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 혹은 면죄부?
유전자란 참으로 신기하다.
아이의 모습 속에는 그 아이의 부모가 있고, 부모의 모습 속에도 그 아이의 모습이 있다.
외형뿐만이 아니라 체질, 성격 그리고 지능까지 아이의 많은 부분은 부모의 그것들과 닮아있다.
억누르려고 해도 언젠가는 비집고 튀어나오는 유전자에 의한 형질들은 정말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는 숙명적인 측면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부모의 복제품은 아니다. 다른 두 유전자가 만나서 하나의 조합으로 아이가 태어났으니 그 아이는 부모와는 전혀 다른 인격체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아이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는다.
나를 닮았노라, 너를 닮았노라, 비슷함에 기뻐하기도, 화를 내기도 한다.
나의 딸은 태어났을 때 아빠를 똑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물론 지금도 아빠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커갈수록 엄마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마도 엄마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아지면서 엄마와 비슷한 표정, 행동 그리고 말투를 갖게 되어서 그런 것이겠지. 엄마와 비슷한 헤어스타일도 한몫을 하리라.
하지만 내가 보기에 내 딸은 나보다, 아빠보다 훨씬 낫다.
우리 부부에게는 서로가 좋아하는 포인트가 있다. 얼굴에서 살펴보자면, 남편은 나의 작지만 도톰한 입술을 좋아하고, 동글동글한 볼을 좋아한다. 나는 남편의 눈썹과 눈을 좋아하고, 날카로운 콧대도 좋아한다.
우리 둘의 딸은 이런 서로의 장점을 섞인 외모를 가지고 있다. 동글동글한 볼과, 작지만 도톰한 입술, 시원시원한 눈과 눈썹, 그리고 콧대까지 우리가 서로 좋아하는 점들을 쏙 빼서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니 내가 보기에는 부모보다 나은 딸이다.
성격? 성격은 아직 잘 모르겠다.
엄마를 닮아서 부드러운 측면이 있긴 하지만, 아빠를 닮아서 T같이 굴때도 많다. 예를 들면, 인형은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며 집어던지기도 하고, 동화책을 읽다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비웃기도 한다.
누구를 닮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사랑이 많고 밝은 스타일의 성격인 것은 확실하다.
이런 단편적인 측면들로 내 딸의 외모와 성격을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만, 여하튼 많은 부분이 부모의 것들과 비교하여 설명될 수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유전자가 많은 것을 결정한다고 해서 그 아이의 모든 것을 유전자의 덕분 혹은 탓으로 결론 내리는 것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내 딸이 유독 예민한 어느 날이었다.
징징거리기도 징징거리고, 말도 안 듣고, 평소 하지 않던 행동들을 하며 엄마를 한숨짓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건, 남편을 닮아서 그런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어렸을 때 엄마말을 너무나도 잘 듣던 유순한 아이였다고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니 잘못한 건 아이인데, 미운건 남편이 되어버렸다. 잘못한 건 아이인데, 혼나는 건 남편이 되어버렸다. 아이는 잘못을 저지르고도 당당하고, 남편은 잘못한 게 하나 없는데도 멋쩍은 미소를 짓는 저녁이 되었다.
갑자기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이가 우리를 닮은 것은 사실이겠으나, 아이는 독립적인 자아를 지닌 한 명의 또 다른 인간이다.
독립적 인격체를 지닌 아이가 잘못한 행동이 다른 누군가와 닮았다는 이유로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아이가 잘못한 행동에 대하여 직접 부모와 이야기를 나누며 행동을 교정해 나가야지, 아이의 머릿속에 '이런 건 아빠를 닮은 거니 괜찮은 거야!'라는 생각을 심어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딸이 집중력이 좋고, 호기심이 많아 수업에서 좋은 태도를 보였고, 선생님께서 이런 딸의 모습을 (내가 느끼기에) 엄청나게 칭찬해 주셨다. 딸은 으쓱으쓱한 태도로 나를 칭찬해 달라고 자기의 부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남편에게 “누구를 닮은 거지?"라고 물었다.
남편도 나도 명석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왔기에 우리는 우리 둘을 닮아서 머리가 좋은가 보다며 뿌듯해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잘한 건 딸인데 엄마와 아빠의 자기 자랑 순간이 되었다. 딸의 영광을 가로채어 서로의 영광으로 탈바꿈시켰다.
결국 아이의 행동을 바라보며 가져야 할 태도는 부모와 분리시키는 것이다. 아이의 장점과 단점을 부모의 그것들과 결부되어 평가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부모의 유전자를 받아 태어난 부분은 아이의 일부일 뿐 전체가 될 수 없음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부모가 아이를 키우며 던져야 할 질문은 “넌 누구를 닮아서 그러니?”가 아니라,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가 되어야 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엄마는 내가 살면서 아쉬웠던 삶을 아이를 통해 대신 이루려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걸어갈 길이 안전하고 즐거울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주고 이끌어주는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잊지 말자. 그리고 그저 미소 지으며 응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