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드루리 Oct 20. 2021

디 아더 미세스(메리 쿠비카)를 읽고..

작가로서 '내 것을 빼앗겼다'는 기분이 드는 이야기가 있다. 아직 안 쓴 게 아니라, 생각조차 못 했으면서 빼앗긴 듯 억울한 이야기. 이 소설이 그렇다. _ 소설가 정유정

정유정작가가 말한 소설 '디 아더 미세스' 에 대한 감상이 그렇게도 공감이 될 수가 없었다. 비단 정유정작가뿐 아니라 여타 소설가들, 그리고 스릴러를 즐겨 있는 다수의 독자들까지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소설 '디 아더 미세스' 는 결코 독창적인 소재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소설과 영화, 드라마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숱하게 보아온 소재와 설정을 선보이지만 이 작품만큼 독창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작가가 곳곳에 심어둔 복선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사실, 그 때문에라도 난 소설 중반쯤 읽었을 때 이미 결말을 예상해 버렸다. '내가 작가라면 사건을 이런 방식으로 전개시킬텐데.' 불현듯 떠오른 이 생각이 실제 소설의 결말과 그대로 맞아 떨어졌을 땐 적잖이 놀라게 되었다. 정유정 작가의 코멘트가 다시금 떠올랐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구나.' 

비슷한 소재의 글을 쓰는 소설가 입장에서는 참 아쉽지 않았을까? 기발한 발상이라지만.. 소설을 어느 정도 읽다보면 분명 생각해 봄직한 이야기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첫 구상단계에서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 스토리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 이유로 나 역시 머릿속에 떠오른 이 발상이 소설의 마지막까지 이어지지 않기를 바랬다. 그렇다면 먼 훗날 작가를 꿈꿔보는 나에게도 기발한 스토리를 전개시킬 일말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작가 '메리 쿠비카'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 한발 더 나아가 독자들을 깜짝 놀래킬 또 다른 이야기를 준비한다.

39살 중년이 된 '세이디' 는 행복한 일상을 살아간다. 언제나 든든한 멋진 남편 '윌' 과 사랑스런 아들,딸 '오토'와 '테이트'. 얼핏 보기엔 남부럽지 않은 평범한 미국 중산층의 가족이다. 일련의 사건들이 있기 전까지는.. 

삶이 안정되면 늘상 그런 것일까? 남편의 외도는 세이디의 삶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어느 시점부터였을까? 한없이 어리게만 느꼈던 아들은 어느새 내 키보다 훌쩍 커버려 낯설게만 느껴지는데.. 아들  '오토' 의 잠재된 폭력성을 확인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남편 '윌'의 유일한 가족인 누나 '앨리스'의 부고 소식을 들은 그들은 새로운 곳에 정착하기 위해 포틀랜드로 이사를 오지만 '앨리스'가 남긴 이 기분 나쁜 집은 좀체 적응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앨리스'의 딸 '이모젠' 은 대체 왜 이 모양일까? 엄마의 죽음을 두 눈으로 목격한 탓인지 그녀의 음습한 기운은 정을 붙일 수 없는 집안의 분위기를 더욱 삭막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 가족을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드는 살인사건이 발생하는데.. 이사를 온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서 옆집에 사는 젊은 여성 '모건'이 살해를 당한다. 세이디는 점점 자신이 그녀의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감지하게 되는데..  

소설은 크게 여주인공 '세이디' 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와중에 남편 '윌'과 '윌'의 내연녀 '카밀',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우스' 라는 여섯살 소녀의 3인칭 시점이 교차되어 진행된다. 세이디의 일상에 그야말로 동화되어 버렸다. 이렇게 답답할 수가 있나. 내가 나서서라도 불안하게 쳇바퀴 도는 그녀의 일상을 뒤흔들어 놓고 싶었다. 익숙할라치면 교차되어 진행되는 카밀과 마우스의 또 다른 이야기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접점을 맞이하게 될런지 궁금증에 몸서리치게 만든다. 조금씩 조금씩 정체를 드러내며 독자들을 가슴 졸이게 만드는 전개방식에 교차서술만큼 훌륭한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에 보았던..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혔던 영화 한편이 필연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소설 '디 아더 미세스' 와 소재와 전개방식이 흡사하게 진행된다. 물론 영화와 소설이 가지는 표현력의 차이점이 분명한 탓에 감흥이 똑같이 재현될런지는 알 수가 없지만.. 내가 느낀 바 '디 아더 미세스'는 20년전 충격에 휩싸이게 만들었던 어떤 영화를 완벽하게 글로 옮겨 놓은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재 자체가 결코 독창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그들을 바라보는 제 3자의 시각과 스스로 경험하는 본인의 시각에는 상상치도 못할 만큼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또 한번 실감하게 된다. 분명 익숙한 소재의 이야기지만.. 책으로 읽으면 이토록 새롭기만 하다. 극한의 감정을 경험하는 인간심리를 영상으로는 결코 소설만큼 다채롭게 구현하지 못함이리라. 

'누구도 믿지 말라' 라는 고전의 카피가 정말 잘 어울린다. 글이 제공하는 무궁무진한 상상력!  소설 '디 아더 미세스' 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편한 편의점(김호연)을 읽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