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잠 (20)

by 드루리

2장

1

상희는 며칠째 밤낮없이 일하는 철준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무리 일도 좋고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다지만 자칫 건강을 잃어버린다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철준은 상희의 성화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신은 별 걱정을 다 한다. 봐. 내 몸 탄탄해진 거 안 보여?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더 건강해졌다니까. 그래 보이지 않니? 진우야.”


진우는 보란 듯이 힘차게 자신의 가슴을 탕탕 내리치는 철준의 얼굴을 바라보며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럼요. 우리 아버지는 마을에서 제일가는 천하장사시잖아요.”

“그것 봐. 진우도 인정하잖아. 당신은 매사에 쓸데 없는 걱정이 많아서 탈이라니까. 이제 걱정 좀 붙들어 매. 다 잘 되고 있으니까.”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일군 사업이 하루하루 번창해가는 것에,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더 많은 보상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에 그 무엇보다 큰 보람을 느낀다는 철준의 말이 지금도 진우의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 그렇긴 해도 최근 들어 진우는 철준과 함께 식사를 한 것이 언제였었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아버지의 얼굴을 뵌 지 오래되긴 하였다. 바쁜 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마찬가지겠지만 고된 일상이 오랫동안 서로의 마음을 잠식해버린 탓에 어느새 그 흔한 안부인사조차 외면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더 이상 안되겠다는 듯 상희가 등교하는 진우의 팔을 붙들었다.


“진우야, 오늘 학교 마치고 나면 이것 좀 아버지에게 갖다 줄래?“

“이게 뭔가요?”

“응, 아버지 옷이야. 요즘 집에 통 들어오시지를 않아서 말야. 제대로 씻고 제대로 뭘 먹고나 있는지 모르겠어. 그래도 옷은 잘 입어야 하지 않겠니?”


진우는 상희가 가방안에 정성들여 여며 놓은 철준의 옷을 받아 들었다. 상희는 회사 일로 바쁜 남편 걱정에 지난 며칠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철준이 지금까지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 것은 온전히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상희 역시 철준만큼이나 남편의 사업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 최선을 다했다. 직원들의 식사를 위해 직접 음식을 공수하기도 하고 납품수량이 넘쳐나 인원이 부족할 때면 자신이 직접 트럭을 몰기도 했다. 최근에는 괜한 오지랖이란 생각에 그저 남편 뒷바라지에만 열중했으나 회사와 철준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은 남편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며칠째 일로 바쁜 아버지 걱정이 되는 것은 진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하루하루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일에만 매진하시느라 자신의 몸도 제대로 돌보지 못할 거란 생각에 진우는 마음이 저려왔다.


“그럼요. 문제 없어요.”


아버지의 옷가방을 받아 든 진우는 하교시간이 되자마자 철준이 일하는 공장으로 향했다. 농공단지 끄트머리 자그마한 부지에 위치한 철준의 공장이 조금씩 진우의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가 당신의 사업에 본인 인생의 9할을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란 것을 잘 알만큼 진우 역시 공장의 흥망성쇠를 옆에서 몸소 겪어왔다. 작은 컨테이너박스에서 사업을 시작한 철준은 특유의 발품팔이로 거래처를 하나하나 늘려가며 그럴싸한 지금의 공장 모습을 갖추었다. 아버지뿐 아니라 엄마까지 한데 부둥켜 안고 기뻐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남들은 별 게 아니란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 모습을 직접 보고 자란 진우의 마음엔 언제나 아버지와 엄마에 대한 경외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진우는 공장을 들어선 그 순간부터 뭔가 평소와는 다른 이질감이 느껴졌다. 북적북적한 근로자들의 움직임과 분주하게 돌아가던 기계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어두컴컴하게 내려앉은 차가운 공기는 적막한 기운마저 내뿜었다. 진우는 공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철준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철준은 물론이고 함께 일을 하는 직장동료들 단 한명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물건을 납품하기 위해 적재된 단프라박스는 곳곳에 흐트러져 있었고 매일매일 납품수량을 맞추기 위해 쉴새 없이 돌아가던 프레스기계는 며칠째 가동이 되지 않은 듯 차갑게 식어 있었다. 무언가 큰 일이 발생한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된 진우는 공장에서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는 사무동건물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사무동 안에 들어서자마자 전에 없던 음습한 한기가 온몸을 뒤덮었다. 갑작스레 온갖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진우는 이제 철준이 그저 건강하게 자신 앞에 나타나줬으면 하는 생각뿐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안으로 옮긴 진우는 책상위에 엎드려 있는 누군가의 형체를 발견하였다. 다른 생각은 할 것도이 없이 그것은 자신이 어릴 때부터 항상 바라보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늘 늠름하기만 했던 당신의 뒷모습이 오늘은 어째서 이토록 왜소해 보이는 걸까.

“아버지.”


진우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급히 철준의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진우의 바람과는 달리 철준의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아.. 아버지. 이.. 이게. 무슨..”


머릿속에서 떠오른 이성적인 생각과는 달리 온갖 형언할 수 없는 갖가지 말들이 진우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진우는 급히 사무실 전화기를 찾아 119 버튼을 눌렀다.


“여..여기 아버지가 쓰러지셨어요. 빨리 좀 와 줘요. 빨리. 우리 아빠가 죽어간다구요. 아빠 좀 살려 주세요. 부탁이에요.”


진우는 신고를 하는 그 순간에도 이미 철준이 하늘나라로 가버렸다는 걸,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자신이 극도로 싫고 밉기만 했다.


2

“그래서 이 빚은 어떻게 할 거냐고? 당신 남편이 저지른 짓이니 당신도 최소한의 도리는 다 해야 할 것 아니냐고!!”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조금만 시간을 더 주세요.”

연거푸 절을 하는 상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진우의 가슴은 타 들어갈 것만 같았다. 지난 주에 철준의 장례를 마치고 아직 마음을 추수를 시간도 부족한데 상희는 채권자들의 성화를 감내하기 위해 오랜 기간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IMF.. 기업은 물론이고 국가마저 부도가 난 이 마당에 철준처럼 영세한 사업주의 아픔은 그 누구도 어루만져 줄 수가 없었다. 아무런 준비없이 위기를 맞딱들여야 했던 그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버티고 또 버텨내거나 결국엔 힘에 겨워 모든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진우는 어서 이 고통의 시간이 지나가길.. 그 생각만으로 하루하루 힘겨운 나날을 지속했다.


“진우야, 이것 좀 먹어 봐, 응?”


며칠째 점심시간이 되어도 도시락을 챙겨오지 못한 진우의 눈앞에 지수가 자신의 도시락을 내밀었다. 지수는 벌써 며칠째 아침 일찍 일어나 손수 진우의 도시락을 준비했다. 지수 역시 그리 넉넉지 않은 형편이기에 자신의 몫을 반으로 나누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지만 그래도 도시락만큼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진우에게 양보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지수의 마음을 거부했던 진우도 어느 순간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서서히 웃음을 되찾았다. 그리고 힘을 내자고 다짐했다. 자신이 좌절한다면 이 순간 아들 하나만 보고 살아가는 엄마의 마음은 더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 들 거란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마워. 지수야. 네 말대로 힘낼게. 그러니까 이제 도시락은 안 싸줘도 돼.”


제대로 표현은 하지 못했지만 진우에게 지수의 존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크나큰 힘이었다. 자신을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짓는 그녀의 웃음을 마주할때면 어느새 마음의 응어리가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진우는 다시 한번 감상에 젖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냉혹한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이 그저 방향을 잃고 갈팡질팡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상희는 예전에 남편의 사업을 도와 공장일을 했던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허드렛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 육체노동을 다시 시작하려니 하루하루가 고달픈 하루였지만 아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되찾기 위해서는 그것밖에 별다른 수가 보이지 않았다. 진우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늦은 밤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상희를 마중했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만이 상희의 지친 마음을 달래 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지만 진우는 그 무엇보다 빛나는 엄마의 별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 믿고 있었다. 그래서 진우는 당신에게 모든 짐을 지우고 혼자 학교를 다녀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없이 밉고 원망스러웠다.


“진우야, 이제 그만 나와 있으라니까 왜 또 온 거야?”

“아냐, 엄마. 밤길이 얼마나 무서운데. 엄마는 아직 젊고 예뻐서 외간 남자들이 잡아갈지도 모른다니까.”

“얘가 못하는 소리가 없어.”


상희는 아들과 함께 걷는 이 밤길이 힘겨웠던 하루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원동력이었다. 아들의 존재가 자신이 살아가는 유일한 힘이라며 자신을 위로했다.


“그래도 이제 곧 고3 수험생이 될 텐데. 엄마는 진우도 이제 공부에만 열중했으면 좋겠어.”


진우는 잠시 생각이 맍아진 듯 터벅터벅 말없이 걷다가 한참만에야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엄마, 나 그냥 학교 그만 두고 취직하면 안 될까? 어차피 대학을 갈 것도 아닌데 일찌감치 돈을 버는 게 낫지 않을까 해서 말야. 그래야 엄마도 편하고..”


순간 상희는 큰 소리를 치며 진우의 어깨를 세차게 내려쳤다.


“얘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대학을 안 가다니? 너는 무조건 공부를 해야 해.”

“그치만.. 대학 갈 형편도 안 되는데.”

“형편이 안 되긴 뭐가 안 돼. 그건 내가 알아서 해. 그러니까 너는 아무 걱정 하지 말고 공부나 해. 알겠어? 괜히 쓸 데 없는 생각하지 말고. 또 한번 그런 소리 했다가 엄마한테 혼날 줄 알아. 알겠지.”

“으..응. 알았어요.”


시무룩해진 진우는 상희의 호통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상희의 유일한 희망이라곤 진우가 대성하길 바라는 그 마음밖에 없는데 자신이 아들 인생에 걸림돌이 될 지도 모른다고 느낀다면 이내 좌절해 버리고 말 것이다. 진우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가 바라는 대로 어떻게든 열심히 공부를 하고자 마음 먹었지만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매일매일 고민의 시간만 길어졌다.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겠다는 어린 시절의 꿈, 그건 진우만큼이나 상희에게도 당신이 나서서 꼭 이뤄주고픈 본인의 꿈이기도 했다.

시간이 모든 것을 치유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진리는 진우의 일상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 되자, 진우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모든 신경을 공부에만 집중했다. 성적이 잘 나올 때면 이제 본인에게도 새로운 희망이 찾아 올 것이라는 부푼 꿈에 사로잡혔다. 물론 그 성공은 엄마의 짐을 덜어드리기 위해, 당신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할 것이다.


최근 들어 상희는 야간근무를 하느라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곤 했다. 이 사업장은 철준의 그것과는 달리 어째 일손이 많이 딸리는 모양이다.

“그 공장도 참 어이없다. 어떻게 여자를 위험하게 야간 근무를 시킨대.”

“그..그게 일손이 많이 딸려서 그래.”

“엄마, 피곤하지는 않아. 이렇게 오랫동안 낮,밤이 바뀌어 버리면 몸에 좋지 않다고 하던데.”

“엄마는 괜찮아. 너는 내 걱정은 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알겠지? 다른 데 신경 쓸 여유가 어딨어.”

“또 그 소리야. 알겠어. 알겠다구요.”


진우와 상희의 실갱이는 언제나 아들의 수험생활로만 귀결되고 말았다. 진우는 싫어도 아닌 척 최선을 다해 엄마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러나 진우가 상희의 잦은 외박에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철준이 남긴 빚은 두 모자가 감당하기엔 녹록치 않은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상희의 옷은 새 것으로 바뀌어 있었고 진우의 도시락은 매일매일 고기반찬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진우는 당신에게도 그만한 여유가 필요한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픈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정도가 심해진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실, 입밖으로 꺼내지만 않았을 뿐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밤에도 진우는 집앞을 서성이는 낯선 남자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엄마, 오늘은 야간 근무 하지 않는 거 확실하지? 오늘 엄마 생일이잖아.”

“응, 우리 진우,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엄마가 오늘 오면서 맛있는 거 사 올게.”

“아냐. 오늘은 엄마가 좋아하는 거 먹어야지. 내가 엄마 좋아하는 된장찌개 만들어 놓을 테니까 꼭 일찍 와야 해. 알았지?”

“또 쓸데 없는 소리 한다. 요리는 무슨, 어느 수험생이 엄마 생일을 챙긴대. 우리 아들 공부 열심히 하는 게 엄마에겐 최고의 생일선물이야. 알겠지?”


말을 그렇게 했어도 진우는 엄마와 함께 보내는 생일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은 다 하고 싶었다. 그러나 저녁식사시간이 한참이나 지나도록 상희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진우는 마음 속 불안이 어느 순간 현실이 되어 버릴까 봐 불안해졌다. 밤 10시가 넘어가자 창밖에 낯선 차가 집앞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진우는 황급히 창문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꽃다발과 선물상자를 품에 가득 안은 상희가 차량 앞좌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스스로가 이토록 초라하게 느껴질 수 있을까. 진우는 상희의 생일에 주려고 몰래 준비해 둔 장갑을 책상 서랍안에 집어 넣어 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속이 타 들어갈 것만 같다. 아직 아빠의 얼굴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질 것만 같은데 벌써 그 존재를 부정해야만 하는 것일까. 급기야 상희의 마음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진우는 그 마음을 애써 외면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엄마에게 괜한 투정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어서 어른이 되어 상희에게 아무런 부담을 지울 수 없는 스스로의 역량을 깨우치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며칠이 나 지났을까. 진우의 그런 불편한 마음을 먼저 깨트려 버린 것은 역시 상희였다.


“진우야, 너무 놀라지 말고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왜 그래 엄마, 무섭게.”


진우는 짐짓 무게를 잡는 상희가 어떤 말을 할지 걱정이 되었다. 아니,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데 이미 당신에게서 나올 이야기를 알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 싫었다. 그러나, 상희의 입에서 나온 얘기는 진우가 예상하던 바로 그대로였다.


“엄마에게 새로운 사람이 생겼어. 그 사람은 부자야. 그래서 우리 진우 대학도 보내 준대. 잘 됐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얘기를 직접 듣고 나니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거부감이 밀려 들었다. 진우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참만에 입에서 나온 얘기는 겉잡을 수 없는 마음 속 투정뿐이었다.


“잘 되긴 뭐가 잘 돼? 누가 대학 가고 싶대? 나 가기 싫어. 엄마. 그냥 우리끼리 이렇게 살면 안 돼. 내가 얼른 돈 벌어서 엄마 고생 안 하게 할게. 응? 그러면 안 돼? 엄마.”

“휴~”


땅이 꺼질 듯한 상희의 한숨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그럼, 우리는 뭐 먹고 살고?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해도 빚은 줄어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데 그럼 어떡해.”

“그래서 내가 일을 하겠다잖아. 내가 돈 벌어서 엄마 고생 안 하게 하겠다잖아.”


어느새 진우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그만해. 지금 우리 집 빚이 얼마인지 알기나 해. 너 대학 안 가고 일한다고 해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진우 넌 대학을 가야만 해. 그래서 꼭 훌륭한 일을 해야 한다고. 너희 아빠처럼 언제 망할지 모를 노동일 하지 말고 아무 걱정하지 않고 떳떳하게 살 수 있는 전문직을 해야만 해. 그래야만 살아. 알겠지?”

“그치만 엄마..”

“엄마, 다른 이유 때문에 결혼하려는 거 아냐. 우리 진우 때문에 하는 거야. 나에게는 우리 아들이 삶의 모든 것이야. 우리 진우 꼭 대학가서 성공해야 해. 잘 살아야 해. 알겠지? 그럴 수 있지? 우리 아들.”

상희는 눈물로 범벅이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자신의 품안에 꼭 안았다. 오랫동안 눈물자욱이 지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진우는 그렇게 평생을 함께 했던 엄마를 내곁이 아닌 다른 이의 곁으로 힘겹게 떠나보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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