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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루리 Oct 26. 2021

우나의 고장난 시간(마가리타 몬티모어)을 읽고..

매주 한권 이상의 책을 읽으면서.. '이번에는 어떤 인물들이 다양한 인생의 기록을 선사할까?' 매번 설레이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긴다. 사실, 항상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어설프고 공감되지 않음에 혀를 차기도 하고, 더러는 책장을 넘기기가 곤욕스럽고 지루함에 몸서리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작품이 되었건 항상 마지막장을 덮고 나면 '또 한번 새로운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보았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해지곤 한다. 


오늘 읽은 소설 '우나의 고장난 시간'이 정말 그러했다. 최근 몇년간 읽은 소설중에 이보다 더 큰 여운을 남기는 작품은 찾기 힘들듯 싶다. 마지막장을 덮고 난 이후에도 소설의 주인공 '우나'가 살아갈 앞으로의 일상이 사뭇 궁금해진다. 소설을 읽는 몇시간동안 정말 그녀의 일상에 동화되어 함께 울고 웃었다. 타임리프를 다루는 소설들을 참 많이 접하면서 막연하게 진부한 스토리라 단정지은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이토록 뒷이야기가 궁금해 지는 시간여행이라니.. 풍부한 이야기꺼리를 만들어내는 '발상의 전환' 이란 이처럼 위대한 것이다.


남자친구와 밴드를 함께 하며 황금빛 미래를 설계하는 젊은 여대생 '우나'는 12월 31일  마지막날, 친구들과 함께 파티를 즐기며 행복한 한 때를 보내고 있다. 드디어 1월 1일, 19살이 되는 새해 첫날이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친구 '데일'도, 절친한 밴드친구들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대신 그녀의 눈앞에는 30대의 왠 낯선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더군다나 19살의 젊은 나이여야 할 본인은 50대의 중년부인이 되어 버렸으니.. 대관절 이게 무슨 일인란 말인가? 


소설 '우나의 고장난 시간'은 매년 새해가 되면 본인 삶의 다른 연령대를 살아가야만 하는 여대생의 타임리프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19살의 그녀가 51살의 먼 미래로 시간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이듬해에는 다시 20대의 젊은 시절로, 그리고 다음해에는 30대의 나이로 시간을 뛰어 넘어 버린다. 불과 하루 전 타임여행을 떠난 또 다른 '우나'가 남긴 '나에게 보내는 편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그녀에게 그나마 방향을 제시할 유일한 나침반이다. 타임리프 초창기에 혼란스러워했던 고뇌의 시간은 점점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된다. 인생의 몇십년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삶의 순서와 위치가 바뀐 것 뿐, 여전히 그녀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뒤죽박죽인 시간대를 살게 된다면 분명,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되짚어 보며 얽혀 있는 자신의 미래와 과거를 반추해 본다. 


기본적으로 이 소설은 정말 재미있다. 예상되지 않는 그녀의 하루하루가 참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다양한 추리적기법이 이후의 이야기를 궁금하게 이끌어 가니 500여페이지가 짧게만 느껴졌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그녀의 일상을 남몰래 응원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될 지어니.. 자, 그녀의 일상을 함께 추리해 보자. 


시간여행을 다룬 작품들에는 크나큰 딜레마가 하나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오래된 논쟁거리가 바로 그것이다. 과연 '우나'는 자신의 미래를 경험하고 돌아왔기에 과거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미 있었던 과거를 토대로 미래의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일까? 아무리 과학적으로 검증하려 해 봤자 해결할 수 없는 난제일 뿐이다. '우나'에게는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존재하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기회는 거듭 존재할 테다. 그러나 소설 마지막장의 '우나'는 그녀가 알고 있는 미래를 결코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여타의 시간여행 작품에서 숱하게 보아 온 그대로.. 아무리 미래를 바꿔 보려 한들 한번 결정된 것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진리가 굳건하기 때문이다. 과연 '우나'는 유혹들을 이겨낼 수 있을까? 못 본 척 지나칠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나라면 결코 그럴 수 없을 테니까.. 당장의 현실이 중요할 테다.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사랑하는 사람이 당장 내일 죽음을 맞이한다는데.. 어떻게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소설이란.. 플랫폼의 한계가.. 그저 아플 뿐이다.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하나둘 나이를 먹어가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에서 느꼈던 똑같은 감정이다. 남들과 다르게 거꾸로 나이를 먹는 자신이 처자식과 함께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사실과 마주했을 때 '벤자민'은 멀리 여행을 떠난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 '우나'역시 별반 다르지가 않다. 남들과 다르게 매년 기억의 한계를 실감해야 하는 그녀의 삶이 고뇌로 얼룩질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소설의 마지막장에도 여전히 20대의 젊은 나이에 불과한 그녀가 앞으로도 무수히 인내해야 할 세월의 격차는.. 결코 쉽게 볼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그녀를 지켜주는 누군가가 꼭 함께였으면 좋겠다. 아니, 꼭 함께일 것이다. 영화 '첫 키스만 50번째' 의 그들처럼..(생각해 보니 연상되는 영화가 참 많구나.)


'우나'는 이제 겨우 7번의 시간여행을 떠났을 뿐이다. 살 날이 훨씬 더 많이 남아 있는 그녀에게는 수십번의 시간여행이 더 남아있는 셈이다. 행복한 일곱번째 여행을 마무리하고 새롭게 시작될 8번째 시간여행을 또 한번 상상해 본다. 결코 쉽지 않을 그녀의 미래가 그저 행복하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삶의 지혜가 생기기를..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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