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잠 (2)

by 드루리

진우의 이야기 1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들린다. 그제서야 한없이 캄캄하기만 하던 눈앞이 새하얀 캔버스로 바뀌었다. 나는 더듬거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팔을 뻗어 창문을 활짝 열었다. 알싸한 새벽공기가 얼굴에 부딪힌다. 밤새 눈이 왔었구나. 귀로만 세상의 모든 것을 느끼는 나에겐 한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시간이다. 마음 속 어딘가에 감춰 두었던 오랜 풍경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누군가 환한 미소로 나에게 손짓을 한다. 저 사람이다. 언제나 나만 바라보고 나만 생각하는 우리 엄마.


'진우야, 우리 아들 이리 와서 눈 좀 만져 봐. 꼭 솜사탕 같지 않니?'


한동안 쉴 새 없이 눈사람을 만들던 엄마가 나를 향해 뒤돌아본다. 기대에 찬 내 얼굴을 보자 당신 입가의 주름이 어느새 사라진다. 스스로의 신세를 한탄하는 현실세계에선 전혀 경험할 수 없는 풍경이다. 나는 단번에 알아 버렸다. 지금은 볼 수도 없는 내 얼굴이 환희에 가득 차 있었음을.. 그러나 아련한 그 추억마저도 오래 시간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밖에서 거칠고 투박한 음성이 들려온다.


"에잇 미치겠네. 퉤. 대체 이 많은 눈을 어떻게 치워야 하는 거야."


사람들의 볼멘소리가 마음을 어지럽힌다. 옛 추억에 사로잡힌 누구처럼 새햐얀 눈을 보고 환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험난한 일상에 지친 마음을 추스러야 하는 대개의 사람들은 하얀 세상을 원망하기 일쑤였다. 그들의 배부른 투정이 부럽기만 하다. 미치도록 그립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울고 웃었던 평범한 일상이.. 아버지를 일찍 여의긴 했지만 이겨낼 수 있었다. 남들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용기를 내는 원동력이기도 했으니까. 무엇보다 나만 바라보고 사는 엄마를 위해서라도 나는 열심히 살아야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바로 사회로 뛰어들 작정이었다. 남들 못지 않게 공부를 곧잘 하긴 했지만 대학은 나에게 사치일 뿐이었으니까.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겠다는 어린시절의 꿈은 잊은지 오래다. 장사를 하겠다는 머릿속 구상은 완벽했다.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 자부했다. 나는 누구보다 먼저 희망찬 앞날을 설계했고 누구보다 밝은 미래를 구상했다. 불과 1년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신은 나에게 자그마한 희망마저도 허락치 않았다. 지금의 나는 내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불구의 신세다. 눈과 다리는 내 의지대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침대옆에 자리한 책상도 저만치 멀게만 느껴진다. 이토록 책상 앞에 앉아서 책을 펼쳐보고 싶을 줄은 몰랐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소중함은 잃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법이다. 막연하게나마 걷지 못하는,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머릿속에 그려보긴 했지만 이토록 절절하게 가슴을 에일 줄은 미쳐 알지 못했다. 과연 몇이나 될까. 창창한 미래를 꿈꾸던 10대 청소년이 하루 아침에 눈도 잃고 걷지도 못하게 될 줄이야. 애석하게도 아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1년 전 그날의 사고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엄마와 여행을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중앙선을 넘어오던 누군가의 차량이 그대로 우리를 덮쳐 버렸다. 엄마는 상처가 그리 심하지 않아 며칠만에 퇴원을 했지만 나는 다리를 다친데다 화염이 눈앞으로 번진 탓에 불행하게도 시력을 잃고 말았다. 엄마는 오랜 기간 그게 당신의 탓이라며 자책하셨다. 조금만 더 천천히 운전을 했더라면, 나를 앞좌석이 아니라 뒷좌석에 앉혔다면.. 애초에 엄마가 원한 그 여행을 가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당신은 스스로를 헤어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엄마의 어지러운 마음을 부채질한 것은 바로 나자신이었다. 아무런 의지도 없이 침대에 누워만 있는 나를 엄마는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는데도 말이다.


"진우야,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안 돼. 한 술이라도 떠야지."


나는 엄마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저 황망한 내 처지만 한탄 할 뿐이었다.


"필요 없어. 이거 치우라고요."


나는 엄마의 면전에서 당신이 곱게 차려주신 밥상을 몇 번이고 뒤엎었다. 짧디 짧은 엄마의 탄식이 씩씩대는 내 숨소리로 뒤덮여 버렸다. 잠시동안 침묵이 흐른다. 미세하게 고르지 못한 숨소리로 엄마가 흐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나를 놓아 버렸지만 엄마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엄마는 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무던히도 얘를 쓰셨다.


진우의 이야기 2


오랜 기간 악몽에 시달렸다. 나는 늘 내게 남아 있는 양손마저 모두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트라우마에 사로 잡혔다. 밤늦게 악몽을 꾸다 잠에서 깰 때면 그보다 더 쓸쓸할 수가 없다. 이 세상에 나 혼자만 남았다는 외로움에 몸서리친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어느 순간, 뒤척이다 잠에서 깰 때면 항상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게 누구인지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엄마다. 엄마도 마찬가지였지만 나 역시 엄마가 이 공간안에 있음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내색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오랜 기간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알고도 모른체 했다. 엄마는 긴긴 밤이 지나도록 나를 묵묵히 바라 보았다. 곁을 지켜 주었다.


진우의 이야기 3


역시 시간은 모든 것을 치유한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마음도 조금씩 무뎌졌다. 아니, 스스로의 처지를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백퍼센트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더 이상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그 순간 이제 조금은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엄마가 나에겐 더 없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의 나는 엄마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니까. 그래서 더더욱 좌절할 수가 없다. 내 몸과 마음이 예전과 달라졌다고, 내 의지가 꺾였다고 해서 엄마의 희망마저 꺾어 버릴 수는 없다. 당신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만 바라보고 있을 테니까. 지금의 엄마에게는 내가 존재하는 그 자체가 희망이라고 말이다.


진우의 이야기 4


꿈을 꾸었다. 이제는 악몽이 아닌.. 1년전 언제나 함께였던 친구들과 함께 푸른 들판을 마음껏 뛰어 다녔다. 시원한 바람이 내내 볼을 간지럽힌다. 살며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깨달았다. 꿈이구나.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어. 이런 행복한 꿈을 꾸는게 얼마만인가. 의도적으로라도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다시 걸을 수 없는 일상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다.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들판을 활보하고 뛰어다니는 내 다리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잊지 말자. 나는 이길 수 있다. 걸을 수 없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다시 한번 더 마음을 다잡았다. 이런.. 점점 정신이 맑아진다. 이제 꿈에서 깨어날 시간인가 보다. 굳건하게 결심을 해 봐도 나도 모르게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좀 전까지만 해도 새가 지저귀고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파란 들판위에 살며시 뉘였던 내 몸은 창밖에서 사람들의 발소리가 쿵쾅거리는 어두운 반지하방안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얀 붕대로 앞을 가린 내 눈은 여전히 감겨 있지만 정신은 이토록 맑을 수가 없다. 하루 종일 누워 있는 시간이 길다고 해서 머리까지 잠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내 머리는 그 누구보다 명석하게, 그 누구보다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이제 다시 하루를 시작할 시간이다. 나는 촉촉하게 젖어 있는 눈물을 닦아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번 하는 일이지만 좀체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휠체어로 옮겨 타는 시간이 이렇게 험난할 줄 알았으랴. 좀 더 손쉬운 방법이 없을까. 매번 고심을 하고 재차 몸을 움직여봐도 그 자리가 낯설기만 하다. 나는 긴 한숨을 내쉬며 가까스로 몸을 휠체어에 옮긴 후 책상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도 변함없이 아침 식사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다. 엄마는 이전보다 훨씬 더 열심히 내 식단을 꼼꼼히 챙기셨다. 그게 당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말이다. 오늘 아침은 소고기무국이다. 입맛이 좀 없었으면 좋겠건만. 나는 입 안 가득히 밥,반찬을 쑤셔 넣으며 말끔히 그릇을 비워냈다. 하기 싫은 일은 그렇게도 낯설게 느껴지건만 어째 눈을 감고 밥 먹는 일은 이렇게나 빨리 익숙해질까. 엄마는 오늘도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이신 모양이다. 우리 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엄마가 일을 하러 나가고 나는 하루종일 방안에서 사색에 잠기는 일상이 고착화되어 버렸다. 내 처지를 부정하는 시간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탓에 나는 그 어떤 일도 머리속에 담아두지 못했다. 집의 상황도 그렇거니와, 학교 생활도, 절친했던 친구들도, 애틋한 마음을 공유했던 여자친구도.. 어떤 방식으로든 이전의 일상을 되찾으리라. 요 며칠간 나는 고뇌에 빠졌다. 과연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돈을 벌고 사람구실을 할 수 있을까? 엄마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다. 걸을 수 없으니 야외활동이 수반되어야 하는 일은 하지 못할 것이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책상앞에 앉아 무언가를 들여다 보는 일도 하지 못한다. 한없이 작아져 버린 나의 세상은 나에게 아무런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결국 밖에 나가 무엇이든 부딪혀 보고 스스로 답을 찾아야만 한다. 좁은 방안에 갇혀 버린 지금의 나는 어디까지나 불완전한 한낱 미물일 뿐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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