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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루리 Aug 31. 2022

불릿 트레인(이사카 고타로)


전직 킬러 기무라는 아들 와타루의 복수를 위해 신칸센 열차에 몸을 싣습니다. 그 곳에 와타루를 다치게 한 그 녀석,  왕자가 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왕자라 불리는 이 어린 소년은 영악하기 그지 없습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한 얼굴로 사람들을 조종하니까요. 왕자는 와타루의 아버지가 자신을 찾을 것이란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왕자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주려 했건만 기무라는 오히려 손발이 묶인 신세가 되고 맙니다.


같은 시각, 신칸센 3호차에는 레몬과 밀감이라 불리는 쌍둥이 킬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도 본 모습을 본 적 없는 지하 세계의 거물 미네기시로부터 납치된 아들을 구해 오라는 명을 받습니다. 아들의 몸값이 담긴 트렁크를 회수하라는 명령은 덤입니다. 오랜 기간 킬러로 활동해 온 덕에 그들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여 도련님을 구출하고 몸값이 든 트렁크도 무사히 회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잠시 한눈을 판 사이 트렁크는 깜쪽같이 사라져 버리고 미네기시 도련님 역시 유명을 달리 해 버린 것입니다. 사람이 자다가 갑자기 죽을 수도 있는 것일까? 이 사실을 의뢰인이 알게 되면 그들은 죽은 목숨입니다. 급기야 밀감과 레몬은 그들의 잘못을 조금이나마 면피하기 위해 범인의 역할을 할 사람을 열차안에서 탐색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기.. 억수로 재수가 없는 사나이 나나오가 있습니다. 무당벌레라는 암호명을 가진 그 역시 킬러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또한 미네기시로부터 트렁크를 회수해 오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나나오에겐 의뢰가 참으로 간단해 보입니다. 나나오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밀감과 레몬이 가지고 있던 트렁크를 훔쳐 기차가 우에노역에 정차하기만을 기다립니다만..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한번도 빗나간 적이 없습니다. 나나오가 하차할 역은 참으로 멀기만 하군요.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까마득히 모른 채 각자의 일에만 열중하고 있는 지금.. 과연 그들은 그들이 계획한대로 충실히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요?


오늘 읽은 소설은 일본 추리작가 '이사카 고타로'의 2010년도 작품 불릿 트레인입니다. 원제는 마리아 비틀이지만 최근 영화로 개봉을 하게 된 덕분에 '불릿 트레인'이라는 영화제목으로 재출간이 되었습니다. 

소설의 성격을 한마다로 얘기하자면 '좌충우돌 킬러들의 코믹범죄 잔혹극'이라 이름 붙여도 좋을 것입니다. 밀감,레몬,무당벌레,늑대,왕자.. 킬러들의 이름만큼이나 그들의 개성은 참으로 독특합니다. 최근에 읽은 소설중에서 이만큼이나 캐릭터의 재미에 흠뻑 빠져들었던 작품이 있었던가요? 

사뭇 진지하고 민첩한 두뇌를 가지고 있는 밀감, 나사가 빠져 있는 듯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레몬, 사이코패스의 어린 시절이란 이러이러하다 표본을 보여주는 듯한 왕자, 알콜중독자이지만 부성애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기무라, 그리고.. 빨리 이 놈의 의뢰를 수행한 후 일상으로 돌아가고픈 나나오는 뭣 하나 뜻대로 일이 되지 않아 고민에 빠지고야 맙니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때로는 합심하고 때로는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대립합니다. 각자의 시선에서 위기를 타개할 방법을 모색하지만 그들의 머리 위에 또 다른 누군가가 서로를 노려 봅니다. 일련의 사건들이 반복될수록 정답을 찾고자 노력하는 그들의 시선이 참 허망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의 사건을 교차되는 각자의 시선에서 경험함으로서 긴장감이 배가 되는군요.

이후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지 눈을 뗄 수 없는 흥미진진한 사건전개는 소설의 마지막장에까지 끊이지 않습니다. 덕분에 70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소설을 그야말로 단숨에 읽고야 말았습니다. 중반 이후 사건의 전개방식은 멈추지 않고 달려가는 신칸센의 그것을 보는 것처럼 한치도 망설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소설은 단순히 극적 재미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소설 중간중간 캐릭터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가는 여러 사회현상을 본인만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혜안을 드러냅니다. 그들은 왜 지금 이 순간, 이 곳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인지 인간세상의 갖가지 논쟁거리를 예로 듭니다. 흡사 사회문제와 심리문제를 연구하는 학자의 식견을 보는 듯 합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볼까요? 최근 한국에서도 촉법소년의 처벌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죠. 이 소설에서도 작가는 촉법소년에 대한 대중의 시선을 달리 할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인 왕자는 중학생에 불과한 어린 나이입니다. 그는 어른이고 어린이고 간에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그들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인간은 결국 주위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서 행동한다는 거야. 인간은 이성이 아니라 직감으로 행동해. 그러니까 자기 의사로 뭔가를 결단한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주위 사람들에게 자극이나 영향을 받는 거지. 나는 독립했다, 오리지널한 존재다 하고 생각하지만, 그래프를 구성하는 일원에 불과한 거야. 알겠어? 예를 들어 어떤 사람한테 '당신 좋을 대로 행동해도 좋다'고 말하면, 그 사람이 가장 먼저 뭘 하는 지 알아? 다른 사람들을 살펴. 너 좋을 대로 해도 된다고 했는데도 그렇다니까. 자유의사로 행동하면서도 타인을 신경 쓰는 거지. 특히 '정답이 분명치 않은 중요한 문제' 일수록 사람들은 타인의 대답을 흉내 내. 우습지? 그런데 인간이란 본래 그렇게 생겨먹었어."

요즘의 심리스리러물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가스라이팅에 대한 문제제기를 작가는 10여년전부터 이미 염두에 둔 것입니다. 그런데 소설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중에 진정한 악인이라 생각되는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제일 나이가 어린 왕자뿐이었습니다. 평소 가슴에 담고 있던 '악인은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것이다.' 라는 명제에 부합하지는 않지만.. 작가 나름의 '악인의 정의'에 대해 골몰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비단, 왕자뿐 아니라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나름의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듯 철학적 물음을 던지곤 합니다. 교차되는 그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듣는 재미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소설의 매력입니다. 서사가 뛰어난 작품전개뿐만 아니라 풍부한 캐릭터적인 재미까지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군요.


결국, 마지막에 살아남은 자가 위대한 것일까요? 극의 주인공이 명확해지는 순간 소설은 어지러웠던 갈등을 봉합하고 알 수 없는 선악의 결과를 배제한 채 나름 유쾌한 결말로 매조지됩니다. 그래서 살아 남은 '그'의 또 다른 임무가 궁금해집니다. 상당히 만족스럽게 책을 읽은 탓인지 며칠 전 개봉한 영화도 보고 싶어 지는군요. 생각보다 평이 좋지 않아 아쉽습니다만.. 소설과 비교하며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습니다. 킬러들의 유쾌한 수다가 또 한번 머릿속에 그려질 것 같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tiHGIQ3JfGc&t=430s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7408/clip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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