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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루리 Jul 19. 2022

문명 - 베르나르 베르베르

오늘 읽은 소설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프랑스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문명'입니다. 전작 '고양이'에서 내전으로 황폐화된 세상에 살아가는 고양이 바스테트를 기억하시나요? 소설 문명은 바스테트의 모험담을 그린 '고양이', '문명', '행성' 3부작 시리즈중 2번째 작품입니다. 2022년 올해 3번째 작품 행성이 출간되어 시리즈는 완결이 되었군요.


전쟁으로 내홍을 겪고 있던 전작에 이어 이번 작품 문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인간세상이 멸망해 버린 현시점에 어떻게든 다시 문명을 일으켜 세우고자 노력하는 인류 아니.. 묘류의 고군분투를 담고자 합니다. 아쉽게도 이제 세상의 중심은 인간이 아닙니다. 소설의 주인공이 고양이다 보니 인류를 대신할 새로운 문명을 개척하기 위한 의지는 지극히 고양이에게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인간은 조력자의 지위로 격하했군요.


소설을 읽으면서 여러번 공감 하기도 하였지만.. 때로는 '이게 뭐야?' 어이없음에 실소를 거듭하기도 합니다. 문명의 이기, 과학적 진보를 통해 인간과 고양이가 USB칩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참 재미있는 발상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실험정신은 참으로 독특하니까요. 매번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예상치 못한 기발한 발상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주제의식이 뚜렷함을 느낍니다. 서사가 풍부한 소설을 이야기 하는 작가가 아니기에 말하고자 하는 기저의 방향성을 찾아야만 어렵지 않게 책장을 넘길 수 있을테죠.



문명은 단순히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이야기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인류의 멸망으로 세계는 다양한 동물들이 각자의 무리를 결성하여 독자적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세상입니다. 소설의 중심인 고양이무리들은 이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을 칩니다. 쥐떼의 습격을 피해 이주를 하고 열기구를 발명하여 탈출을 하며 동족인 고양이들과 협상을 하기도 합니다. 오랜 안정은 때로는 대립을 부추깁니다. 이는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고양이 바스테트가 타종족인 비둘기, 돼지, 소, 개 등을 만날때마다 각자의 가치관이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 실감합니다. 생각해 보면 참 우습기만 합니다. 인간보다 현저히 낮은 지능을 가지고 있는 짐승과 가축들이 인간이 멸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주인이 되고자 대립하는 현실이 말입니다. 이전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인간이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짐승을 의인화한 옛소설들을 보면 인간이란 존재는 최대의 적이자, 악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일평생 노동을 시키고 순간의 노리개로 치부합니다.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살만 찌우며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길들여 버리니까요.(소설에서처럼 생각이란 것을 한다면 말이죠.) 인간의 입에서 정당성을 말하기엔 너무 가혹합니다. 그래서 작가는 동물들의 입을 통해 인간중심주의를 타파하고자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래야 좀 더 격한 공감을 불러 일으킬 테니까요.



돼지들이 행하는 인간재판은 한국전래동화 토끼의 재판을 떠올리게 합니다. 각자의 입장만을 말하는 나무꾼과 호랑이를 중재하는 동물이 토끼였죠. 그러나 토끼의 마음은 이미 인간에게 무게중심이 기울어져 있습니다. 돼지가 주관하는 인간재판은 과연 어떨까요? 인간을 적대시하고 인간을 벌하고자 하는 소와 돼지를 중재하는 것은 오랜 기간 인간과 함께 했던 고양이 바스테트의 몫입니다. 실소와 억지를 말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코믹과 풍자를 통해서 인간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면 족합니다. 지구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중심적 사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매일매일 대두되는 환경문제를 눈여겨 보더라도.. 인간이란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란 사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문명의 발전을 고양이무리들의 생존방식에서 찾으려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소설은 고양이 바스테트의 성장소설과도 같습니다. 집사라 불리는 인간이란 존재에 항상 우호적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바스테트의 입장에선 사랑과 예술 그리고 유머를 배워야 한다는 인간집사 나탈리의 언행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스테트는 어떻게든 배우려고 합니다. 인류가 멸망한 세상임에도 인간이야말로 여타 동물들이 범접할 수 없는 초월적 능력을 가진 존재임을 작가 본인도 인정하고 있는 셈입니다. 인류의 멸망.. 당장은 아니더라도 자의든 타의든 먼 훗날 언젠가는 발생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인간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소설 문명에서 작가가 던지는 질문이라 생각합니다. 대양을 건너 미국땅 뉴욕으로 항해를 떠나는 유럽고양이 바스테트의 다음 이야기가 몹시 궁금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안한 사람들'(프레드릭 배크만)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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