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의 무기를 만드는 감정의 물리학
감정은 태양계의 중심인 태양처럼 우리의 삶을 이끈다. 그 주변을 생각이라는 행성이 공전하며, 우리의 행동도 그 궤도를 따른다. ‘어긋난 행동’은 궤도 이탈을 의미하며, 불안한 감정에서 비롯된다. 억눌린 감정은 점점 무거워지고, 그 결과 생각의 궤도가 왜곡된다. 그리고, 잘못된 행동으로 이어져 삶에 큰 파동을 일으킨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을 억누르기보다는 제대로 마주하고 다스려야 한다. 감정을 인정할 때, 우리는 내면의 질서를 되찾고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안정된 감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항상 최우선은 아니다. 때로는 경험 속에서 감정의 치유와 성장이 이루어진다. 인생은 직선이 아닌 굽이진 강을 따라가는 배와 같다. 물길은 예측할 수 없고, 갑작스러운 장애물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작은 선택 하나가 전체 흐름을 바꿀 수 있으며, 결국 목표한 목적지에 도달한다 해도 그 과정은 결코 일직선이 아니다. 인생은 비선형적인 흐름을 받아들이고, 감정을 조율할 때 진정한 힘을 얻을 수 있다.
밤하늘의 별자리 중 하나인 페르세우스는 운명을 거스르고 메두사를 처치한 영웅이다. 메두사를 보는 사람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돌로 변하게 되는데, 이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보여준다. 인간은 위험에 직면하면 자동적으로 얼어붙는 본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 본능은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지만, 현대에는 야생의 포식자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의 경계를 벗어나거나 확장하는 데 방해가 된다.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두려움과 공포는 마치 메두사의 얼굴을 보는 것처럼 우리를 돌로 만들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한다. 당신은 메두사의 머리를 잘라내고 영웅이 될 것인가, 아니면 운명에 순응하며 살 것인가는 당신의 선택과 의지에 달려 있다.
우리에게는 페르세우스의 칼 같은 무기가 필요하다. 신화영웅이나 어벤져스의 능력과 무기가 서로 다르듯이, 우리도 각자 자신만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 무기를 꺼내어 단련시키고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의 무기는 두려움에 얼어붙기 전에 당신을 구해줄 것이다. 무기를 만들어라. 경험만이 자신을 이해하고 내 안의 내재된 강력한 무기를 만들 수 있다.
폴 알렉산더는 1952년, 6세의 나이에 소아마비로 전신이 마비되어 '아이언 렁'(iron lung)이라는 기계 안에서 72년을 살아야 했다. 이 철제 기기는 머리를 제외한 온몸을 완전히 감싸는 원통형 구조로, 내부를 진공 상태로 만들어 환자의 폐에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평생을 이 기계 안에서 얼굴만 내놓은 채 지냈지만, 폴은 자신만의 호흡법을 터득해 잠시나마 기계 밖으로 나와 학교에 다니며 변호사가 되었다. 입으로 펜을 물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8년 동안 자서전을 썼고, 그림도 그렸다. 그의 부모는 늘 '넌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고, 폴은 그 말을 굳게 믿었다. 그는 그 믿음대로 행동했고, 그 결과는 경이로웠다.
부모와 같은 가까운 사람의 말 한마디는 그 사람의 인생을 크게 바꿀 수 있다. 부모가 아니더라도 스승이나 멘토의 한 마디는 우리의 의식과 마음을 움직여 예상치 못한 잠재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과학적으로도, 인간을 이루는 근본적 물질은 의식에 반응하지만, 이를 정확하게 측정하기는 어렵다. 양자 물리학에서는 전자나 광자 같은 미세한 입자들이 서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이는 물질과 의식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마음과 의식은 실제로 주변의 사물이나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과 상호작용할 때 그 사람의 감정이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따라하게 되는데, 이는 마치 감정의 중심 주변으로 생각이라는 행성이 도는 것과 같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다. 특히 어린아이에게는 애착 대상이 태양처럼 중심이 되고, 그 주변을 도는 작은 행성이 바로 아이 자신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성장하여 부모의 태양계에서 서서히 벗어나 자신만의 자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태양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때 비로소 부모의 태양계에서 독립한 또 다른 태양계가 완성된다.
그러나 부모의 태양계에서 독립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부모라는 태양의 중력은 강하지만, 아이가 자신의 무게를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무게는 곧 자아의 형성인데, 이것은 부모로부터 충분한 애착의 빛을 받지 못했을 때 생겨난다. 이러한 경우, 사람들은 부모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태양계에 속하여 그 애착의 빛을 갈구하게 된다. 누구에게 영향력 있는 사람이 주는 믿음은 그 사람을 변하게 하고 중심을 만들어 준다.
긍정적인 생각과 기대는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주위 환경도 그에 맞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누군가의 진심 어린 격려가 그 사람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그로 인해 놀라운 성과를 이뤄내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이런 작은 말 한마디가 실제로 그 사람의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과 의식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양자 도약처럼 언제든 변화를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폴처럼 실제 기계 안에 살지 않지만, 스스로 만든 ‘철제 통’에 갇혀 살아가곤 한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정하고, 그 벽을 넘지 않으려 한다. 영화 ‘매트릭스’는 이러한 개념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속 인물들은 자궁(매트릭스) 안에 갇힌 채 가상 현실 속에서 모든 것을 배운다.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세계가 가짜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우리 또한 때로는 주변 환경과 조건에 갇혀 자신의 가능성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살아가곤 한다. 그러나 폴은 물리적 제약을 넘어 세상을 가능성으로 바라보았고, 그런 시각이 그를 변호사로, 자서전 작가로, 그리고 예술가로 이끌었다. 나는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극복한 것이 놀라웠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세상을 넓은 관점과 가능성으로 보았다는 것에 더욱 감명을 받았다. 나 역시 철제 통 속에 갇힌 건 아니지만, 세상을 좁게 그리고 스스로를 제한하며 살아온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비록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실제 자궁에 갇혀 살지는 않지만, 우리는 스마트폰이라는 작은 화면을 통해 세상을 제한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보는 실시간으로 넘쳐나고 세상과의 연결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지만, 정작 우리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