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두통속에 정신을 잃어버렸던 나는 오후가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까지도 머리가 깨어질 듯 아프기만 하다. 엄마가 주신 약을 먹지 않은 탓에 나는 내 몸을 더욱 악화시켜 버린 것이다. 나는 침대에 누운 상태로 한참을 먼 허공만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이 시야에 들어왔다. 구름의 움직임이 이토록 예뻤었나. 나는 무심코 손을 뻗어 구름이 향하는 곳을 눈으로 쫓았다. 커다란 구름은 어느새 동그란 원을 그리더니 하나둘 형태를 갖춰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그 모습이 뭐라고 나는 무언가 신기한 걸 발견한 들뜬 아이처럼 한참이나 하늘을 응시했다. 오랫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새 머릿속 아픔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이상한 걸. 매일매일이 똑같은 하루일텐데 왜 오늘따라 창밖의 하늘이 유난히 밝아 보이는 걸까? 게다가 구름이라니, 불과 며칠전까지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구름의 형체가 오늘은 세세한 움직임까지 명확하게 윤곽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비볐다. 그러고는 선명해진 내 손을 바라 보았다. 정말이다. 내 눈이 보인다. 나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아 이번에도 꿈이 아닌가 볼을 꼬집어 보았다. 꿈이 아닌 현실이란 자각에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엄마,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나는 당장 엄마의 얼굴부터 머릿속에 떠올랐다. 필시 엄마는 세상 그 누구보다 내 눈이 보이는 것에 기뻐할 것이다. 나는 책상 위에 올려진 핸드폰을 주워 들고는 바르르 떨리는 두 손으로 엄마의 전화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갑자기 핸드폰벨이 울렸다. 깜짝 놀란 나는 핸드폰 화면에 표시된 발신번호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0726번.. 분명 낯익은 번호인데.. 누구더라? 맞아. 며칠 전 기억해 낸 지수의 전화번호다. 아니, 지수의 번호라고 착각을 했던 그 번호다. 그런데 왜 이 번호로 전화가 오는 거지? 나는 조심스럽게 착신버튼을 누른 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에선 한참이나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여.. 여보세요. 누구신가요? 혹시 지수니?”
지수를 부르는 내 말에 반응을 한 것인지 마침내 상대방이 대답했다.
“으.응 맞아.”
“그래. 지수가 맞았구나. 내가 번호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던 거였어. 오랜만이야. 잘 지냈지?”
그러나 또 다시 대답이 없다. 오랜 기간 연락을 하지 않은 탓에 어색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무런 설명없이 연락이 끊어졌던 나에 대한 원망 때문일까 지수는 한참이나 아무런 말 없이 깊은 숨소리만 내뱉었다.
“지수야. 미안해. 내가 연락이 너무 늦었지. 그게 말야.”
“왜 전화 한 거에요?”
“응?
”며칠 전에 갑자기 나한테 왜 전화한 거냐고요?”
지수의 목소리는 이전과 다르게 너무도 낯설었다. 더구나 존댓말로 추궁하는 듯 몰아 붙이는 그녀의 낮은 음성에 나는 당혹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지만 설명을 해 줘야 할 것이다. 내 처지가 어떠하며 내가 어떤 1년을 살아왔는지 그녀도 이젠 알아야 한다.
“미안해. 사고가 있었어. 너한테 연락을 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그러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내가 부족한 탓이야. 넌 어떻게 잘 지내는 거야? 대학은 간 거야?”
“에휴~”
지수에게서 때아닌 한숨이 새어나왔다.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에요? 대학이라니.. 이게 무슨..”
통화를 하다 보니 지수의 반응이 내가 알고 있던 그녀가 아닌 것처럼 너무도 이상했다. 이윽고 지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25년간 연락 한번 없다가 왜 갑자기 전화를 하는 거냐고요? 나더러 어쩌라고.”
“25년? 지수야, 그게 무슨 말이야? 25년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지금 이 순간 나는 대체 누구랑 통화를 하고 있으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게다가 분명 그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울먹이고 있었다.
“당신 지금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사람들이 당신 찾는다고 난리가 났어. 진우 너 정말 어디 있는 거냐고?”
“내가 어디 있다니? 지수야. 난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TV에 나오는 거 저거 너잖아. 너 맞잖아. 찰리 강!! 너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 거야?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이렇게 꽁꽁 숨어 있는 거냐고.”
지수의 울부짖음에 난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찰리 강? 찰리 강이 누구지? 그 때 빛이 반사되는 창문 끄트머리에서 낯선 내 얼굴이 잠시 스치듯 지나갔다. 나는 귀신을 본 것 마냥 숨소리를 죽였다. 살면서 이토록 소름끼치게 떨렸던 적이 없다. 나는 잠시 핸드폰을 내려 놓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책상 옆에 놓인 거울을 집어 들었다. 놀랍게도, 아니 놀랍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이 심경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가슴 깊은 곳에서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마음속 불안과 한참을 싸우다 마침내 들여다 본 거울 속에는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