? 꾸미지마. 꾸미는 건 안되지만 이런 소재로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할 수 없어. 이건 후져. 이건 너무 복잡해. 이건 이제 지나서 못써.

거름망을 통과하여 살아남는 글감이 자꾸 줄고, 흥이 줄고, 그런데 내 옆에서 목글 멤버들은 계속 좋은 글들을 쌓아갔다.

초조했고, 비교하니까 더 안 써졌고, 급기야 쓰기가 싫었다. 하지만 이대로 글과 내 사이를 그냥 둔다면 돌이킬 수 없을만큼 멀어질 것만 같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이 내 인생에서 처음 만나는 글쓰기 권태기, 슬럼프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문제를 바로 보지 않으면 영원히 해결할 수 없을테니까.

결국 슬럼프를 인정하는 이 글 조차도 4주를 붙잡고 있지만 나는 슬럼프라는 놈에게 내 특기를 내어줄 생각이 없다.

슬럼프랄게 별로 없었던 심심한 인생이라 짐작이 틀렸을진 모르겠지만 모르긴 몰라도 시작만한 극복은 없지 않나? 그래서 나는 너무 사소하고 하찮아서 가치나 재미나 감동 근처에도 못가는 짧고 가는 글을 쓰기로 했다.


일단 한 번 해보기로. 그러기로






매거진의 이전글 필라테스 지루하지 않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