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를 위한 대파 안내문
초보 독립생활자라면 으레 그렇듯 독립 초기에 의욕적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회사에 도시락도 싸가고 친구들을 초대해 저녁도 지어먹었다. 요리를 하면서 다진 마늘과 대파는 식재료라기보다 소금이나 간장 같은 양념에 가깝다는 걸 알았다. 마늘과 대파가 빠진 한식 레시피가 드물었다. 본가 냉동실에 쌓여있던 다진 마늘 판이 떠올랐다. 김장철에 햇마늘을 잔뜩 사다가 다져서 B5 크기로 판판하게 만든 다음에 냉동실에 얼려 다음 김장까지 조각조각 잘라 쓰는 게 엄마의 방식이었다. 때때로 나도 손끝이 아리고, 허리가 아플 때까지 마늘을 까는데 동원되었기 때문에 ‘엄마는 무슨 마늘 욕심이 이렇게 많을까?’ 했었는데 그게 다 마늘이 중요해서였다. 그 주 주말에 본가에 가서 냉동된 마늘 한 판을 가져왔다. 마늘은 마법의 재료였다. 넣기만 하면 맹맹했던 음식에 감칠맛이 돌았다.
다음은 대파였다. 대파는 양념을 만들 때뿐만 아니라 음식 마무리에 고명으로 얹는데 쓰였고, 국물 음식에도 곧잘 불려 나왔다. ‘그래 맞아. 라면에 파 썰어 넣으면 국물이 훨씬 시원했어.’ 엄마에게 물으니 대파도 마늘처럼 먹을만한 크기로 잘라 냉동실에 얼리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먹으면 편하다 했다. 동네 마트에 가서 대파 한 단을 샀다. 흙을 털어내고 껍질을 벗겨 물에 씻고, 먹을 만한 크기로 자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눈치챘다. 혼자 사는 살림이라 양푼은 냉면 그릇보다 조금 큰 것 하나였는데 그 양푼은 이미 잘린 대파로 차고 넘쳤다. 아직 자르지 않은 대파가 절반은 남아 있었다.
파를 썰다 말고 독립 선배이자 이웃 주민인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혹시 대파 필요해? 한 단 샀는데 3대가 먹겠다. 되게 많네.”
“ㅋㅋㅋㅋㅋ 맞아. 그거 3대가 먹어. 씻어서 냉동 보관하거나 화분에 묻어도 돼.”
역시, 선배님은 알고 계셨다. 모두를 보관하기엔 냉동실이 대파로 다 들어찰 지경이라 넉넉히 덜어 친구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래도 2대가 먹을 만한 대파가 남았다. 이후로 만든 거의 모든 음식에 아낌없이 대파를 넣고, 육수를 낸다며 파를 대가리째로 쓰기도 했다. 주재료가 아닌 탓인지 쉽게 줄지 않았지만. 남은 대파는 냉동실에서 최선을 다해 버텼지만 결국 보관 봉투에 서린 성에와 함께 버려졌다. 대를 물려줄 만큼 많았지만 수명이 그렇게까지 길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그리고 나서야 마트에서 대파를 한 대씩 나누어 파는 이유를 알게 됐다. 나 같은 사람들 때문이었다.
이후로 대파를 먹을 때면 대단했던 대파의 양이 떠오른다. 전에는 국물에 크게 썰린 대파가 들어 있으면 그릇 한쪽으로 밀어 두고 안 먹기도 했지만 이제는 싹싹 건져 먹는다. 음식에 풍미를 더하는 대파같이 멋진 재료가 싸고 흔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은근한 단맛을 즐기며 먹는다.
독립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떻게 대파 맛을 알게 됐으랴. 물론 아무리 맛있어도 1인 가구에게 대파 한 단은 무리다. 그래서 정리하는 오늘의 독립 리빙 포인트! "대파는 한 번에 한 대만 산다." 그 편이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이니까.
#어른의일 #독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