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은둔자는 혼자만의 시에스타를 즐깁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30

by 김선하

1.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그대에게 주고 싶은~ 휴무인 수요일은 말 그대로 휴식 같은 하루, 트로피를 거뭐진 승리자의 마음입니다. 가족 모두 출근 등교 후 텅 빈 거실을 보는 내입꼬리는 어느새 승천하였고 눈가의 미소는 주름을 더하여도 괜찮을 만큼 기분이 좋습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명랑한 은둔자에게 쉬는 평일 하루는 그야말로 시에스타입니다.


오후 출근자에게 늦은 오전 시간은 친구들과 멋진 카페에 가서 맛있는 것을 먹거나 함께 운동하는 시간입니다. 사람을 만나고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인 데다, 오전 취미 활동이나 브런치에도 사람들과 소란한 시간을 보내는 편입니다.


수요일 오전도 아니 하루도 놀고먹고 즐깁니다. 그러나 평소와 수요일이 다른 것은, 이 모든 것을 나 혼자 합니다. 그러니 그 즐거움은 오로지 나 혼자 느끼고 누리는 것입니다. 이전에 사람들과 함께 다녀온 곳을 혼자 가기도 하고, 남들과 같이 가자고 권하기 어려웠던 곳을 가기도 합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명 처박혀 책만 읽기도 합니다. 함께 할 때와 혼자 할 때는 확실히 다른 느낌입니다. 아마도 혼자만의 즐김, 충만함이 이런 기분 아닐까요. 이 느낌은 말 그대로 충분하다! 충만함이 아니라 충분함입니다.


"

밀린 집안일을 할까?

창문을 닦을까?

사무실에 가서 대청소할까?

옷장과 책장을 정리할까?

아…. 그건 아닌데.

오늘 이 시간 무엇을 하지?

이제부터 무엇을 하지?

"


하고 싶은 리스트를 머릿속에 그립니다. 오늘은 글을 쓰겠습니다. 나는 서재나 내 방이 따로 없습니다. 글은 아무데서나 쓰지만 보통은 거실 식탁이나 베란다 쪽 테이블에서 씁니다. 오늘 명랑한 은둔자는 푸밀라 미니가든 바로 옆에 책상을 돌려 앉았습니다. 창밖 하늘빛 푸르름과 푸밀라 녹색빛 푸르름을 눈으로 끌어안기로 했습니다.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과 푸른 식물에 눈을 마주하면 나의 기분은 열기구를 탄 듯 훨훨 납니다. 그리고 나의 원고에게도 마치 해안가에 앉아있는 여행자처럼 지중해 연안 햇살을 들리고 바닷바람을 씌웁니다.

데리고 나온 문장과 단어를 노트북 화면에 띄우고 우두커니 들여다보다가 글을 씁니다. 글이 좀 써진다 싶은 날은 그 자리에 앉아서 길고 짧은 원고 몇 개를 끝마칩니다. 아 이럴 때 코치님 한마디가 간절해집니다.


"아, 좋은데요."



2.

일주일 한가운데 있는 수요일의 여행자, 명랑한 은둔자는 하루 긴 시에스타에 이어 일주일에 한 번 더 혼자만의 시에스타를 짧게나마 갖습니다.


지중해에 사는 사람들은 한낮 두 시쯤 햇빛과 나른함을 피해 낮잠을 즐깁니다. 그 시간이 나에게는 목요일 오전 10시입니다. 아침 강연을 듣고 운동을 다녀온 10시부터 오후 출근 전까지 한나절은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입니다. 이날은 가능한 약속을 잡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핑계를 댔지만, 지금은 솔직하게 말합니다. 이제는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그러려니 하고 목요일은 피해서 약속을 잡습니다. 나도 이 핑계 저 핑계 대지 않아 좋습니다.

이날은 밀린 집안 일과 직장일, 밀린 책 읽기와 글짓기를 합니다. 말 그대로 보충하는 날입니다. 한 주 단위로 오전 오후 빠듯한 일과 집안일에 취미생활까지 하다 보면 바빠서 빠트리거나 대충 하는 일들이 생겨납니다.


그런 일을 제때 해놓지 않으면 한 해가 끝날 때까지 손도 대지 않거나 잊힙니다.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 어쩌면 버려졌을 소중한 것들을 불러옵니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시에스타가 필요합니다. 그 시에스타를 즐기는 내가, 나의 여유가 대견스러워 좋습니다.


3.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재미 삼아 쓴 초고는 다듬지 않으면 잊히고 쌓아놓은 파일에 영원히 잠들어 있습니다. 그 글은 파헤치고 찾아서 다시 읽어보면 그것은 싱거운 에피소드입니다. 하지만, 다시 고치고 다듬어 보면 옥고가 됩니다. 그 옥고는 다시 누군가에게 감동이고 감상이 될 수 있을 테고요. 나는 삶에도 글에도 나의 옥을 찾아 나만의 시간, 나의 시에스타를 즐기기 위해 기꺼이 은둔자를 자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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