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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루리 Oct 18. 2021

불편한 편의점(김호연)을 읽고..

푸른 언덕이 있는 동네 청파동의 한 골목, 그 곳에 '올웨이즈'라는 이름의 편의점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손님이 뜸한 새벽시간, 이름인지 성인지 알 수 없는 '독고' 라는 덩치 큰 중년의 남자가 손님을 기다린다. 자신의 과거도 알지 못하는 노숙자신분의 독고씨.. 느려터진 행동에 말까지 더듬는 그의 모습은 흡사 미련한 곰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왜일까? 그의 어수룩하고 엉뚱한 언행 하나하나가 참 이상하게도 편의점을 찾는 손님들의 마음을 치유해 준다. 아픈 마음을 감싸안고 때로는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아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명쾌한 해답을 내리는가 하면, 삶에 지친 샐러리맨에겐 적지 않은 영감을 제공하기도 한다. 겁없이 진상손님들에게 반기를 들기도 하며, 외로운 작가지망생과 나이 든 할머니들에게 말동무가 되어 주기도 한다. 독고씨가 입에 발린 휘앙찬란한 말들로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나 흔희 건넬 수 있는 말들일 뿐인데.. 시간이 지나 한번 더 곱씹어 보면 그렇게 깊은 혜안이 깃들여 있을 수가 없다. 염 여사의 지갑을 찾아준 인연으로 편의점에서 야간알바까지 하게 된 독고씨.. 과연 이 의문 가득한 사나이의 정체는 무엇일까?


'불편한 편의점' 은 쳇바퀴 도는 일상에 몸도 마음도 지친 누군가에게 한잔의 커피와도 같은 짧은 휴식을 선사하는 고마운 작품이다. 어리숙한 독고씨의 모습을 통해 곳곳에서 빛을 발하는 유머코드가 슬며시 웃음짓게 만든다.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뒤흔들어놓을 수가 있을까? 어수룩한 그의 언행이 참 감동적이라 급기야 아름다운 사람이라 느껴졌다. 

자극적이고 기상천외한 해법을 제시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일상에 찌들어 사는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함께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이었다. 일평생 한번도 마주 한 적 없는 낯선 이의 충고가 평생을 함께 살아온 가족들의 그것보다 과연 더 의지가 되었기 때문일까? 절대 그렇지 않을테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누군가에겐 그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공감해주는 짧은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삶을 함께 하는 가족들에겐 때로는 미안함에.. 때로는 같잖은 자존심때문에 속내 가득한 자신의 이야기를 입밖에 내지 못할런지 모른다. 그래서 참 힘든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하는 누군가의 존재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 때 그들과 함께 한 사람이 바로 불편한 편의점의 독고씨였다. 꼭 그가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 내 마음을 알지 못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순간 함께 고개를 끄덕여 줄 누군가의 존재는 더 할 나위 없는 해답이 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스스로도 감정이 메말랐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는데 나도 직장인이어서 그런 것인지 40대 가장 세일즈맨의 사연이 그렇게 공감될 수가 없었다. 옥수수 수염차를 건네며 원 플러스 원 초콜릿 구입을 권유하는 독고씨의 조언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이런 이웃이 있다면 참 행복할 것만 같다. 

독고씨의 존재 때문일까? 편의점 점주인 염 여사를 비롯해 아들 민식, 공무원 준비생 시현, 함께 아르바이트중인 선숙, 독고의 뒤를 캐는 곽까지.. 그들의 사연 하나하나 허투루 놓치지 않고 마치 나의 가까운 이웃인냥 한번 더 곱씹어 본다.


그러나.. 참 애석하게도 극의 절정을 맞이하고 대미를 장식해야 할 독고씨, 본인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구차하게만 느껴져 못내 아쉽게 느껴졌다. 어리숙하면서 엉뚱했던 그가 전혀 다른 존재였다는 반전(?)때문이었는지.. 편의점 고객들의 사연과는 달리 그의 이야기는 쉬이 공감이 되지 않았다. 돌아오지 말라는.. 가족을 되찾고 본인의 삶을 살라는 염 여사의 말이 공허하게 들렸다. 그러면 안 되는데.. 안되는데.. 하는 머릿속 생각과는 다르게도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고뇌를 안고 살아간다. 스스로 본인의 인생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늘상 마주하게 되는 결론은 잃고 나서야.. 직접 실패를 경험해 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소박한 진리였다. 

일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만약 내가 10년전의 나를 만나게 된다면, 나는 과거의 나에게 과연 무슨 말을 전하고 싶을까? 난 해야 할 일을 권유하기 보단..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일러주고 싶었다. 소설 '불편한 편의점' 의 마지막장을 읽으면서 같은 생각을 했다. 전직 노숙자이자 편의점 야간알바 독고씨를 4년전의 그와 만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는 과거의 그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과연 그의 인생은 바뀔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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