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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콩콩 Jul 22. 2019

'의자'라는 세계

암체어와 라운지체어와 버터플라이 체어

침대, 옷장, 다용도 선반 셋. 독립 후, 가구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이들이 다였다. 그런 내 집에 2년 만에 들이고 싶은 가구가 생겼다. 의자였다. 테이블이나 책상에 딸린 의자가 아니라 의자로써의 의자.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책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불을 켜 둔 채, 불편한 자세로 자다 깨는 밤이면 늘 허탈했다. 책은 몇 페이지 넘기지도 못했고, 잠은 잠대로 부족해서. 침대 말고는 책 읽을 곳이 없었다. 바닥은 차가웠고, 눈에 보이는 것은 침대뿐이었다. 하지만 침대는 앉는 곳이 아니라 눕는 곳이었다. 매번 안락함에 졌고 가슴팍에 책을 얹은 채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만성이었던 허리 통증이 더 심해진 것도 그즈음이었다.


‘책 읽기 좋은 의자를 사자!’


그리고 의자를 샀다... 처럼 간단했으면 좋겠지만 검색창에 “의자”를 집어넣으면 세상에 의자의 종류가 이렇게 다양하다는 것부터 알게 된다. 내 방에 들이고 싶은 의자는 바퀴가 달려 있는 것도 등받이가 날개형인 것도 아닌데 검색 결과에는 사무용 의자가 먼저 나오고, 그다음을 잇는 건 보통 테이블용 의자다. 아니 이런 의자 말고. 그런 의자 있잖아. 그 그... 그 뭐라고 해야 하지?


처음 떠올린 의자는 ‘이케아 그(?) 의자’였다. 친구네에서 본 이케아 그 의자는 찾아보니 ‘암체어’라는 친구였다. 당장 결제를 하려다가 생각보다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는 리뷰에 주춤했다. 의자에 내 방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럼 대체 뭘 사야 해?


의자를 찾고 있다고 하자,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한 사람이 ‘라운지체어’라는 장르를 알려주었다. 20-30만 원 ‘정도’ 면 괜찮은 의자를 살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헤엑! 의자 하나가 20-30만 원이라니!’ 짐짓 놀랐으나 ‘라운지체어’를 검색하고 곧, 왜 ‘정도’라는 표현을 썼는지 이해했다. 몇 백에서 천만 원을 호가하는 라운지체어의 세계가 있었다.


하지만 보자마자 라운지체어야 말고 내가 원하는 의자라는 걸 알았다. 라운지체어는 다른 의자에 비해서 다리가 짧다. 키가 작은 편이고, 허리가 안 좋아서 다리가 바닥에 닿았으면 했는데 라운지체어가 그랬다. 등받이가 낮지도 높지도 앉아 안정적인 자세로 책을 읽기에도 좋았다. 내 작고 아담한 방에 놓기에 크기도 적당했다. 모든 것이 좋았다. 가격만 빼고.


라운지체어를 갖고 싶었지만 내가 의자에 30만 원쯤 써도 되는지 확신이 없었다. 그건 내 침대보다도 비쌌다. 의자를 사기로 했을 때부터 의자의 세계를 하나도 몰랐으면서 마음속에 정해둔 예산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10만 원 즈음이었다. 여러 날 혹시나 누가 실수로 10만 원대의 라운지체어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하고 사이트를 뒤졌다. 그런 실수를 한 사람은 아직 없었다.


다시 검색으로 돌아갔다. 암체어, 라운지체어 등등을 검색어로 밀어 넣고, 연관 검색어를 타고 다니기를 또 여러 날. 결국 라운지체어와 닮았지만 팔걸이가 없는 의자를 찾아냈다. 그 친구도 이름이 있었다. ‘버터플라이 체어' 가격대는 10만 원 초반. 우하하.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의자가 생긴다! 나는 환호했다. 그리고 의자와 함께 행복한 독서생활이 시작되었다...라고 했으면 좋겠지만 모든 이야기가 해피엔딩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새드엔딩도 아니지만.


도착한 의자는 생각보다 컸다. 어디에 둬도 존재감을 뿜을 만큼 컸는데 다른 말로 하면 공간을 많이 차지했다. 생각보다 키도 커서 의자에 앉으면 다리가 땅에 닿지 않았다. 이런… 프레임을 접고 펼 수 있어서 공간 활용에 좋다고 했지만 한번 펴진 의자는 접을 일이 없었다. 프레임에 탈부착할 수 있는 천을 씌워 의자를 만드는 형태라 세탁이 편하다고 했지만 그걸 한 번도 빨지 않았다는 걸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어쨌든 내게도 이제 의자가 있다. 앉아서 책도 읽고 폰도 하고 가방도 두고 옷도 거는 의자가 있다. 다음엔 돈 아끼지 말고 꼭 라운지체어를 사야지. 내 버터플라이 체어에겐 비밀이지만.


#어른의일 #독립 #취향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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