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잠 (14)

by 드루리

19

진우의 이야기


어두웠던 시야가 조금씩 밝아오기 시작한다. 그동안 눈앞을 가로막고 있던 방해물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다. 또 꿈을 꾸는 것일까? 아니, 분명히 다르다. 스스로도 눈의 변화를 조금은 인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침대에서 살며시 몸을 일으킨 후 가느다란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았다. 미세하게나마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정말이다. 내 눈은 조금씩 옛 상태로 돌아오고 있다. 이런 순간이 오길 얼마나 고대했는가.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내 눈이 좋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엄마가 정말 기뻐하실텐데.. 엄마.. 우리 엄마.. 그제야 나는 내가 어젯밤 어떤 상황에 쳐해 있었는지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이내 방안의 훈훈한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지난 밤 으스스한 한기에 몸서리치며 잠자리에 들었는데 오늘은 너무도 따뜻하고 개운한 몸상태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깔끔하게 여미어진 이불과 베개, 손끝으로 느껴지는 옷매무새가 당신의 존재를 실감하게 했다. 그래, 엄마가 돌아오신 거야. 그동안 손으로 한참을 찾아헤매던 휠체어의 존재가 오늘은 손쉽게 시야에 들어왔다. 아직 정확한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미세하게나마 사물의 형체를 느낄 수 있었던 나는 전보다 훨씬 가벼운 몸놀림으로 휠체어에 옮겨 타 거실로 나갔다. 보글보글 냄비끓는 소리가 부엌에서 들려 왔다. 엄마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흐릿하게나마 엄마의 뒷모습을 눈으로 쫒았다. 지난 1년간 머릿속으로만 그려본 엄마의 모습이 이제는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날 것만 같다. 나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힌 후 조심스럽게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는 요리에 열중한 탓인지 내 목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나는 이번엔 더 큰 목소리로 힘차게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가 나를 향해 뒤돌아 보았다. 그 모습이 언제나 나만을 바라보는 예전의 당신 모습과 똑같았다.


"응. 진우야, 일어 났어? 배고프지? 조금만 기다려 줄래. 엄마가 어서 밥 차려 줄게."


이틀이나 나를 외면하셨으면서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엄마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내 상태가 어떤지 내가 어떤 마음으로 엄마를 기다렸는지 당신은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난 이틀간 나를 어둠속에 방치해 두었던 엄마에 대한 원망때문일까, 아니면 당신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는 감격때문이었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 대체 뭐에요? 어디 계셨던 거냐구요. 어떻게 나를 이틀동안 내버려 둘 수가 있어요."

"으..응 그게.."


갑작스런 나의 외침이 당황스러웠는지 엄마는 말을 더듬으셨다. 사람의 감정이란 그런 것일까. 내가 야속한 심정을 입밖으로 내는 순간 당신을 향한 원망은 겉잡을 수 없이 봇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는 점점 격앙된 말투로 목소리를 높였다.


"어떻게 나를 이틀동안 내버려 둘 수가 있어요. 나는 엄마밖에 없는데. 내가 얼마나 외롭고 슬펐는지 알아요. 내가 된장찌개를 끓였다고요. 나도 할 수 있다는 거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엄마는 대체 어디 있었던 거에요."


엄마가 내게 다가와 살며시 안아주길 바랬다. 그거면 충분했다. 미안하다고, 내가 잘못했다고.. 그리고 괜찮다고. 그러나 한참을 침묵하던 엄마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래, 맞아. 나는 엄마자격이 없는지도 몰라. 내가 어떻게 네 엄마가 되겠어. 아니, 어떻게 네가 내 아들이 될 수 있겠냐고."


예상치 못한 엄마의 대답에 나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어..엄마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서 있던 엄마는 마저 일을 마치려는 듯 이내 식탁 위에 밥상을 차리셨다.


"배고프겠다. 어서 밥 먹어."


엄마는 내 곁을 지나 당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좀전까지는 알지 못했는데 우리 엄마 예전보다 훨씬 더 야위어 보였다. 엄마 역시 그동안 내게 말도 하지 못한 채 엄청난 고뇌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분명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을 것이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엄마에게 원망섞인 투정을 부린 것이 후회가 되었다. 그 순간 당신의 모습을 눈으로 쫓는 내 모습이 의아했는지 엄마가 나를 향해 뒤돌아보며 물었다.


"너, 어.. 어떻게 된 거야? 눈이 보이는 거니?"

"네, 맞아요. 며칠전부터 눈이 보이기 시작해요. 아직까진 미세한 형체밖에 보이지 않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다 회복될 거 같아요. 잘 됐죠. 엄마."


나는 좀전까지 화를 내며 감정을 토로했던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린 듯 들뜬 어린 아이마냥 신나게 말했다.


"잘 됐구나. 정말 잘 됐어. 그래.. 이거면 된 거야."


눈물 나도록 감격스러운 순간이지만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나 때문이다. 내가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이 순간을 망쳐 버렸다. 엄마는 생각이 많아진 듯 잠시 방앞을 서성이다 이내 나를 보며 말했다.


"된장찌개 맛있더라. 정말 잘 먹었어."


그리고 조용히 방문이 닫혔다. 엄마에게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마음을 추스릴 시간이.. 지난 이틀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당신 역시 나 이상으로 힘든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나는 내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정말 바보같이..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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