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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민 Jul 07. 2023

무언가가 한 해를 살아냈다는 건

 온 가족이 코로나를 치르고 일주일 뒤 허리디스크파열로 입원한 4월의 마지막 날, 첫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했다.


 우리는 떡볶이를 먹으러 신당동으로 향했고 ”떡볶이 먹으러 가는데 화장을 왜 하냐“ 는 그에게  떡볶이 먹으러 가는데 화장을 하는 게 아니고 결혼기념일이라 영훈씨에게 잘 보이고자 화장을 하는 거라고 대답했다. 어쩐지 부드러운 무드가 감싸는 것 같았다.


 대한의 떡순이로써 신당동에서 떡볶이를 먹는다는 것 자체가 40년을 대구에서 산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부부는 이렇게 사소한 것들을 기억해 주는 서로에게 안심을 가지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떡볶이와 신당동, 결혼기념일의 아내의 바람은 그렇게 연결되어 또다시 다정한 무드가 만들어졌다.

 

 새로운 어플을 다운로드하여 환한 색감으로 떡볶이를 먹는 우리를 찍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가게 앞 떡볶이 모양의 조형물 앞에서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좀 촌스러운 건 귀여워 보이기도 한다는 걸 아줌마가 되어 느끼고 있다.


 영훈씨가 몇 번 얘기한 카페로 향했다. 강이 보이는 내가 좋아할 거라던 그곳은 리모델링과 이사로 그 전과는 달라진 듯했다. 그렇지만 탁 트인 강을 보는 것만으로도 육아 8개월 차인 나는 행복했다. 즉 나오면 대부분 기분이 좋아진달까.

 

썸과 연인들의 꽁냥꽁냥한 분위기로 채워진 공간에서 첫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한 나는 사뭇 능글능글한 어른이 된 것 같기도 했다. 루프탑에 가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세포들의 기분이 좋아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더 이상 영훈씨가 즐겨 듣는  플레이리스트가 거슬리지 않았다. 종종 영훈씨의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있노라면 가슴이 갑갑해져 20분 이상 견디지 못했었던 게 떠올랐다. 그렇게 우린 무수히 치열한 날들을 견디며 결혼 1주년을 맞이했다.


 요가원 오픈 1주년 때가 떠올랐다. 성취감에 차올라 스스로를 뿌듯해하며 발걸음도 가볍게 회식을 하러 갔던것 같다. 결혼 1주년은 안도감에 되려 마음이 찬찬히 찰랑거리고 있다. 이 행복감은 우리의 싸움과 화해와 수많은 언쟁으로 이뤄낸 잠시의 균형이라는 생각에 겸허해졌달까. 집으로 오는 길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말하진 않았지만 놓지 않은 서로가 갸륵하고 조금은 기특하기도 했다. 그리고 만 명을 상대하는 것보다 신랑 하나 그리고 아이 하나와 함께 사는 게 행복하지만 훨씬 더 촘촘히 치열하다고 생각했다.  


오늘을 보내며 2주년도 잘 부탁한다고 영훈씨에게 얘기했지만 생각해 보면 스스로에게 한 말인 게 분명하다. 결기 2주년도 무사하기를. 너와 나, 우리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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