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기본적 욕구 충족에 관하여
내 딸은 공주병에 걸려있다.
꽤나 일찍 시작된 공주병은 그 끝을 모르고 벌써 2년째 순항 중이다.
엄마인 나란 사람 자체가 디즈니마니아라 딸의 공주병은 시작부터 엄마가 원인이었고, 엄마가 증폭작용을 돕고 있으며, 지속성 역시 엄마에게 일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드레스 입히기란 것이 꼭 운동과 같아서 입히고 나면 너무 예쁘고 뿌듯하지만, 입히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귀찮다. 입히고 나서도 화장실을 가거나 할 때는 귀찮기가 짝이 없다.
그래도 드레스를 입고 공주놀이를 하는 딸의 모습은 2년이 지난 지금도 싫증이 나지 않을 정도로 너무 귀엽고 예쁘다.
이런 나에게도 권태기가 있었으니, 바로 공주병 피크기였다. 일주일에 5-6일을 드레스를 입겠다, 그에 맞는 머리를 꾸며달라 하시니 아침마다 진이 다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딸은 또 드레스를 입겠다고 했다.
“엄마! 나 오늘은 이 드레스를 입을래! “
“안돼 “
“왜?”
언제나 이유가 있는 거절을 하려고 노력하는 나지만 이날만큼은 그 어떤 이유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오늘은 좀 그냥 바지 입어.”
“힝….. 공주드레스 입고 싶은데….”
잔뜩 풀이 죽은 아이의 슬픈 표정을 뒤로하고 레깅스에 티셔츠를 꾸역꾸역 입혔다.
등원시키고 나서도 한참 동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딸아이의 표정이 계속 떠올라서 마음이 저릿저릿 했다.
엄마를 만났다.
“엄마, 이런 일이 있었어. 근데 매일 드레스라니 너무 하지 않아?”
아무리 예쁜 손녀딸이어도 자기 친딸이 힘들어하는 건 죽어라 싫어하시는 나의 엄마라 당연히 내 편을 들어주실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대답은 예상 밖.
“옷은 원하는 대로 입혀라.”
“안돼. 너무 힘들어.”
“인간의 기본적 욕구가 의식주다. 그중 제일 첫 번째가 의고. 어린것이 마음대로 입고 싶은 옷도 못 입으면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하겠니. 그냥 옷은 원하는 대로 입혀라.”
어릴 적 머리를 산발을 하고도 묶지 않겠노라 뒤집어지고, 빨지도 않은 드레스를 입겠노라 고집을 부려서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찍혔던 사진이 생각났다.
아, 그래. 나의 엄마는 이런 분이셨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란 과연 언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또 욕구의 충족이란 어느 수준에 이르러서야 만족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불만족된 욕구가 아이에게 큰 스트레스가 될까?
아마도 그럴지도. 하지만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부모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건 괜찮은 걸까?
나의 육아의 기준은 내가 행복한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다. 딸을 처음 만나면서부터 설정한 나름의 철칙이 있다면 내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것이다. 내가 행복해야 아이에게 한 번이라도 더 웃어줄 수 있고, 인내심 역시 한번 더 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주로 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을 바에 아이의 욕구는 조금 외면하는 방향을 선택한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당분간은 딸의 이런 귀여운 공주놀이에 장단을 맞춰줄 생각이다.
공주병을 함께하던 딸아이 친구가 공주병에서 졸업한 것을 보고 나서 결심했다. 어느 날 갑자기 검은색 옷을 입고 나타나 자기는 이제 시크하다며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대할 날이 머지않아 올 것 같기 때문이다.
조금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머지않아 다가올 그날을 생각하면 그 정도 스트레스쯤이야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어릴 적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을 매일매일 만나고 있는 것이다. 매일매일이 동심으로 돌아가는 날이고, 그래서 매일 아침이 알록달록 예쁘기만 할 것이다. 거기에 내 딸의 예쁜 미소까지 함께하니 그곳에 나의 스트레스가 있을 순 없을 것 같다.
딸의 욕구 충족을 위해 조금 더 노력해 보자.
그것이 곧 나의 욕구 충족이기도 하니,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며 조금 더 노력해 보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