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나의 철학은 "최고의 재테크는 돈을 안쓰는 것"이었다. 가게에서 아무리 세일을 해도, 그러니까 50% 세일, 80% 세일...을 내걸어도 사실 안 사면 100% 세일이 된다는 게 내 지론이었다(물론 나는 세일 좋아하고 세일 때에 물건을 많이 사긴 하면서도, 모든 구매는 신중 또 신중을 기한다). 이 브런치 이전 글도 사실 육아 하면서 돈을 어떻게 하면 덜 쓰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다시 펀드 이야기로 돌아오겠다. 완전 무결한, 펀드 순결주의자였던 내가, 어떻게 펀드에 빠지게 되었냐하면...
사연은 이렇다.
퇴직연금의 DC 투자였다. 퇴직연금을 미리 당겨서 펀드에 투자하는. 작년에 마침 좋은 PB를 만났고 미국 주식을 통해서 일종의 성공 경험을 쌓았다. 펀드 투자도 잘만 하면 부동산 월세 수익률보다 높게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아주 맛배기로만 체감했다.
불과 며칠전 보름에 5% 수익률을 떠올려 보면, 웬지 그냥 팔기엔 손해보는 것 같았다.(지금 와서 보니 손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더 큰 손해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손해임에도 불구하고..)
이후는 예상대로다. 국내 확진자 수의 증가세는 점점 잡혀가는 듯 했지만 펀드는 정 반대로 움직였다.
한동안은 국내 확진자 수가 잡히면 펀드가 괜찮아질 줄 알았건만 절대 아니었다. 당연히 우리나라는 해외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 대외 의존도가 80% 넘는 특성상 당연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 내가 한 일(투자)로 치환되는 순간 혹시 모를 생각(정확히는 근거 없는 기대)을 갖게 된다. 여전히 나는 펀드 환매를 하지 않고 있었다.
이후 이탈리아에서 확진자가 늘기 시작했고 급기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비상사태 선포. 미국에서도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 한국도 대구 확진자가 겉잡을 수 없을 때에 주가가 하락했는데 땅덩이도 크고 인구도 많은, 미국에서 확진자 수가 늘어나면 그건 정말 힘들 것 같았다. 수익률은 어느덧 -20%를 훨씬 넘어가고 있었다.
안전자산마저 떨어지고 있어서 믿었던 1번 펀드 해외 채권형 펀드마저도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됐다. 하지만 이건 채권이니 좀 더 생각해보기로 하고,
2,3번은 눈물을 머금고 팔았다. 금액으로 꽤 된다 ㅠ 날린 원금은 생애 첫 경험해본 주식 시장 수업료로 치기로 했다.
값비싼 등록금을 내고 얻은 교훈 몇 가지, 혼자말 알기엔 아까운 그 몇 가지를 공유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펀드 순결주의자라면 혹은 생애 첫 주식 투자자라면 도움이 될까 해서다.
1. 내 마음속 수익률(혹은 손실율)을 미리 결정하자
사람 욕심은 한 없다. 펀드가 올라갈 때에는 더 오를 것 같고, 내려갈 때에는 본전 생각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건 비이성적인 면모에 지배받은 것일뿐. 나의 펀드 투자기를 돌이켜 보면, 실은 펀드로 재미좀 봤을 때(그러니까 보름 만에 5%) 다시 뺐다가 투자를 하던지 해야 했다. 하지만 생애 첫 투자니 당시엔 go할 수는 있다고 이해하자.
문제는 이후 계속 떨어질 때, 원금만 간신히 보전했을 때에라도 혹은 소액 수준에서 손해봤을 때라도 빨리 나와야 했다. 그랬다면 지금만큼의 손실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앞으론 한동안 주식 시장 쳐다보지도 않을 생각이지만 혹여라도 다시 한다면 이렇게 할 생각이다.
5% 수익만 보겠다고 하면 5% 수익 달성시 빼고 다시 투자하면 된다. 반대로 5% 손해 이상은 못참겠다고 하면 5% 손해보더라도 그 때 팔아야 한다. 물론 퍼센트가 아닌 금액으로 설정해도 좋다. 중요한 건 , 마음 속 내가 얼마만큼의 수익을 볼것인지, 혹은 손해를 감내할 수 있을지를 정해 두면, 의사 결정에 꽤 많은 도움이 된다.
2. 손절은 stop-loss: 더 큰 손실 줄이는 길
나는 비록 내가 감내할 수 있는 이상의 손실을 보고 펀드를 환매했다. 이 글이 눈물의 환매기임을 잊지 말아달라.
이번에 손실을 보고도 환매한 건, 앞으로 더 큰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주식 시장에서 이런 장에서 겁난 개미들이 모두 내던지면서 주가 하락을 부채질하기도 한다(물론 이번에 외국인이 더 많이 팔았지만 말이다. 개미들은 오히려 삼성전자 같은 우량주 저점이 아닐까 하고 꽤 많이 사고..)
여튼, 이런 것과 무관하게 당분간 더 큰 손실을 볼 게 자명했다. 그렇다면 손실을 줄이는 것도 또 하나의 재테크, 즉 돈을 다루는 기술이라 생각했다. 손절을 영어로 stop loss, 즉 손실을 줄이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3. 정답은 없다...다만 나의 기준은 마음의 평화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언젠가는 바이러스가 종식될 것이고 주가도 회복될 것이라고. 리먼 사태 때에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펀드 투자로 손실을 봤지만, 실은, 조금 더 지나서 회복됐었다. 그리고 손실 폭이 컸던 펀드는 그만큼 수익률도 더 높아졌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문제는 그 시점이 언제일지이느냐다. 맞다. 바이러스 언젠가 종식되고 주가도 회복되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 언제가 언제이느냐, 그게 문제였다.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강한 상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것.
It ain't over till it's over.
리스크 요인이 몇 개 있었다.
A. 우리나라의 확진세가 잡혀도 해외 유입자들로 다시 전염될 경우
B. 글로벌리, 확산세가 이제서야 시작인 경우
(이미 그렇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C. 글로벌 확산세가 잡혔을 지라도, 이제 문제가 바이러스가 아닌 경제의 문제일 경우
C-1. 이미 한국이 그러함. 바이러스야 괜찮지만 해외 교역에 영향 많이 받고 공포 심리가 지배하는 특성상 바이러스와 무관하게 주가가 내리막 중
C-2. 미국과 이탈리아(나아가서는 유럽)에서 바이러스가 한창 확산되고 있는데다, 바이러스가 잡혔을 경우엔 실물 경제가 위축되어서 힘든 경우를 배제할 수 없음(이미 실물 경제도 타격 받고 있고요)
C-N. 다음의 가정은 모두들 아는대로다. 금융위기 때야 금융 부문이 타격 받았으나 실물은 건실한 나라는 비교적 빨리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이번엔 금융과 실물(실물도 소비와 생산 모두, 소비 심리 위축과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 타격에 따른 생산 위축 등) 모두 타격을 받고 있고, 그간의 경제가 양적완화 등으로 상당히 붐업이었다는 사실...(어쨌거나 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게다가 각자도생의 시대에 각국 공조가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 그리고 이미 저금리에 양적완화를 많이들 해놔서 총알이 많지 않고 블라블라블라.....
개인적인 성향상, 나는 리스크-회피 성향이 크다. 나는 달리 펀드 순결주의자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위험 회피에 대한 인내심이 없기도 하고.
리스크-회피 성향, 주가가 잡힐 때까지 나의 안절부절 못함이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묻어놓는 돈으로 생각하고 잊어버리면 그만인데(실은, 상당 부분은 원금 보장으로 이미 장치도 만들어놓았으면서도) 펀드 평가 금액을 보고 매일 매일 웬지 모르게 뒤숭숭하고 기분 나쁘지고 손해 본 것 같고(실제 손해봤다 ..) 이런 부정적인 기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나는 일상으로 돌아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손실 폭이 비록 클 지라도, 그 비용을 나는 "일상 회복 비용"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2차 대전 때에 영국에서 유행했던 말, 그 말 있지 않은가.
KEEP CALM AND CARRY ON.
나는 회사에서 일도 해야 하고, 아이도 잘 키워야 하고, 스스로도 잘 돌봐야 한다. 실은 주식 시장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물론 시장 상황 파악 차원에서는 팔로업을 해야 하지만, 그게 내 주된 일이 되면 좀 곤란했다. 다른 일도 많은데 주가 흐름이 내 관심을 뺏으면 안되었다.
앞서 말한대로, 언젠가는 바이러스가 잡힐 것이고 경제도 언젠가는 회복될 것이다. 단기로 봐도, 우리 역시 총선까지는 주가 민심을 져버리긴 힘들거고(연기금 등 투입 가능성), 그건 대선 재선을 간절하게(?) 원하는 트럼프도 다른 국가의 리더십 레벨에서도 무언가 하려고 들 수도 있다. 이런 장치들이 팬더믹 포비아에 대한 우려를 완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나는 오늘의 할 일에 충실하고 싶었다.
(돈 많이 벌기는 힘든 팔자임이 확실하다) 손실을 볼지언정, 그 손실을 하루하루 나의 순간에 집중하는 비용으로 삼기로 했다.
까짓것, 돈이야 다시 벌면 되지, 내 시간을 우울하게 보낼 수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이건 내 손에 쥐고 있던 돈을 날린 게 아니라, 퇴직연금의 DC로 앞으로 받을 돈 일부를 날린 것이나니...돈이야 또 벌면 되지 않은가. 어쨌든 환매하고 나니, 손해는 컸을지언정 마음은 홀가분했다. 돈을 잃었는데도 상쾌한 이 기분, 뭐지. 나는 불확실성을 제거했다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큰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다.
코로나19에 아직까지 나의 가족 나의 지인들이 무사하고 무탈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자.
자, 여기까지가 펀드 거액 손실에 대한 나의 생각, 아니 실은 "나의 정신승리 노하우"다.
난 사실 경제가 많이 걱정된다. 외식 사업자 홍석천은 무려 900만 원에 이르는 월세를 부담하고 있다고 했다. 여러 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그이지만 대체로 장사는 안될 것이다.어딜 가든 식당은 비어 있고 쇼핑몰이나 백화점은 물론 극장 공연장 미술관에도 사람이 없다.
모든 경제가 마비 징조를 보이고 있는 이 순간, 이 땅의 자영업자들, 서비스 사업자들, 프리랜서들, 그리고 투잡들....무수히 많은 분들이 얼마나 힘든 시기를 보내고 보내야할지 상상이 간다. 위기는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부터 먼저 치고 들어오는 것 같다. 또 그 위기가 도미노로 이어지고 생각지 못한 지점에서 코로나19의 나비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난 그게 가장 무섭고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부디, 이런 비관론이 현실로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버티는 자가 이긴다고 했다. 최대한 버티고 모두들 무탈하길, 빌어보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