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어루만지는 추억
음파파 음파파 노래해요
음파파 음파파 모두 함께
왜이렇게 기분이 좋을까요
그것은 음파파 때문이죠
대학로에 파랑새극장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곳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접한 엄마는 나와 언니의 손을 잡아끌고 그곳으로 향했다.
나는 너무 어렸고, 보는 동안은 즐거웠을지 모르나, 집으로 오는 길은 너무나 고되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우리는 쌍문역에 인접한 창동에 살고 있었는데 어떤 이유인지 갈 때는 버스를 타고 공연 후 집으로 오는 길은 거의 택시를 탔다.
당시 삶이 힘들던 엄마에게 비싼 택시비를 감당하며 아직 어린 두 딸을 데리고 대학로로 향하게 한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엄마는 돈이 없어 공부하지 못한 아쉬움을 자식을 통해 풀려 하셨고, 나는 그것이 싫었다. 더 어렸을 때는 시키는 대로 했지만, 중학교 2학년 즈음 사춘기를 겪으며 공공연히 반항을 시작했다.
엄마의 바람대로 곧잘 따라오던, 똘똘하다 믿었던 딸이 고등학교 입학 후 받아온 처참한 성적표는, 그 딸이 작정하고 시험지도 읽어보지 않은 채 2번이라는 같은 번호로만 칠해서 제출한 답안지의 결과라는 것을 엄마는 아셨을까.
긴 세월에 걸친 나의 투쟁은 지금 내가 아이들을 양육하는 모습에서 오롯이 나타난다.
그 투쟁의 기간 동안 엄마와의 사이가 형편없어질 뻔한 적도 많았는데 우리가 여전히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데에는, 기억 속 저 노래도 분명히 한몫을 했다.
공연의 제목도 내용도 기억나지 않지만, 무대를 중심으로 바닥에 동그랗게 앉아 뒤에 앉은 엄마에게 몸을 반쯤 기댄 채, 분장한 연기자 언니를 수줍게 바라보며 배운 저 노래. 그 멜로디.
가사가 좀 틀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나는 가끔 저 노래를 정말 뜬금없이 부르고는 한다.
그러면 내가 기댔던 엄마의 품이 생각나고, 집으로 돌아오던 택시에서 졸리다 칭얼대던 내가 보이고, 이제 다 왔으니 내려야 한다고 나를 흔들어 깨우던 언니의 손이 느껴진다.
아이들을 데리고 대학로에 어린이뮤지컬을 보러 갈 때면 항상 저 노래를 떠올린다.
지금 아이들이 공연 중 신나게 따라부르는 이 노래들을, 삼십 년 뒤에 기억해줄까 하는 생각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