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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하 Mar 22. 2024

집이 나에게 물어온 것들 ㆍ장은진

혼독함공독서일지


엄마는 나와 내 여동생 이름에 돌림자를 넣어 지었다. 신선이 물에서 노닐 듯 자유롭게 살라고 선하仙河라 지었다. 그때는 시골이었을 고향에서 벗어나 서울만 한 큰 곳으로 가라고 경하京河라 지었다. 이름처럼 살라는 엄마의 소망은 이루어졌다.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고, 여동생은 외국에 나가 살았다.


이름은 그런 것이다. 귀한 사람을 생각하고 기다리며 불러줄 그 한 단어에 모든 바람을 넣는다. 오다가다 주워 지은 이름은 없다. 얼렁뚱땅 대충 붙여놓은 이름은 없다. 나에게 온 소중한 가족이니 고심 끝에 지었을 것이다. 꽃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피고 향이 나듯,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드디어 한 사람이 되고 인향人香이 퍼진다.


사람이 머무는, 특히 가족이 머무는 곳의 이름은 어떻게 지어질까? 대전시 유성구 엑스포로길 123번지가 내 집이라면 그것은 행정상 편리상 편하게 불린 이름이다. 요즘은 번지수가 가게나 브랜드의 이름이 되기도 하지만 내가 사는 집이 단순히 행정구역상 편재된 숫자에 의해 불과해진다는 것이 시대 흐름에 반발하고 싶어 진다.


집은 사람을 담는다. 집은 사람은 닮는다. 그래서 기윤재奇潤齋는 사람을 향한 마음을 담는다. 기발함과 넉넉함을 담은 주인을 닮은 기윤재. 이곳의 안주인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오는 손님을 넉넉한 웃음으로 세련된 찻상을 들일 것만 같다. 가족이 머무는 기윤재. 손님을 맞이하는 기윤재. 그곳에 가고 싶다. 햇살 드는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어 기윤재 안주인과 차담하고 싶은 그런 날이 오길 소망한다.



#예쁜책&초판본&재독하는&낭만독자

#정리도서평이된다면_정약용의초서처럼

#책도스포일러가있다면_작가님실례하겠습니다

#이많은책을왜읽지요?

#그몇줄을이해하기위해서!

#책보다재밌는거있으면그거하세요



밑줄긋기 /

p. 기윤재奇潤齋는 꽉 찬 집이다. 아침에는 빛으로, 밤에는 어둠으로. 나는 확실한 빛과 확실한 어둠을 좋아한다. 이 사실은 세상의 모든 밝음과 그 이면에 대한 사상이기도 하다. 빛이 모든 걸 삼킬 때는 보는 것에 의존하면 된다. 완벽한 어둠 속에서는 시각 외의 감각들이 제 할 일을 한다. 어중간하게 침침한 것이 문제다. 어떤 감각을 주로 사용해야 하는지 판단이 흐려지면서 감각의 공백 상태를 겪는다. 모호한 밝음이라고 해야 할지, 모호한 어둠이라고 해야 할지 표현조차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현상을 잘 견디지 못한다. 보르헤스는 훌륭한 예술은 모호함을 내포한다고 했는데 나는 (….)


 p.

봄 경치 온화하고 햇볕은 밝게 빛나는데

수양버들 그늘 속에 사립문이 비켜 있네.

꽃 그림자 농밀한데 고양이는 졸고 있고

산 빛깔이 뚝뚝 드니 제비는 서로 나는구나.

- 서거정 사가시집 중 -


p. 바빠서 건너가지 못하는 날에는 본채에서 창문 너머의 다실을 쳐다보면서 저곳이 바로 실체화된 '이어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꿈은 삶을 유지해 주는 힘이 된다.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살맛이 난다. 고작 몇 미터 떨어진 다실에서의 시간을 기약하며, 지금의 일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 것이다.


p. "우리가 건물을 만들지만, 건물은 다시 우리를 만든다. we shape our buildings, thereafer they shape us."라는 처칠의 말처럼 선택과 경험의 결과물이 이 집이고, 이 집은 다시 우리를 변화시키는 순환 구조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변화는 언제나 전보다는 조금 더 나은 쪽으로, 좋은 쪽으로 향해야 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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