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에 귀를 기울이면
-배고픔을 대하는 자세
배고픔을 아주 싫어하게 된 건 스무살 때 였다
학원에서 강사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학교를 다니면서 두 시간 거리의 학원에서, 하루 6시간 주5일을 일하려던 그 때의 내가 기가 막히지만) 일하는 4시부터 10시까지 저녁시간이 없다는 것이 매우 충격적이었다. "저녁은 언제 먹나요?" 업무시간을 설명하는 원장에게 물었다. 고작 스무살이었던 나를, 아마도 싸게 마구 부려먹으려던 원장의 얼굴은 '그런 질문은 하는 건 네가 처음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원장은 탕비실에 컵라면이 있고 선생님들은 공간시간에 알아서 라면을 먹거나 외부 식당을 이용한다고 대답했다.
김치없는 컵라면
식사비는 커녕 저녁시간이 없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탕비실에 구비된 것이 오직 '컵라면' 이라는 것이 충격이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으나 그 때의 내게 라면은 정말 맛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먹으면 안되는 일종의 불량식품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선생님들에게 '라면'만 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밥은 몰라도 김치는 줘야지!!) 심지어 그 알량한 공강은 시간표에 몇 번 들어있지도 않았다.
돈을 안줘서가 아니라 밥을 안줘서
얼마 못가 일을 그만 두었다. 시험기간이라며 파트타임 강사인 나를 하루에 8시간을 일하게 하더니 주말출근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수당은 없거나 미미했다. 그만 둘 당시에는 말도 안되는 업무량이 가장 큰 이유였는데 시간이 지나자 업무량 보다 '배고픔'에 방점이 찍혔다. 먹을 시간과 먹을 거리만으로도 원장이 나를 포함한 선생님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것 같았다. 무릇 건강이란 제 때에 잘 먹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믿었기에 원장에게 모욕을 당한 기분이었다. 이후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밥'은 큰 기준이 되었다. 끼니 때에 일을 해야하거나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일은 시작하지 않았다.
-메뉴를 대하는 자세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사규로 점심시간을 보장받는 직장인이 되면서 '밥' 은 회사를 고르는 기준에서 자연스럽게 제외됐다. 하지만 밥 때에 먹는 건 여전히 중요해서 (왜냐하면 그 때 안 먹으면 배 고프니까) 식사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회의나 일을 요청 받으면 짜증이 나기도 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아닌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에 밥까지 제껴야 할 사건이 얼마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제 때에 먹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역시 무얼 먹느냐다. 허기만 대충 달랠 때도 있고, 다른 사람이 고른 메뉴를 따라가거나 메뉴를 고민하는 자체가 귀찮을 때도 있지만 대개 가장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
누가 싫은 것을 먹겠느냐마는
조금 유별나달까. 대부분의 끼니를 앞두고 오늘은 무엇이 먹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바로 대답이 튀어나올 때도 있지만 곰곰히 생각해야 할 때도 있다. 컨디션은 어떤지, 밥을 먹고 싶은지 면을 먹고 싶은지, 한식인지 양식인지, 지난 한 주간에는 무얼 먹었는지, 재정 상태는 어떤지, 가까운 곳에 그 음식을 하는 식당이 있는지 등등. 때로는 생각이라기 보다 나의 감정상태를 돌보는 일이기도 하고, 감각을 더듬는 일이기도 하다. 메뉴가 먼저 떠오르고 그 뒤에 생각이 따라 붙을 때도 있다.
식욕의 흐름
지난 주말 갑자기 안동국밥이 먹고 싶었다. 안동국밥을 먹어본 건 채 3~4번이 안되는데도 그랬다. 검색을 했더니 집근처에 안동국밥집이 있었다. 오 이런 행운이! 하지만 행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개업한지 얼마 안되어 보였는데 그새 폐업을 한 모양이었다. 감기기운 때문에 몸이 으슬으슬 춥고, 목구멍이 까칠해 자연 얼큰한 국물이 땡겼다. '오늘 안동국밥 꼭 먹어야 겠는데...' 비슷한 메뉴로 매운 우거지 갈비탕이 떠올랐다. 일이 유난히 고된 날 야근을 하며 먹던 우거지 갈비탕집이 근처에 있었다. 그러자 근처에 자주가던 식당이 하나 더 생각났다. 홍콩식당인데 왜인지 사천식 매운탕면을 잘하는 집이었다. 곧이어 상하이에서 먹지 못해 아쉬웠던 훠궈가 생각나더니 훠궈의 매운국물과 사천식 매운국물이 겹치면서 마음이 홍콩식당으로 쏠렸다.
해파리 냉채가 먹고 싶을 줄이야
다음은 해파리 냉채였다. 월요일에 또 갑자기 '어? 나 오늘 해파리 냉채가 먹고싶은데?' 라는 명령어가 입력되었다. 해파리 냉채가 먹고 싶은 건 생전 처음이었다. 화요일이 되자 급기야 오늘이 안 먹으면 안될 것 같았다. 그런데 예식장 뷔페 말고 해파리 냉채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어디란 말인가.
그러다 어느 재래시장 반찬가게에서 해파리 냉채를 팔았던 것 같았고, 그렇다면 망원시장이겠거니 싶어 시장을 다 뒤졌다.(방이시장이었던 걸까?) 하지만 해파리 냉채는 없었다. 결국 마트에서 해파리와 오이와 겨자를 사다가 만들어 먹고나서야 마음이 풀렸다. 갑자기 해파리 냉채가 먹고 싶었던 이유는 그 다음에 생각났다. 8월에 결혼식이 두 번 있었는데 첫 번째 결혼식에서 내가 예식장 뷔페에 올 때 해파리 냉채를 꼭 먹는다는 걸 깨달았다. 평소에는 먹고싶기는 커녕 떠오르지도 않는 메뉴인데 '어머, 나 이거 좋아하나봐.'하고 설핏 웃었다. 바로 다음 주에 있었던 두 번째 결혼식의 뷔페에 가서는 해파리 냉채부터 찾았다. 하필 그 뷔페에는 해파리 냉채가 없었지만... 내가 해파리 냉채를 좋아한다는 깨달음에 이어진 일종의 상실감이 어느 날 갑자기 해파리 냉채에 대한 욕구로 나타났나보다.
공복에 귀를 기울이면
거의 매일 먹고 싶은 것을 물어보며 나와 대화한다. 먹고 싶은 것이 있을 때 활력을 느낀다. 그리고 그걸 먹게 되었을 때 행복하다. 나조차도 이건 그냥 식욕으로 드러나는 욕구불만이 아닌가 싶지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아는 것은 기쁘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몸에 필요한 영양분에 따라 먹고 싶은 게 생긴다면, 지금 먹고 싶은 음식이 가장 몸에 좋은 음식일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이런 시덥잖은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해서 미안하지만 그저 공복에 귀를 기울일 때 건강과 행복이 찾아온다는 이야기가 쑥스러워 돌고 돌아 온 것이니 이해해 주길 바란다.
물론 이건 다 헛소리고 '배고파'와 '먹고 싶어'를 입에 달고 사는 나를 위한 긴 변명일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