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이 정해지면 힘이 솟는 스타일
나만 믿는 신이 있다. 이름은 '임박신'으로 어떤 때가 가까이 닥쳐옴을 의미하는 ‘임박’과 신(神)의 합성어다. 신을 만든 사람은 나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고, 그가 내게로 와 신이 되었달까. 믿음의 정도나 영험함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만나봤을 그 신(神), 나는 ‘임박신’을 믿는다.
임박신은 이름처럼 무엇인가가 임박했을 때 강림한다. 중간고사, 리포트 제출, 경쟁 PT 기획서 만들기, 보고서나 이력서 쓰기 등의 마감이 닥쳤을 때 주로 등장한다. 늘 임박신이 등장하는 건 아니다. 주로 중요하고, 그 기한을 지키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져 버리는 일에서 임박신을 만날 수 있다.
며칠을 끙끙대어도 안 나오던 아이디어가 마감 전날 아침에 머리를 감다 불현듯 떠오른다거나, 밤새 다 못쓴 리포트는 제출일 아침 학교 가는 지하철 안에서 제일 잘 써진다거나, 시험 직전 10분 동안 친구가 내는 퀴즈가 놀라울 만큼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거나 하는 경험. 나에게도 이런 집중력이 있다니?! 했던 그 순간에 당신은 이미 임박신을 만났다.
가끔이긴 하지만 알람을 끄고 다시 잠들었다 늦게 일어난 아침에도 임박신이 찾아온다. 평소라면 출근 준비에 30분은 걸리지만, 신이 찾아온 날 만큼은 10분이면 샤워하고, 옷 입고, 비비 바르고, 머리까지 말리고 신발을 꿰어 신을 수 있다.
나는 임박신이 꽤 자주, 세게 오는 편이다. 나는 신을 만들었고, 신은 내게 능력을 주었다... 라기보다 마감이 정해지면 힘이 솟는 스타일이란 걸 알아차렸다. 마감을 어길 배짱은 없을 수도 있고,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마감 직전에 고도의 집중력, 임박신이 생겼고, 그 집중력으로 어떻게든 완성은 시켰다. (완성도는 별개의 논의로 한다.) 광고회사에서 일하던 시절에 수많은 제안서와 보고서는 그런 기운으로 제출됐다. 여전히 난도가 높아도 일정이 정해져 있는 일에 마음이 더 편하다. 마감은 밤샘과 스트레스의 친구이면서 동시에 자유의 입구다. 마감을 통과하면 그 일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무언가를 지켜냈다는 뿌듯함과 끝이 주는 해방감 그걸로 나는 학교도 졸업하고 회사도 다녔다.
그걸 알고부터는 임박신을 만나기 위해 스스로 마감을 심기도 한다. 2주의 기한을 주면 1주로 줄여버리거나 (어차피 기간 내내 애만 태우다 막상 그 전날 시작할 테니까) "급한 것이 아니니 되는대로 달라"하는 말에도 되도록 일정을 못 박는다.(아니면 아예 시작을 안 할지도 모르니까.) 물론 마감을 정한다고 해도 늘 깨끗하게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마치지 못하고 밀리거나 포기하는 것들도 나온다.
하지만 <목요일의 글쓰기>를 그나마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이 글쓰기가 '목요일'이 마감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목요일(에 시작하는) 글쓰기가 되었지만 그래도 목요일이 되면 '아, 글 써야지. 오늘은 마감을 지켜야지.' 하는 마음으로 노트를 연다.
그래서 오늘부터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에 <어른의 일>을 연재하기로 마감을 심는다. 시작부터 토요일에 발행되지만 (믿어줘 수요일부터 시작했어...) 난 임박신을 믿으니까. 마감이 나를 구원할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