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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e Jun 28. 2019

구몬일어를 하는 마음

마음의 구석: 소소하지만 시시하지 않은 이야기

누구나 무언가 되고 싶어 하는 꿈이 있었을겁니다. 아니, 꿈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에 나오기 전에 들어가고 싶은 직종, 갖고 싶은 직업이 있겠죠.


그걸 이뤘다면 너무나 다행이지만, 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을 듯 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저성장 시대에는요.


최근에 '마음의 구석: 소소하지만 시시하지 않은 이야기'를 읽었는데요. 방송국 PD를 준비하다가 결국은 꿈은 접은 #블블 님이 등장합니다. 그는 당시 꿈을 접은 감정을 '꿈과 헤어지는 법'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좌절된 꿈의 흔적을 삶 속에 새긴 채 묵묵히 나를 위한 정원을 가꾸는 수밖에 없다고, 지금의 마음은 그렇게 이야기 한다. 포기한 게 자랑이 아니지만...(중략)....누군가 꿈과의 이별을 고민하고 있다면 나처럼 대책없이 도망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


저 역시 제가 원하는 직종에 원서를 숱하게 들이밀었는데도 문앞에서 거부당하고 꿈을 접었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은 일반 기업으로 바꿔서 취업 준비를 하고, 모 기업에 붙었을 때에(사실 붙은 것도 감사했죠), 연수원에 가기 전날 짐을 싸면서 마음으로는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짐을 싸면서는 그 기업의 직무와는 전혀 무관한 책들을 마구 마구 넣었습니다. 지금은 다른 곳에 있지만, 나의 정체성은 이 책과 연관되어 있다는, 어떤 의지 혹은 오기였달까요. 저는 당시 꿈과 헤어지지 못한 상태였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꿈과 헤어짐을 스스로 택하는 그 마음, 너무나 잘 알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딴 데로 샜습니다만...


우리의 블블님은 책에서 구몬일어를 했던 경험을 씁니다. 저희 국민학교(아니 초등학교) 때 구몬학습이 대인기였죠. 어른이 되어서 최근에 구몬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언뜻 듣기는 했습니다.



원래는 외국어도 속성 자격증 코스를 들었던 블불님이 일종의 '느린 배움'인 구몬일어를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문제를 풀며 하루 서너 개의 일본어 동사를 외운다.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일본 애니메이션을 본다. 가끔 어제 외웠던 단어가 일본 성우의 음성을 통해 내 귀를 정확히 때리고 스쳐가면 기뻐하면서..(중략)...

여전히 1류 동사와 2류 동사를 잘 구분하지 못하지만..(중략)... 그와는 상관없이 기쁘다. 그저 구몬일어의 빈칸을 채워 나간다. 바로 앞장에서 본 한자를 끝내 다시 안 보고는 채우지 못해 '술이 웬수지' 쇠퇴한 기억력을 한탄한다.
그러면서도 몇 번이나 앞장을 들춰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한자의 부수를 생각하는 내 모습이 좋다. 그렇게 외우는 척 허공을 몇 초 바라보다 다시 돌아와 뒷장의 빈칸을 채우는 시간이 좋다.

마지막 단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 언제까지고 목표에 대한 생각 없이 빈칸을 채우고 싶다. 새로운 단어를 외우고 싶다. 내일 또 까먹고, 다시 외우고 싶다.


그는 말합니다.


인생의 즐거움은 어딨을까

최단 경로로만 걷다보면 내가 세계와 만나는 표면적은 좁디 좁아지지 않을까...많이 헤매면 헤맬수록 어딘가에 떨어진 조약돌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충분히 머무르고 미련이 남지 않을 정도로 같은 장소를 반복해서 돌아다니는 일이 어쩐지 기쁘고 즐겁다.


흡사 몇년 전 유행했던 컬러링하는 마음도 이런거였을까요. 웬지 구몬일어를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옵니다.



사실 방송국 PD나 신문사 기자 모두 합격자와 불합격자가 한끝 차이일 때가 많습니다. A회사에 붙었다고 B회사 붙을 실력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떨어졌다고 해서 그 사람의 실력이 형편 없어서인 것도 아닌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붙었다 해서 특출나게 훌륭하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


흔히들 언론사 합격은 지하철 2호선과 같다고도 비유합니다. 뱅뱅 돌다가, 한 군데 내리는 거죠. 여러 차례 응시하다가 붙는 곳에 정착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래서 언론고시생들끼리는 서로 붙고 떨어지길 반복하며 필드에서 각각 다른 회사에서 다시 만나기도 합니다.


음, 제 이야기를 하자면요. 저는 기업 연수 도중에 다시 나오게 됐습니다. 원하는 회사의 합격 소식을 늦게 듣고서요. 실은 이때 알았습니다. 합격 불합격 여부는 정말 한끝 차이일 수도 있다는 걸요. 제가 붙었다고 해서 대단히 훌륭한 것도 아니고, 제가 떨어졌다고 해서 세상이 끝난 것도 아니라는 걸요.


마찬가지로 블블님은 PD라는 꿈과는 헤어졌지만 새롭게 시작한 팟캐스트도 꽤 인기를 끌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생, 꼭 정해진 길로 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디로 갈지 아무도 모르는, 그래서 더 묘미인거죠.


누가 압니까. 돌아돌아가다가 심지어 헤매다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도 있죠. 여행은 인생 축소판이라고도 하죠. 길치는 저는 여행할 때 오히려 뜻밖의 즐거움을 발견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의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다. 드라마 PD라는 꿈과는 헤어졌지만 그럭저럭 생활하고 있으며, 멈춰 있던 이야기가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컷! 다음 장면 갈게요


블블 님, 응원합니다


(+TMI, 책의 저자는 총 3명이고 사실상 블블님 포함해 2명이 번갈아 씁니다. 전 다른 분 글은 건너 띄고 블블 님 글만 읽었습니다. 왜 안읽었는지 이유는 정확히 설명하기는 힘든데, 여튼 그랬습니다)




이런 글도 씁니다

https://brunch.co.kr/@que/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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