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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하 Sep 16. 2023

나는 책을 공짜로 주지 않습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78


1.


"

책 한 권 줘 봐.

사서 읽어.

증정본 없어?

없어.

저자들한테는 좀 주던데?

저자용으로 받은 것은 모두 보시했어.

에이 하나 얻으려 했더니.

읽고 싶으면 사서 읽어.

그럼 말어.

그래.

"


책이 나왔다고 하니까 한 권 달라고 청합니다. 공짜로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저자 증정본이라고 보낸 것이 있긴 합니다. 내 공간 책장에 며칠 전시해 두었다가 공으로 들어온 것이니 공으로 보내야 하는 것 같아 가장 어울릴 만한 곳에 모두 보시했습니다.


출간한 친구가 자신의 책을 공짜로 주고, 지인이 책 선물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내가 책을 내면 지켜야 할 일 중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책은 공짜로 주기 않기, 어울리는 책 선물하기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연히 얻어걸린 공짜 책을 정성스레 읽지 않았다, 입니다. 읽고 싶은 책, 직접 고른 책을 읽더라"는 겁니다.


2.

책을 읽으려면 책이 있어야 합니다. 종이책을 예로 들어보죠.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개인의 책 취향에 따라 사서 읽거나 빌려 읽습니다. 


누가 먼저 펼치지 않은 새책을 읽기 원하고, 다 읽은 책을 소장하고 싶다면, 인터넷 주문을 하거나 가까운 서점에 직접 가서 책을 구매해 읽으면 됩니다. 평소 서평이나 글쓰기를 한다면 서평단 활동을 통해 책을 무료로 받아 읽는 방법도 있습니다.


언니 오빠에게 물려 입은 옷이 제아무리 깨끗하고 좋아도 내가 직접 고른 옷만큼 애정을 갖지는 않습니다. 내돈내산이란 말처럼 내돈내책이 정도 가고 눈에도 잘 들어옵니다. 내 책장은 작습니다. 그러니 책을 들일 때 신중하게 고르고 들여놓은 책을 소중하게 다루는 편입니다. 나와 맞지 않은 책, 공짜라서 읽는 경우는 없습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잡지사 문화부 기자 시절 이달의 책, 이달의 문화담당하던 때였습니다. 지정된 서점에서 매달 서평 관련 서적을 무료로 받아 읽었습니다. 나는 그때도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 중이어서 책도 물건처럼 내 집에 두지 않았습니다. 서평단에서 들어온 책은 일로서 읽은 후에 어울리는 주변사람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내가 산 책도 한 번 읽고 독서일지를 쓴 후에는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중고로 내놓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정말 내가 좋아하는 책입니다. 해마다 읽고 재독 하는 책입니다. 



3.

나처럼 책을 쌓아 두는 것이 부담이거나 취향에 맞지 않거나 책값이 부담이라면 빌려 읽으면 됩니다. 가장 쉬운 방법이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해서 읽는 것입니다. 요즘은 도서대출카드(도서관회원증, 통합도서회원증) 하나면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외에도,  마을도서관이나 작은 도서관까지도 통합되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모바일카드를 발급하고 키오스크에서 도서 대출을 하는 세상이니 책이 없어 못 읽는다는 소리는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책을 직접 구매하지 않고 새책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공연장에서 스탠딩 관람을 하듯, 서점에 가서 구입하지 않고 매대나 서가에 서서 책을 소중히 다루어 읽으면 됩니다. 서서 읽는 것이 불편하면 테이블에 가져가서 읽어도 무방합니다.


나는 일단 첫 장을 펴면 그 자리에서 다 읽어야 편한 성격이라 도서관 대출이나 구매보다는 서점에 가서 읽고 나오는 것을 좋아합니다. 지금이 아니면 못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집중해서 읽게 됩니다. 그러나 메모를 하거나 원하는 페이지에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는 것은 아쉽습니다.  


최근에 도입된 희망도서 바로대출 서비스를 이용해서 동네 서점이나 독립책방에 희망도서 바로대출을 신청해서 읽고 반납하면 됩니다. 책을 대출 신청한 후, 서점에서 내가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는 문자가 오면 서점에 들러 두세 시간 머물며 읽고 나옵니다. 나는 책을 대출받아 집에서 읽고 다시 반납하는 것이 귀찮아서 아예 도서관이나 책방에서 반나절 읽고 나옵니다. 나는 책값을 아끼기보다는 집중해서 읽고 싶고, 책을 쌓아두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책을 읽습니다. 


도서관을 좋아하고 가는 일이 번거롭지 않으면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해서 읽는 방법이 가장 쉽고 편리합니다. 이래저래 책  돈이 없어서, 빌릴 방법이 없어서, 책 못 읽었다는 소리는 핑계입니다. 책을 읽고자 한다면 너무 많은 방법이 있으니 제 형편껏 취향껏 골라 읽으면 되겠습니다. 



4.

나도 책 선물을 하고 내 책을 공짜로 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읽으라고 주는 게 아닙니다. 읽을 것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읽을 만한 사람이 있다 해서 그에게 선물하라고 주는 겁니다.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 시청, 스포츠 관람은 흥미가 있어야 하지만 꼭 재미가 없더라도 시간 때우기용으로 가능합니다. 보면서 다른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책을 읽을 공간과 시간에 더해, 물리적 혹은 정신적 여유가 생겨야 합니다. 이 셋 중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라디오 청취나 드라마 시청과는 다른 겁니다. 독서는 다른 일과 함께 동시동작이 어려운 문화활동 지식탐구 취미생활입니다.


시간을 내서 자리에 앉아 책을 읽어야 하는데 수동적인 마음과 자세로는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없습니다. 졸다가는 책이 베개로 변신하고, 배가 고프면 냄비 받침대로 활용되며, 지루한 부분이 나오면 교과서나 문제집이 되어 버립니다. 전원 버튼 하나 켜고 끄는 것으로 하고 싶을 때 멈추듯 할 수 없습니다. 일단 책을 펼치면 두뇌와 신체는 책과 함께 일정 집중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여기서 집중은 몰두 immersion(어떤 일에 온 힘을 기울여 집중하려는 노력)보다는 몰입 flow(무언가에 흠뻑 빠져 심리적으로 즐거움을 느낌)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대충 누워서 읽을, 다른 일을 하면서 겸사겸사 소일거리로 할 만한 것이 독서는 아닙니다.


책이 손에 들어왔으니 그냥 읽어보자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책만큼은 읽고 싶은 사람이 직접 구입하거나 빌려서 읽으라 합니다. 내 돈 주고 내가 산 책이어야 한 번 더 펼치게 됩니다. 독서는 읽고자 하는 이의 의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취미이자 학습입니다.


5.

나는 내 책일 모두의 책장에 꽂혀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의 손에 내 책이 들려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 책이 모두에게 화자 된다면 그 무엇보다 행복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증정본이다, 비매품이다, 선물이다,며 책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얻은 책은 냄비 받침이나 책장을 메우거나 심하면 펼쳐보지도 못하고 중고책방으로 가는 신세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내 책을 광활한 우주에 내놓았듯이, 내 지인이 내 책을 궁금해한다면 기꺼이 서점에서 내 책을 만나는 신기함을 선사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책을 공짜로 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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