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잠 (4)

by 드루리

명희는 시계를 쳐다보며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1시 30분, 아직 30분이나 남았으니 시간은 충분하다.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조금씩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명희는 해야 할 일들을 하나둘 정리하기 시작했다. 몇번이나 연습하며 두번,세번 확인했던 내용들도 다시금 머릿속에 되뇌였다. 나에겐 이것이 마지막 기회일런지도 모르니까.


인주대학교 의대 본관 대강당. 이 곳이 지난 십수년간 줄기세포를 연구했던 한국계 미국인 찰리 강 박사가 오랜 연구결과를 이곳 지역민들에게 발표하는 곳이다. 찰리 강은 벌써 십수번째 전국 각지를 돌며 자신의 업적을 공공연하게 홍보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과학전문지 사이언티스트에 첫 논문이 게재된 지 십수년이 흘렀다. 이제 찰리 강은 자신의 연구가 막바지에 다다랐음을 공표했다. 그리고 수년 내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이 가능할 것으로 예견했다. 오랜 기간 불구의 몸을 이끌고 작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다수의 환자들에게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터였다. 어쩌면 나도 예전처럼 다시 두발을 땅에 짚고 일어설 수 있는 것일까. 막연하게나마 꿈꿔왔던 정상인의 삶이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희망에 가득찬 이들이 줄을 이었다. 명희는 선착순으로 배정된 좌석에 착석하기 위해 인파를 헤치고 급히 강당안으로 몸을 옮겼다.

'휴' 자리에 앉은 명희는 큰 한숨을 내쉬고는 한참동안 주위를 둘러 보았다. 이번에는 다행히도 단상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명희는 지난 몇개월간 단 한번도 빼놓지 않고 찰리 강의 강연회를 따라 다녔다. 명희는 자신의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지금도 끊임없이 메시지가 전송되고 있다. 명희는 그 메시지를 거들떠 볼 여유가 전혀 없었다. 자신의 인생에 이토록 중요한 시기가 또 언제일지 알 수가 없다. 자신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타인의 간섭을 최대한 멀리 하려 애썼다. 명희는 잠시 눈을 감고 의자 등받이에 살며시 허리를 기대었다. 그러나 잠깐의 쉬는 시간도 없이 갑자기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뒷편 입구쪽에서 들려 왔다.


"네, 지금 찰리 강 박사님이 들어 오고 계십니다."


찰리 강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도 전에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찰리 강은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지지자들의 손을 단 한명도 허투로 놓치지 않고 차례차례 악수를 나눴다. 명희는 좀전까지 손안에 꼭 쥐고 있었던 핸드폰을 주섬주섬 가방안에 집어 넣고는 크게 쉼호흡을 했다. 오랜 기간 기다려왔던 순간이다. 명희는 단상위로 올라온 찰리 강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 보았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그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벌써 십수번째 먼 발치에서 그의 모습을 마주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자신이 원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오늘만큼은 달라야 한다. 그가 나를 주목해야만 한다. 나는 오늘 그의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사회자의 짧은 소개가 끝난 후 찰리 강이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안녕하세요. 찰리 강입니다."


여지 없이 또 한번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록 박수소리가 잦아들지 않자 찰리 강은 조용히 팔을 들어 그들의 행동을 제지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항상 고국에 올 때마다 이렇게 열렬히 환영을 해 주시니 제가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

다. 다들 잘 지내셨죠? 저는 막바지 연구에 한참이라 요즘 눈코 뜰새 없이 바쁘네요. 에.. 또 그러니까.."


이제 본론에 들어갈 시간이다. 사람들은 일제히 단상을 아니, 찰리 강의 입을 주시했다. 오늘 강연에 참석한 일반인들의 부류는 크게 두가지로 나뉘었다. 첫째는 단순히 한국출신의 세계적인 과학자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다. 최근 몇년간 언론이 앞다퉈 그의 연구행적을 기사화했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이제 찰리 강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대한민국 국민은 거의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과학자!! 이처럼 아름다운 수식어가 또 어디 있으랴. 그의 이름은 방송가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계, 사회저명인사들, 그리고 세상물정에 어두운 소외계층에까지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둘째는 불구의 몸을 이끌고 내가 수혜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소망하는 이들과 그들의 가족이었다. 그들의 애절한 사연 역시 몇날며칠이고 매스컴에 오르내렸다. 일부 개인방송사는 구구절절한 그들의 사연을 앞다퉈 보도했고 대중은 누가 먼저 찰리 박사의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 제멋대로 우선순위를 정하기 시작했다. 그들 사이에 명희가 있었다. 명희는 침대에 누워 있는 아들 진우의 얼굴을 다시금 떠올렸다. 이건 진우를 위하는 일이라고, 진우도 분명 기뻐할거라 자위하며 명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찰리는 오랜 기간 그의 연구에 대한 결과를 대중에 공개했다. 그의 언행은 언제나 그렇듯 확신에 차 있었고 눈빛은 선명했다.


"지금부터 질문을 받겠습니다. 손을 들어 말씀해주십시오."


오랜 시간 지속된 찰리의 연설이 끝난 후 사회자가 단상에 나와 일반인의 질의시간을 안내했다.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일제히 손을 들었다. 잘 생겼다는 등, 멋지다는 등 온갖 미사여구가 찰리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동원되었다. 덕분에 강연장은 화기애애한 웃음이 넘쳐났다. 그런 유쾌한 분위기를 일순간에 무너뜨려 버린 것은 누군가의 사소한 질문으로부터 촉발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인원이 많은데 우리가 다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건가요?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찰리는 걱정 말라는 듯 큰소리로 말했다.


"물론입니다. 이렇게 열성적으로 저를 응원해 주시는데 여기 계신 모든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가 보장해야죠."


찰리의 대답이 나온 후 또 한번 박수소리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사람들이 듣고 싶은 얘기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과연 내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건지, 그렇다면 그 시기는 언제인지, 치료비는 얼마이며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정상인의 모습과 최대한 비슷하게 완치될 수 있는 건가 하는 것 뿐이다. 일반인들에겐 연구내용이 무엇인지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중요하지가 않다. 그저 언제쯤이면 내가 수혜자가 될 수 있는지 그게 궁금할 뿐 여타의 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사실 찰리는 아직까지 대중에게 명쾌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명희는 가방안에서 핸드폰 진동을 느꼈다. 핸드폰 문자를 확인한 그녀는 먼 발치 구석에 앉아 있는 한 남자와 시선을 교환했다. 명희의 의중을 확인한 남자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인 후 단상을 향해 손을 들고 발언권을 얻었다.


"그렇지만 완성된 줄기세포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에게 치료를 약속할 수 있는 건가요? 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불법 난자 시술건도 박사님은 아직 명쾌하게 설명을 하지 못하고 계시잖습니까."


찰리는 난감하다는 듯 주최측 관계자를 쳐다 보았다. 오늘 강연장에서는 이런 의심의 눈초리가 전혀 없어야 한다고 사전에 두번,세번 확인을 한 터였다. 평소 그에게 우호적인 시선을 보냈던 기자들만 출입을 허락했건만 이렇게 물을 흐리는 사람은 또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사회자가 단상에 올라 그의 말을 제지하러 하자 남자는 그보다 먼저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는 솔직하게 오늘 구체적인 일정을 확인하고 싶어 이 자리에 왔습니다. 다들 그렇지 않나요? 저는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이 곳에 왔습니다. 지난 몇년간 박사님이 약속하신 일정은 차일피일 미뤄지기만 했습니다. 언제쯤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건가요?"

"맞아요."

"나도 알고 싶어요."

"옳소!!"


한 사람의 입에서 물꼬가 터지자 이윽고 조바심에 가득 차 있던 다수의 사람들은 앞다퉈 봇물을 터뜨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이다. 명희는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벌써 몇 번이나 모의를 했던 상황이지만 이번만큼 절묘하게 자신이 원하는대로 흘러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급기야 강연장은 찰리 강의 열렬한 지지자들과 치료를 받겠다는 목적에 자리한 이들간의 팽팽한 대립으로 이어졌다. 찰리는 끙 앓는 소리를 내었다. 이런 순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안 그래도 진척이 없는 연구결과 때문에 머릿속이 혼란스럽기만 한데 하찮은 너네들의 마음까지 내가 신경을 써야 한단 말인가. 그 때였다. 누군가의 낭낭한 목소리가 강연장을 가득 메웠다. 바로 명희였다. 명희는 사전에 계획한대로 마이크를 전달받아 강연장이 떠나갈만큼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다들, 제 얘기를 들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목소리는 애절하면서도 또렷했다. 왠지 모를 절박한 목소리의 힘이었을까. 만화 같은 일이지만 강연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일제히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결핍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소중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잃지 않으려고 여기 다 모여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 행복한 사람들 아닌가요.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는 것은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평생 그 소중함을 모른 채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말이죠."


찰리를 비롯해 강연장에 모인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명희는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이내 수십, 수백번을 연습했던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저에게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이 있어요. 다들 비슷한 경험을 갖고 계시겠지만 제 아들 역시 걷지를 못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우리 아들 얼굴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하루만이라도, 딱 하루만이라도 우리 아들 아프지 않고 힘차게 뛰어다니는 모습 보고 싶어요. 어릴 때는 그렇게 뛰지 말라고 다그쳤는데 그 때가 얼마나 후회스럽고 그리운지 모릅니다. 무릎이 깨지더라도 그냥 원없이 뛰어 다니라고 놔 둘걸. 그 때는 그게 행복인 걸 몰랐어요. 사실 내 아집일 뿐이었는데. 내가 고함을 치고 나무란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는 게 아닌데. 그저 내 욕심때문이었어요. 그렇게 해야만 부모의 역할을 조금이나마 다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몰랐습니다. 아이는 내가 말로 가르쳐야 자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동하는대로 보고 배운다는 사실을.."


정말 짧은 시간이지만 명희의 사연은 모든 부모의 마음을 대변하는 그 순간부터 이미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다. 다른 이유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이 이 곳에 온 목적과 개개인의 사연을 명희의 경험에 빗대어 그 어느 때보다 확연히 상기시켜 줬기 때문이다. 이제 본론에 들어갈 시간이다.


"저도 여러분들과 마찬가지에요. 지금이라도 제 아들이 걸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거에요. 그런데 박사님이 저희에게 치료를 약속할 의무가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저 묵묵히 응원하고 연구가 잘 되길 바라야 합니다. 그래야만 최소한의 기회라도 주어질 테니까요. 저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이 곳에 왔어요. 절대 무언가를 바라고 당신이 뭔가를 해 주기를 원하고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닙니다. 지금도 밖에는 박사님의 연구결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시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랑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 말이에요. 그런데 박사님은 어떻게든 우리에게 최대한의 은총을 베풀고자 노력하고 계시잖아요. 설령 내가 선택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물론 슬프겠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을 겁니다. 부모는 좌절해서는 안 되는 존재니까요. 부딪히고 또 부딪힐 거에요. 지금의 제가 부딪히고 있는 것은 박사님을 응원하고 어떻게든 당신의 연구가 결실을 맺길 기도하는 일이에요. 우리 제발 분열하지 말아요. 우리마저 이렇게 싸우고 대립한다면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명희의 일장연설은 급속도로 강연장의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하지만 어디에나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웅성대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잠시 누그러지자 누군가가 반론을 제기했다.


"그럼, 박사님의 연구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상관없이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도만 하자는 건가요?"


명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패하긴 왜 실패해요. 박사님은 반드시 성공하실 거에요. 박사님이 더 빨리 연구를 완성할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 줘야 한다는 겁니다. 연구결과가 나오면 그 때가서 치료시기를 논의해도 늦지 않습니다. 고개 숙여 부탁드립니다. 박사님과 함께라면 우리 아이들 꼭 걸을 수 있을 거에요. 여러분, 제발 함께 해 주세요."


명희의 목소리에는 남들과 다른 힘이 있었다.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절제된 목소리는 뭇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게다가 불구가 된 아들을 위하는 마음은 어느덧 같은 아픔을 가진 서로의 마음을 한 곳으로 결집시켰다. 아들을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이 사람들의 폐부를 찔렀기 때문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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