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리벽이 있습니다. 모아두고 쌓아두는 것을 불편해합니다. 눈에 보이는 물건뿐만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나 교구, 유치원과 학교에서 가지고 온 학습 활동 결과물. 일단 집에 가지고 오면 잠시 테이블이나 벽에 걸어둡니다. 한 이주가 지나면 보는 둥 마는 둥 하는 눈치입니다. 그렇게 아이들 시선에서 시들해지면 나는 그것들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그것들은 주말 저녁 분리배출함에 휴지 플라스틱 철로 분류되어 각각의 상자에 들어갑니다.
내가 쓴 글을 주제별로 시기별로 모으거나 아이들이 쓴 일기나 짧은 글을 모아서 책을 만들곤 했습니다. 대학가 주변 인쇄소에서 프린트로 출력하고 표지를 뽑아 제본하면 출판사도 도서 바코드도 없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서점에는 없는 책이 만들어집니다.
2.
첫 책이 기획과 의도를 가지고 출간 준비를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엄마 늪에서 빠져나오고 싶었고 엄마와의 추억을 돌아보며 감정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엄마 생각이 날 때마다 쪽지 메모지 이면지 다이어리 등에 끄적였던 몇 줄과, sns에 올렸던 사진을 모아서 동생과 내가 각각 한 권씩 소장할 미니 책자로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엄마책도 그렇게 정리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엄마와의 기억을 사진과 메모로부터 끄집어내어 추억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온갖 감정을 다 토해내며 감정이 일부 정리되었습니다. 그 감정선에 글자를 올려 시 혹은 운문 형태로 마무리지었습니다. 엄마 제삿날 읽어주려고 헌정 시집 형태를 갖춘 문집 정도였습니다. 책 한 권 분량인 그것을 본 지인이 산문체로 바꾸어 책을 내도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며칠 밤을 새웠습니다. 시와 운문에 주어 서술어를 붙이고 하나씩 원고 꼭지가 만들어졌습니다. 여러 번 수정을 거친 후 책 쓰기 코칭을 받아 서점에서 내 책을 만나는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3.
나는 처음에 쓰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책을 내야지 생각이 들자, 다른 엄마책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작가는 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해 얼마큼 관련 서적을 읽을까 궁금했습니다.
책 쓰기 코칭 서적을 보면, 책의 성격과 종류에 따라, 각 장르별로 책을 쓰는데 평균적으로 몇 개월이 걸리고 몇 권을 책을 읽고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평균적인 이야기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책 한 권을 출판하는데 글 쓰는 소요 시간은 유효기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에세이는 개인이 사회를 향하는 사색과 통찰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깊이 멀리 넓게 직관하는데 그 시간은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일단 책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평균 한 꼭지에 한 권의 책을 접했습니다. 작정하고 그런 것은 아닌데 책을 쓴 전체 기간. 그러니까 자료부터 초고 수정 최종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는 2년 동안 내가 읽은 책이 백 여권입니다. 엄마 관련 에세이는 그리 많이 읽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책에서 얻는 영감이 글 쓰고 사고를 확장시키는데 가장 쉽고 편한 경험이었습니다.
4.
어린 시절부터 지금도 그러하지만, 나는 애서가였지 애독가는 아니었습니다. 유년기에는 책을 읽으라고 조언해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의 집 거실에는 어린이 세계 명작 전집이나 그 흔한 위인전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내가 책을 읽은 장소는 붙박이 책장과 낡은 소파가 있던 동네 새마을금고였습니다. 어쩌면 나에게 책을 통해 클 수 있었던 건 도서관이나 학교가 아닌 새마을금고 이사장실이었습니다.
어릴 적 독서습관과 책 읽기에 취미가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필요하다고, 읽어야지 마음먹는다고 갑자기 되지 않았습니다. 입시를 위한 필독서나 청소년 세계 문고도 그다지 많이 읽지는 않았습니다. 하이틴 문고와 만화책을 돌려보는 정도였습니다. 사춘기에는 읽기보다는 그나마 쓰기로 나를 표현하고 위로했습니다.
대학에 와서는 과제와 동아리 활동 때문에 가끔은 지적 허영심과 보여주려는 의도로 책을 가까이했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는 이 또한 필요에 의해 최소한의 책을 읽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나는 책 보다 다른 재미있는 게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책, 독서, 읽기는 항상 나의 유희에서 밀려나 있었습니다.
5.
살면서 책을 많이 읽은 시기라면 바로 지금입니다. 책을 쓰는 동안, 일차적으로 내 주제와 유사 관련된, 주변에서 추천하는, 코칭받으며 참고하라는 책을 위주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수정하는 동안 독서모임에서 읽게 되는, 그냥 우연히 손에 든, 의도하지 않고 읽는 책을 읽은 후에는, 결국 기-승-전-전. 결은 결국 지금 준비하고 있는 책과 연관시켜 영감을 얻게 되는 스승이요 선배가 되었습니다. 책 한 권을 쓰는데 읽어야 할 책과 이외 보고 듣고 느끼고 감각하며 접해야 하는 경우는 99로 잡았습니다. 직, 간접적인 경우의 수가 그렇습니다. 나는 이 책 한 권을 쓰는 동안 얼마나 읽고 보고 듣고 느꼈을까요? 쓰는 동안 읽고 혹은 읽지 않는 순간에도 사색하고 감각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해 그 많은 책이 나에게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