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우울하지만 우울해서는 안 되는.
타인이 나를 평가하기에 나는 참 밝은 사람이다
왜 그런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또 밝은 성격이 어떤 성격을 정의하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밝은 사람은 아니다. 그저 노력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 인생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감정에 매몰되어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순간들을 망치고 싶지는 않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내 마음을 다스리려고 노력하며, 짜증 나는 상황이 아니라며 나를 억누르고, 또 나만 억누르면 공리주의가 달성되리라 믿는다. 노력한다.
근데 이런 생각이, 또는 ‘너는 참 밝구나.’라는 평가가 어느 순간 나를 옥죄기 시작한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아이를 낳고 나는 예전보다 훨씬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내가 아무리 많은 사랑을 퍼부어도 모자라다고 평가할 수 있을 만한 존재가 있음에 감사하고, 또 한없이 그 순간들을 즐기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순간이 행복해야만, 또는 괜찮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오늘은 특히 나에게 힘든 날이었다.
평소 컨트롤이 잘되는 나지만, 가끔은 그렇지 못해 말이 생각을 앞설 때가 있고, 그래서 별거 아닌 상황을 악화시킬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러했고, 역시나 상황은 예외의 나를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매몰차게 나를 몰아세웠고, 나는 그저 나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마 몇 주간 아팠던 딸을 보살피느라 쌓였던 피곤이 몰려와서일 수도, 또는 둘째를 기다리는 마음을 무시하고 또 터져버린 생리 때문 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구차한 변명일 뿐,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한 내 잘못인 것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참아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평소 자존감이 높은 나라고 자부했지만, 오늘만큼은 자존감도 바닥을 쳤다. 존재가치가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나는 뭘까. 내가 내 아이의 엄마라는 것을 빼놓고, 나는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존재일까?
너무 우울해서 땅을 파고, 또 파고, 바닥까지 가려는 순간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내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내 아이를 키우는 지금의 순간을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순간으로 생각하고 있다. 근데 그런 내가 엄마라는 것을 빼놓고 지금의 내 존재의미를 따져볼 필요가 있을까?
물론 내가 엄마라는 이유로 나의 마음을 항상 뒤로 해놓고 싶진 않다. 하지만 나는 내 아이의 우주이고, 내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 최고의 존재이기에 다른 평가는
필요하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되었고, 그것으로 내 존재가치 역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아이의 엄마이다.
그걸로 되었다.
우울했지만, 우울하지만은 않다.
오늘 엄마,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어릴 적의 내가 되고 싶었다.
몸이, 마음이 힘들면 그저 다른 생각 없이 마음껏 생떼 부릴 수 있고, 그런 나를 받아주던 존재가 항상 곁에 있던 나의 어린 시절(물론 지금도 내가 힘들다 하면 만사를 제치고 나를 위해 달려와주시리라, 그 믿음에 한 치에 의심도 없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자신의 힘듦을 꾸역꾸역 참아내고, 애써 웃으며 나를 받아주던 엄마와 아빠가 있었기에 내 어린 시절이 편안함으로 기억되는 거겠지.
이런 생각이 오늘의 나를, 내 감정을 또 한 번 삼키게 이끈다. 나에 대한 어떠한 평가가 나를 어떻게 옥죄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의 아이가, 내가 그러했듯 오늘도 엄마가 있었음에 평온함으로 꽉 채운 하루를 보냈다면 그 자체가 나에겐 만족인 것을.
한 번 웃어보자.
그럼 내 긴 인생에서 오늘은 또 찰나일 뿐일 것이니.
니는 가끔 우울하다.
하지만 우울해서는 안되는, 아니 내 아이의 엄마이기에 우울하지만은 않은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