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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른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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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콩콩 Jul 26. 2019

집으로 일을 들고 왔을 때

자는 게 자는 게 아니고 하는 게 하는 게 아니다

경험에 비춰 일은 회사에서 하고, 잠은 (내) 집에서 자는 게 좋다.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나 싶겠지만 일과 생활을 분리하기가 내 맘 같지 않기 때문에 굳이 하는 소리다.

야근이 아무렇지도 않은 날이 있고, 일이고 뭐고 회사에 있기 너무 힘든 날이 있다. 이 또한 경험상 아무리 붙잡고 있어도 안 되는 날이라는 걸 아는데 보통은 그럴 때 하는 일일수록 마감이 얼마 안 남았다. 그러면 얼마간 고민 끝에

‘그래! 집에 가서 하자!’라는 결론이 나온다. 열어놓았던 각종 파일들을 개인 메일로 보내고, 짐을 싸서 집으로 간다. 집에 도착하면 일이고 뭐고 각종 고민과 시름과 미세먼지를 씻어내고 싶다.

‘그래! 개운하게 씻고 하자!’

씻고 나면, 개운한데 나른도 해서 잠깐만 쉬고 싶다.

‘그래! 잠깐만 폰 좀 보고 하자!’

페이스북엔 이슈가 넘치고, 인스타그램엔 예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책상 앞에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앉긴 앉았다. 자, 이제 아까 보내 놓은 메일을 열 차례.  

‘어? 이 원피스 예쁘다.’
‘어? 이 브랜드 세일하네?’
‘어머, 둘이 사귄다고?’

하고 쇼핑몰 썸네일과 뉴스레터와 실검을 두루 들른다. 마케터들 일 참 잘한다. 그렇지?

‘내가 뭐하는 중이었더라? 아! 맞다 메일!’

진짜 메일을 열고는 의외로 굉장한 집중력으로 일에 속도를 붙여 가지만 이번엔 허리가 문제다.  

‘아 허리 아프네. 자세를 좀 바꿔볼까?’  

하고 노트북을 들고 침대 앉아 몸을 벽에 기대고 무릎을 세우고 몇 자 뚜닥뚜닥 하면 아까보다 허리가 더 아프기 마련이고 노트북을 침대 위에 내려놓고 턱을 괴고 자료를 이리 뒤적 저리 뒤적 하다 보면 등과 목까지 뻐근하고 그러니 잠깐만 드러눕자 하면 이제 일은 글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일을 집에 들고 오자고 한 순간부터 글렀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잠깐만 드러눕자 했는데 깜박 잠이 들었고, 깨어나면 보통 시간은 자정을 넘어 새벽으로 가는 중이다. 불 켜고 베개도 없이 이러고 있으면 자는 것도 아니고 깨어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 깔끔하게 1시간만 자고 맑은 정신으로 일하자!’

하면서 알람을 맞추고 불을 끈다. 그때부터 나를 빨아들이던 침대가 나를 뱉어 낸다. 30분쯤 뒤척대다가 겨우 잠이 들라 치면 알람이 시끄럽게 운다. ‘1시간’의 압박 때문에 제대로 못 잤다. 아까보다 더 피곤하다.

‘그래! 집중하면 2시간이면 할 수 있으니까 2시간 일찍 일어나자!’

다시 알람을 맞추고 누우면 이제는 잠도 글렀다고 할 수 있다. 온갖 꿈에 시달리다가 알람도 울리기 전에 눈을 뜬다. 이제라도 일어나서 일을 하면 다행이겠지만 그 와중에 알람까지의 시간이 남았음에 안심하며 잠을 청한다. 드디어 평소보다 두 시간 빠르게 알람이 울린다. 그리고 평소보다 두 배쯤 빠른 반응속도로 알람을 끈다. 5분만 딱 더 자고 일어났는데 맙소사! 지각이다!!!! 왜지? 왜 알람 못 들었지? 일도 못하고 잠도 못 잤다.

‘아! 내가 다시 집에 일 들고 오나 봐라!’

하지만 옆자리 동료가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고, 어딘가 따뜻했던 사무실 공기가 식으면 어제의 실패를 부정하고 싶기 마련이다.

‘오늘은 씻지 말고 일부터 하면 되지 않을까?.’

마음을 먹고 집에 왔건만 이번엔 씻지도 않고 잠들었다. 새벽녘에나 화들짝 깨어나서 씻고, 씻고 나니 잠은 달아났지만 일은 하기 싫어 기어코 웹툰을 열고 마는 것이다...

내일은 나를 믿지 말자. 일은 회사에서. 제발 일은 회사에서.


#어른의일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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