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가 코칭받는 것이 이상한가요?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29

by 김선하

1.

“작가가 글쓰기 코칭을 받는다고? 왜?”

“오래오래 쓸 거니까. 가수 이효리도 보컬 레슨 받아!”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이도 옛말이 되었습니다만. 내가 아는 스님은 당신 머리 혼자서 잘 깎으십니다. 미용 도구도 좋아졌고, 미용 기술도 날로 발달하고, 무엇보다 머리 깎는 솜씨도 날로 나아지십니다.


나는 작업으로 들어오는 남의 글을 교정 교열 윤문수정까지 합니다. 훈수도 두고 적나라하게 비평도 서슴지 않습니다. 남의 작품을 자르고 붙이고 하다가 내 맘대로 새로이 만들어 버리기까지 합니다. 내 글도 당연히 내가 수십 번 퇴고를 거칩니다. 그런데 나는 왜 양 여섯 마리 값을 치르고 글쓰기 코칭을 받았을까요?

정작 나는 내 글을 못 봅니다. 문제를 모두 다 찾아내지 못합니다. 최고로 잘하는 퇴고는 불필요한 단어, 문장, 문단을 과감히 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내 글에서 그게 참 어렵습니다. 유독 내 글은 버릴 게 없다는 고집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동안 어떻게 쓴 글인데 아까워서도 못 버립니다. 그러니 누가 내 글을 보고 좀 버려주어야 합니다.



2.

내 주변에 있는 작가는 진짜 글을 잘 씁니다. 내가 쓴 글을 내밀었더니 비웃음 콧방귀부터 뀝니다. 지적 좀 하라 했더니, 글 함부로 건드리는 것 아니라며 으스레 떠는 꼴이 못마땅합니다. 한두 번 겪고 나서는 아예 “내 글은 출간 후 봐라.” 합니다.


주변 국어 강사나 논술 선생님께 내 글 좀 봐달라 합니다. “좋은데요?” 내가 원하는 답은 보통의 형식적인 칭찬이 아닙니다. 펜으로 단어 문장에 줄을 긋고 지우고 부수지는 못합니다. "어떻게 선생님 글에." 손사래만 칩니다. 그들에게 나는 조언과 충고를 주기엔 나이 든 어려운 선배 선생님이 되어버렸습니다. 나는 이제 고작 오십인데 말이지요.


그러니 나는 나의 글을 집도할 의사를 찾아야 합니다. 내 글을 알아봐 주고 내 편이 되어 줄 코치라면 금상첨화겠습니다. 사실, 누군가 이렇게 써라, 저렇게 해보면 어떨까, 조언해 봐야 나는 시키는 대로 쓰지 않을 것을 압니다. 다만 이렇게 쓰는 사람도 있다고 알려만 주면 그다음 변화는 내 몫입니다.



3.

글쓰기는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글에 조언하는 사람과 합이 맞아야 글 성장이 가능해집니다. 고집 센 작가의 글을 제아무리 좋은 쪽으로 이끌어봐야 한두 번이지 다시 돌아갑니다.


교육센터에 직접 가지 않고 온라인으로도 코칭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나는 꼭 대면 코칭을 고집합니다. 이런 고생과 시간과 돈을 감당하며 굳이 대면 코칭을 고집하는 이유는 현장감이 주는 아날로그 감성입니다.


내가 이 코칭에서 받는 힘은, 테이블 위 내 원고를 사이에 두고 평가받는 동안 공기를 둘러싼 그 아우라입니다. 글을 쓰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 한 공간에서 사람 냄새 맡으며 순간 느낌으로 변화하는 개별적인 기운을 얻고자 함입니다.


인강이나 유튜브로 대신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자습서나 실전 문제집이 해줄 수 없습니다. 미래 많은 직업이 사라진다고 말하지만, 이런 일대일 코칭은 마지막까지 연명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것은 글을 짓는 것입니다. 잘라내기 붙여넣기 복사하기가 아닙니다. 감성과 이성이 만나 예민하게 세심하게 쌓아 올리고 다듬어야 하는 창의 예술입니다. 나에게는 그 힘을 줄 수 있는 코치의 정확한 조언과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격려 한마디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전화기 너머로 혹은 핸드폰 화면으로 전달할 수 있지만 오래도록 깊게 와 닿지는 않습니다. 현장감이 주는 아날로그 감성과 피부로 느끼는 열정의 아우라를 위하여 버스 타고 기차 타고 지하철 타고 그 먼 길을 마다 않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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