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는 달라서 더 바람직한
내 남편은 이성적이고 냉철하며, 직설적이다.
예전 성격분석법 기준에 따르면 B형, 경상도, 사자자리 남자. 한 마디로 안 좋다고 하는 건 다 갖고 있다. 안 좋은 성격은 아니지만, 가끔 공감능력이라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MBTI는 다른 건 몰라도 Triple-T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 남편에게 딸이 생겼다.
남편은 딸을 너무나도 예뻐한다.
일하는 시간이 아닌 모든 시간을 딸에게 할애하는 편이고, 둘만의 시간도 무척 소중하게 여긴다.
하지만 내 눈에 남편의 행동은 과연 애정 어린 행동인 것인지 의심을 갖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훈육의 순간은 더욱 그러하다.
물론 단호함은 필요하지만, 너무나도 냉정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에는 가끔 나까지 무섭다.
예를 들자면, 딸아이가 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부엌에 들어온 적이 있다.
물론 내가 부엌에 있어서 아이를 막았고, 남편도 엄마가 요리할 때 들어가면 위험하니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를 했다. 하지만 딸아이는 고작 5살. 까르르 웃으며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들고 자꾸만 부엌으로 들어왔다. 엄마와 부딪힐뻔한 상황이 벌어졌고, 깜짝 놀란 나의 호들갑에 결국 남편의 훈육이 시작됐다.
"아빠가 엄마 요리할 때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지?"
"응..."
"왜 안된다고 한 것 같아?"
"뜨겁고, 날카로운 것들이 많아서 다칠까 봐"
"맞아. 알고 있네. 근데 왜 자꾸 들어가는 거야?"
"엄마가 보고 싶어서..."
"너 화상을 입으면 얼마나 아픈지 알아? 칼에 베이면 또 얼마나 아픈지 알아?"
"몰라...."
"궁금해?"
"응..."
"이리 와봐. 사진 보여줄 테니까."
응?
굳이 사진까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의 앞에서 서로의 훈육방식에 대하여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한 룰을 지키기 위해 나는 조용히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아이는 결국 무서운 사진을 보았고, 다행히 그 사진을 보고 난 이후로 부엌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식이다.
나는 아마 다르게 했을 것이다. 나는 딸에게 감정적으로 호소했을 것이다.
"네가 다칠까 봐 엄마는 무서워."
"엄마는 부엌에서 바쁘게 돌아다니다가 너를 못 봐서, 네가 다치면 어떻게 하지?" 등등.
아마도 나도 맞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 인스타에서 본 글에서는 이런 부모의 말들이 아이의 행동을 주춤하게 만드는 요인이라 삼가야 한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뭐 인스타에서 본 글을 다 따라 하다가는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사랑해 밖에는 없을 것 같다(어쩌면 사랑해도 너무 많이 하면 안 된다는 글이 돌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떤 방식이 정답일까?
육아의 정답은 정말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엄마와 아빠의 육아는 너무 다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 남편은 내가 딸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아이를 사랑하고 아낀다.
그리고 그런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들이 그 아이에게 악영향을 끼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다루어주어서 아이에게 더 좋다는 생각도 든다.
아빠의 육아로 아이가 접하는 세상은 더 넓어진다.
물론 나와 남편도 아이가 어렸을 적에는 서로의 육아방식을 이해하지 못해서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나는 보다 더 다정한 방식으로 딸아이를 대해주기를 바랐고, 남편은 자신이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하다고 생각해서 서로 다툼이 있었던 적도 있다(지금도 더할 나위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남편의 육아방식을 그저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남편이 나의 육아방식에 좋은 점만을 칭찬해 주고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처럼, 나도 남편의 육아방식의 좋은 점만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퍼즐 같이 서로에게 없는 부분을 채워가며 아이에게 하나의 꽉 찬 사랑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아이에게 필요한 건 엄마와 아빠가 함께 만들어가는 사랑 안에 있다.
그 방식이, 그리고 생각이 다르더라도 마음만은 같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 인정하고, 이해해 준다면 아이는 그 안에서 너무나도 행복하게 자랄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오늘도 서로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을지도 모른다. 10일간의 연휴라니. 그 안에는 수많은 내적갈등이 불타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해하자. 서로 다른 방식이라 할지라도 같은 사랑을 주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