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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루리 Oct 21. 2021

천개의 파랑(천선란)을 읽고..

얼마 전 미국의 전기차 회사 '테슬라'에서 인간형 로봇 휴머노이드 '테슬라봇'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말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보던 인공지능 로봇 '휴머노이드'를 볼 수 있는 것일까? 천선란 작가의 소설 '천개의 파랑' 을 읽으면서 며칠전 읽은 휴머노이드에 대한 뉴스기사가 떠올랐다. 작가가 말한 소설속 이야기가 진짜 멀지 않았구나.


2035년.. 멀지 않은 미래,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인간이 수행하던 단순반복의 수작업들을 도맡아 하게 된다. 덕분에 인류는 위험하고 어려운 과업에서 해방되어 그저 머리를 쓰고 기술을 발전시키는 임무에만 충실하면 되는 세상이다. 그러나 언제 어느 곳이든 폐해는 존재한다. 상대적으로 뒤쳐진 누군가에겐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성을 빼앗아 가는 셈이므로..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문제로 대두될 수 있기 떄문이다. 더 큰 우려를 야기하지만 않는다면 당장은 실보다 득이 많은 세상일테다. 점점 그렇게 길들여지겠지. 소설속의 그들처럼 인간에게 즐거움과 쾌락을 제공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한번 길들여진 인간이란 존재는.. 거기서 영영 헤어나올 수 없을 테니까.. 


항상 이런 로봇의 이야기를 꺼낼 때면 그들의 존엄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인간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기에 그 어떤 명령이든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며, 의문도 갖지 않은채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할 뿐이다. 태생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항상 존재하는 변수라는 것은 어떻게든 돌연변이를 탄생시킨다. 그 돌연변이 로봇은 결코 학습된 적 없는 의문을 제기한다. '왜 그래야 하는가?' 여기서부터 두가지 갈림길로 나뉜다. 만약 그 의문이 인간에 대한 반발심과 분노로 이어진다면.. 폭동을 일으키고 인간에 맞서 사회를 전복시키려 할 것이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그것처럼.. 그러나 그 의문이 순수한 감정으로만 남아, 인간과 같은 존재가 되어 그들과 함께 하고 싶은 욕망으로만 이어진다면... 감동적인 휴먼스토리로 발전할 것이다. 

소설 '천개의 파랑'의 기본줄기는 후자이다. 인간애를 가지는 로봇의 이야기. 휴머노이드 '콜리' 의 바램이 꼭 인간이기를 갈망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난 그가 인간과 같은 존재가 되길 바랬다. 왜냐하면 '콜리'는.. 희망을 꿈꾸는 로봇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도 SF영화나 관련 소설작품에서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로봇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이 참 많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A.I가 그러했으며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한 바이센테니얼맨도 떠오른다. 그리고 지은이가 누구인지 작가명도 검색할 수 없는 어린이 동화책 한권이 불현듯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 방 책장에 색이 바랠대로 바래진 '로봇은 내 친구'라는 이름의 아동용 공상과학소설.. 어린 시절 나는 그 책을 읽고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독서지도회라는 이름 모를 출판사에서 권장용 도서로 출간한 책인 듯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고자 기획되었겠지만.. 나는 여타 모든 것은 차치하고 동화속의 1인칭 화자인 로봇 '렉스' 의 감정에만 동화되어 버렸다. 가정용로봇인 렉스가 주인(?)인 폴과 영원히 함께 살고 싶다는 단순한 이야기. 어찌 보면 인간에게 종속되어 자신의 존엄을 스스로 상실해 버리는 모순이 가득한 이야기지만 그 역시 가족의 일원이 되고픈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인간이든 로봇이든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는 그들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희망이란.. 꿈꾸는 그 자체만으로도 참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소설 '천개의 파랑'이 이런 지극히 평범한 가치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무엇보다 크게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이유는 비단 휴머노이드 '콜리'뿐 아니라 극의 주인공인 '연재'를 비롯해 '은혜'와 '보경','지수' 그리고 경주마 '투데이'까지..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이야기가 참 애틋하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연재,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은혜, 동반자를 잃고 좌절을 반복하는 보경, 그리고 이제는 달릴 수 없는 처지지만 여전히 파란 하늘을 마주하고 싶은 경주마 '투데이'.. 소설은 누구하나 소홀함 없이 모두의 감정을 어루만져 준다. 치유가 필요한 그들에게 직접적인 영감을 줄 필요는 없다. 어차피 깨달음이란 본인의 몫이니까. 보잘 것 없는 휴머노이드 로봇 '콜리' 의 작은 바램이 어떤 방식으로든 발을 내딛는 계기를 제공한다면 그로써 족한 것이리라. '과학SF' 라는 소설의 장르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내가 본 소설 '천개의 파랑' 은 SF소설이 아니라.. 그 무엇보다 지친 인간의 마음을 달래주며 진부한 말이지만 사랑과 우정, 그리고 잊혀진 꿈에 대해 얘기하는 휴머니즘 소설이기 때문이다.

  

'하늘은 매일, 매 시간마다 색과 모양이 바뀌었다... 세상에는 단어가 천개의 천 배 정도 더 필요해 보였다. 동시에 걱정이 들었다. 혹시 세상에 이미 그만큼의 단어가 있는데 자신이 모르는 건 아닐까?"

"좌절이나 시련,슬픔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단어들이 전부 다 천개의 파랑이었다. 파랑파랑하고 눈부신 하늘이었다."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고픈 로봇, 천개의 단어만 인지한 '콜리' 의 인생은 소설의 제목까지 결정해 버렸다. 비록 천개의 단어로밖에 표현 할 수 없는 짧은 인생이지만 그 단어만으로도 무궁무진한 행복과 희망을 느꼈기에... 콜리의 인생은 저 파란 하늘처럼 '천개의 파랑'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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