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려고 읽습니다 vs. 읽으려고 씁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37

by 김선하

1.

10시 핸드폰을 켜고 라디오 어플 하나를 클릭합니다. 아나운서의 밤 인사에 이은 오프닝 시그널 HIMM이 흘러나옵니다. Classic FM 당신의 밤과 음악의 시작은 내가 글 쓰는 시작을 알리는 알람 같은 겁니다. 요즘은 그 시간이 좀 들쭉날쭉하긴 합니다만 대체적으로 이 시그날이 나의 늦은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쓰려고 책상에 앉았습니다.


내가 책상에 앉아 노트북 화면 '미발표 파일'에 원고 하나를 채워 넣는 것은 혼자만의 루틴 중 하나입니다. 시간이 떠밀려 촉박한 일도 아니고, 시간이 남아돌아 세월아 내 월아 타령도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면 뭐라도 씁니다. 쓸 게 없어도 일단 쓰자고 마음먹으면 만족할 만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뭐라도 채워집니다.


2.

그런데, 오늘은...


피곤한 것도, 졸린 것도, 기분이 엉망인 것도... 아닙니다. 그날 마무리해야 할 일이 많이 있긴 한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은 날이 있습니다. 계획한 마감일이 있어서 글을 써야 하는데 노트북을 켠 채 30 여분이 지나도 화면에 한 줄, 한 단어를 쓰지 못했습니다.


아...


그냥 쓰기가 싫어졌습니다. 오전에 책 읽은 것이 하나 있어서 서평이라고 멋지게 남겨볼까 했는데 그것도 괜히 하지 싫어집니다. 뭔가 뒤틀린 심산이 있는 뿔난 사람처럼 뭐라도 하나 꼬투리 잡아 찔러보고 싶고 딴지라도 걸어보고 싶은데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전에 읽은 애먼 책 한 권을 찔러보렵니다.



3.

내가 존경하는 기획자 책과강연 이정훈 대표가 쓴 ‘쓰려고 읽습니다’에 대한 질문과 반박을 좀 하겠습니다.


❝책은 왜 읽습니까?❞ (16쪽)

저에게 글이란 읽기 위한 모든 매체의 인쇄물입니다. 다시 말을 돌리면 모든 매체의 인쇄물은 읽으라고 제작된 것입니다. 그러니 읽으라고 내놓은 출판물을 읽습니다. 왜 씁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읽으려고 씁니다. 길을 걷다가, 운전하다가 신호대기 중에, 창밖을 내다보다가, 식당이나 상점에서라도, 나는 내 앞에 보이는 인쇄매체 글을 습관처럼 읽습니다. 글자를 갓 배운 아이들이 호기심에 가판 글자를 읽듯이 나는 보이는 글자를 읽는 것입니다.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독서,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그냥 읽는 행위를 좋아합니다. 책 잡지 신문 판촉물 카탈로그 브로슈 등 그냥 있으면 읽습니다. 선호하는 장르나 디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읽을 수 있는 것을 읽습니다. 물론 나에게 친숙하고 나를 잘 아는 글을 마주하는 것이 읽는 즐거움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 글을 읽으려고 씁니다. 너무 못 쓰면 읽기 싫어져서 조금이라도 잘 읽어보려고 나름 신경 써서 씁니다. 그러니 잘 읽으려면 잘 써야 합니다.



❝처음에는 자기 계발을 하겠다는 의욕으로 시작했는데 하다 보면 옆 사람과 더 잘하기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어긋난 경쟁입니다. 뒤처지는 사람은 슬그머니 방을 나와 잠적합니다. 그런데 이도 잠깐입니다. 조만간 새로운 단톡방에 또 입장합니다.❞ (24쪽)


그런 의욕이라도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요? 미라클 모닝, 올빼미족, 챌린지, 도전 무엇이든. 나는 하지 않지만, 하지 못하니까, 하고 있는 사람들은 참 대단합니다. 하고 있고, 시작이라도 했던 사람은 그래도 이렇게 저렇게 라도 해보려고 시도라도 하려는 사람이죠. 꼭 무엇을 하는지 중요한 것은 아니지요. 해보겠다는 의지를 북돋으려는 것이고, 시작의 방아쇠를 당기려는 것이고, 계기를 만드는 것이고, 하겠다는 의지를 일깨워 주는 것이고, 그래서 함께 하며 보다 덜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나는 이런 행태도 하지 않으니 나 자신이 좀 답답함을 느낄 때가 가끔 있습니다.



❝책장은 작을수록 좋고 책은 적을수록 좋습니다. 반드시 읽을 책만 남겨두고 읽지 않을 책은 보이지 않는데 수납하거나 버리는 게 좋습니다. 언젠가는 읽는다, 는 생각을 버려야 당장 읽어야 할 책에 소홀하지 않습니다.❞ (60쪽)


이 책에서 작가에게 공감한 첫 번째였습니다. 내가 꿈꾸는 서가 한쪽 벽면에는 아홉 칸 낮은 책장이 있습니다. 한 칸에 하나씩. 오늘 읽을 책 한 권, 엄마 사진 넣은 액자 하나, 손거울 하나, 곰 인형 하나, 응원 메시지가 담긴 엽서 한 장, 붉은 꽃인 핀 미니 화분 하나, 립스틱 하나, 맥심 커피 봉지와 컵 하나. 그리고 남은 한 칸은 그냥 비워두기. 그리고 적은 책에 만족하며 읽겠습니다.


‘아 좋은 문장’이라고 느끼는 것은 영감의 차원이 그 문장이 피부를 파고들어 현실에서 자기 삶의 서사를 열어주는 물길이 되어준다면 그것은 지식의 차원에서 지혜의 차원으로 응용된 문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141쪽)


"아!!! 좋다. 좋은데요~~~." 이정훈 대표를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표현입니다. 내가 여럿에게 소문내서 이 대표의 표현법은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 내 글을 읽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가락으로 안경테를 문지르며, 알 수 없는 입가에 얕은 미소로 했던 말입니다. "아!! 뭐죠? 좋은 데요? 좋아요!" 나중에 알았습니다. 이 대표는 좋으면 좋은 것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격하게 감탄할 줄 아는 우리나라에 그리 많지 않은 표현하는 남자였습니다. 대표님 시그니처는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군요.


❝쓰기는 읽기로 뽑아 올린 시를 베틀에 놓고 자기 생각을 선명하게 조직하는 일이다.❞ (281쪽)


이 책에서 쓰기 위한 읽기는 보통 읽기와 다르다고 합니다. 목적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목적 있는 읽기를 해야 한다는 뜻인가 봅니다. 나의 읽기와 책 속의 읽기는 정말 다릅니다. 책을 읽지 않고 발췌하여 읽는 것은 학생이 교과서를 읽지 않고 평가문제집의 정리면을 읽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손에 든 책은 목적이 어떻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책을 쓴 저자에 대한 예우이고 읽는 사람의 기본 아닐까요? 연금술사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이 많은 책을 왜 읽죠? 그 몇 줄을 이해하기 위해서지!" 내가 책 읽는 사명이자 철학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요약본만 진액만 뽑아서 편집하겠다는 생각인가요? 거기에 창의성을 더해서. 그건 쉽게 쓰는 글 아닌가요? <에디톨로지>를 쓴 김정운 작가는 "인생은 편집이다" 했습니다. 무엇을 읽고 어떻게 행동했느냐 당시에는 중요하지 않지만, 그것을 나중에 이렇게 저렇게 섞어놓으면 새로운 나만의 것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책은 부분적으로 발췌하고, 읽고 싶은 부분만 읽고, 취하고 싶은 부분만 얻는 게 아닙니다. 서론 본론 결론이 왜 있을까요? 글에 구성이 있듯이 책에도 구성이 있고 흐름과 맥락이 있습니다. 그 흐름과 맥락을 훑은 후에 발췌도 취사도 선택도 가능한 겁니다.

❝도구는 막 쓰라고 있는 게 아니다. 잘 쓰라고 있는 거다.❞ (282쪽)


책은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는 행위는 도구가 아니라 과정이고 수련입니다. 책은 막 읽는 게 아닙니다. 잘 읽는 겁니다. 제대로 읽는 겁니다. 그게 작가와 독자 사이에 당연한 예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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