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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주부 Nov 13. 2021

커리어 전환의 시작

미디어에서 데이터로(1)

데이터 일을 하고 있다. 그 시작은 데이터는 아니었다. 내가 만족하고 몰두할 수 있는 분야는 때로는 미디어였고, 교육이었다. 다만, 지금은 데이터 전문가가 되기 위해 커리어를 밟고 있을 뿐이다. 나는 커리어 관점으로 봤을 때도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데이터 분석가는 그중 하나이면서, 지금의 나를 먹여 살리고 기분 좋게 하는 정체성이다. 연인, 가족, 친구에게 이야기하기에도, linkedin에 이력을 올릴 때도, 하다못해 세미나/컨퍼런스에서 나를 소개하기에도 알맞다.


그런데도 내가 다른 정체성을 잊지 않고, 분석가가 되기 전 혹은 분석가가 되기 까지를 여전히 생각하고, 글로 쓰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데이터 분석가로서 정체성을 더욱 확고하게 하고, 노동시장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매진하지 않고 한 눈을 파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짐작하기로 분석가 페르소나가 미처 채우지 못한 부분들,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갈증이 있기 때문 일수도. 중요한 것은, 나는 그 정체성들을 기억해내어 글로 잡아채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거다. 그 시기가 점점 희미해지고 나에게 덜 중요해지고 있는 지금이라도.





미디어에 관한 관심은 21살부터 시작한다. 군대 탄약고에서 통찰을 전달하고 싶어 기성 언론의 기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 이후, 웹진에서 글을 발행하며 문장력을 익혔고 친구들과 고전을 함께 읽으면서 사유의 틀을 다지고는 했다. 구룡마을 재개발 관련 르포를 작성하고, 지하철 성범죄 주제를 다룬 데이터 저널리즘을 시도하기도 했다. 레거시 미디어에서 기자로서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제공하고자 했다.







그러나 2014년, 2015년 대한민국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 - 세월호, 메르스 등 - 과 이를 다루는 언론의 모습을 보고 나는 언론의 역할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 서로에 대해서 알고 통찰을 얻게 하는 것, 그 역할을 더는 잘 해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언론고시(사실은 언론사 입사 시험) 관문을 통과할 만한 역량이 스스로에게 있는가 라는 의문도 있었다. 언론의 가치를 확신할 수 없고 스스로의 역량에 대한 자신도 없는 상황에서, 나는 방황했다.


생각을 전환하게 된 계기는, 2016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플랫폼 오픈컬리지에서 "오픈유니브" 과정에 참여하면 서다. 오픈유니브는 스스로 교육을 설계하고 삶에서 체화할 수 있는 곳, 안전하면서도 자유로운 곳이었다. 21명의 친구들과 정말 다양한 대화를 나눴고, 각자 삶 속에서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함께 고민했고 여러 가지를 실험했다. 그러면서 레거시 미디어에서 일해야 해라는 생각의 상자에서 나왔다.


그러자 할 수 있는 것이 참 많았다. 웹 환경을 기반으로 한 인터랙티브한 콘텐츠, 현실-가상 세계를 혼합한 오디오 콘텐츠,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한 미디어 믹스, 그리고 단편소설과 동화(시놉시스)까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스스로 역량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실험했던 시기였다. 어설펐지만 재미있었다, 무척.


인터랙티브 콘텐츠 : 대중교통 성범죄, Horror the SSD
가상 오디오 콘텐츠 : 미래에서 온 편지
지역상권 활성화 미디어 콘텐츠 : King LEO World
단편소설, 동화(시놉시스) 작성 : 악취, 파워쾌변맨과 변비대마왕
지역공동체 미디어


그리고 2017년 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 비진학에 관하여 다룬 콘텐츠를 기획, 제작했고 나름 성공을 거두면서 그 실마리는 현실이 되었다. 나는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심 속 자연이 주는 가치를 미디어로 풀어내는 스타트업에 합류했다. 동시에 뉴 미디어 종사자들의 등용문과 같았던 구글 뉴스랩 3기에 지원했다. 스타트업에서는 승승장구할 거라, 뉴스랩은 당연 합격할 거라 생각했다. 그만큼 자부했고, 자만하다, 깨달았다. 아, 재능이 없을지도 몰라.




https://youtu.be/iAE5M1orbaE



스타트업은 전략가보다는 승부사의 세계였다. 좋은 관점으로 질문을 던지고 전략을 만드는 역할도 필요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무기로 실질적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가 였다. 나는 다양하게 경험했고 다양하게 알았지만, 빠르고 강한 나만의 무기가 없었다. 2018년은 특히 비디오 퍼스트, 모바일 퍼스트 프레이즈가 나타난 시기였고(현재의 뉴스레터 중심의 텍스트 생태계의 도래는 예상하지 못했을), 영상 매체 기획 및 제작 역량은 미디어 스타트업 종사자의 제 1역량으로 여겨졌다. 그곳에 전략가의 자리는 없었다. 더군다나 영상 기획, 제작 실력이 그렇고 그러하다면 더욱.


스스로의 역량에 관한 의심은 뉴스랩 면접 탈락으로 확신이 되었다. 붙을 거라 생각했다, 당연히. 다양한 콘텐츠에 관하여 고민했고 실험했으니까. 그리고 얼마 전에는 실질적 성과도 만들어냈으니까. 그러나 면접 때 어렴풋이 느낀, 아닐 수도 있겠다 라는 느낌. 나는 뾰족하게 하고 싶은 것이 없었던 거다. 석영님은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라는 질문에, 나는 반드시 미디어로 풀어내야 하는 문제를 말하지 못했다. 적합한 대상에게 적절한 정보를 전달하고 싶다(deliver uninformed information)라는 당시 스스로의 모토가 무색하게도 그랬다. 나에게 미디어 생태계란 그 자체로 흥미로운 동네였고, 다양한 것을 시도해볼 수 있어 재미있었지만, 내 안에 있는 어떤 절실함이 있어 미디어로 풀어내지 않고서 못 견디는 것은 아니었다. 뉴스랩 탈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디어 스타트업도 퇴사했다.




2018년 회고할 때 썼던 글의 일부




무엇을 해야 할까? 2018년도 2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매일 남산도서관에 갔다. 그곳에서 내가 뉴 미디어 섹터에서 그동안 무엇을 했고, 겪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회고했다. 그 과정에서 앞으로 3년 동안 내가 어떤 이유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3가지를 얻고자 했다. 내가 미디어 섹터에서는 갖지 못했기에 발휘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핵심 역량을 키우고, 관심 분야에 더욱 깊은 지식을 형성하고, 함께 동고동락할 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 부가적으로 일하고 싶은 직장과 환경, 연봉도 생각해봤다. (스타트업의 월급이 매-우 짰기에) 


방향, 계획은 있지만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아득한 시기였다. 시작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매일 아침 남산도서관에서 파이썬 프로그래밍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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