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좋아서 한 일인데 공로패를 받았습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40

by 김선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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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는 사람한테 시키는 거야! 다 자기 몫이 있는 거야. 이쪽이 자네 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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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다니던 절에서 신도회장님이 사찰 이모저로를 알리는 <<법등法燈>> 무가지(無價紙. 기관이나 회사에서 홍보용으로 무료 배포되는 신문이나 잡지) 발행을 제안했습니다.


예상에 없던 제안을 일단 받아들였습니다. 한 두회 발행해 보니 재미있었습니다. 잘해보고 싶은 욕심도 났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이런저런 시도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내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법등지를 중간에 포기하지 않기 위한 나만의 조건-명분이 필요해졌습니다.


'<스님 서가> 99편이 되면 나는 이 글을 모아 책을 낼 거야! 그러니까 그때까지 그만두면 안 돼'


이렇게 다짐하고 딱 일 년만 해보자 했는데 거의 4년이 흘렀습니다. 폐간되는 지난해까지 한 번도 발행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나는 좋아서 했습니다.


2.

나는 절에 규칙적으로 다니는 모범 신자는 아닙니다. 절에서 이루어지는 법회나 기도시간에 함께 하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우리가 하는 뻔한 변명 '바빠서, 일이 많아서' 여기에 합당한 이유 '직장을 다녀서'가 적절히 혼합되니 초하루다 백중이다 꼭 절에 와라 하는 강요가 없습니다. 그저 어쩌다 시간이 나면 편히 들렀다가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자리하고 돌아오면 됩니다.


다른 종교시설은 가본 적이 없어 모릅니다. 다만 절이라는 공간 - 법당 도량 공양간 - 은 익숙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눈치 보지 않고 아무 염려 없이 아무 때나 마음을 둘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스님 법문 들으러 절에 갈 시간이 없는 직장인입니다. 결국 나는 절에 자주 가지 않지만 내 방식대로 불교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다 쉽게 배우고 지금에 맞는 실생활에 응용할 법을 배울 요량으로 스님이 낸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고 나의 수행에 빚대어 <스님의 서가> 코너에 담았습니다.


내가 법등을 진행하는 동안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이달의 법회>와 <스님 서가>입니다. 이달의 법회는 초하루 스님이 설하신 법회에 참석해서 스님 말씀을 듣고 내용을 정리해서 지금에 맞는 정진 수행의 길을 제시해 줍니다. <스님의 서가>는 언급했듯이 법회에 가지 못한 나만의 불교를 공부하는 방식입니다.


3.

법등 4년을 발행하고 멈춘 다음 해, 나는 사찰에서 부처님 오신 날 행사 때 공로패를 받았습니다.


"불자로서 투철한 사명감과 봉사정신으로 사찰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지대함으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패를 드립니다."


불교 공부가 먼저였지는, 법등지 발행이 먼저였는지, 스님의 서가가 먼저였는지, 이제는 구분이 어렵습니다. 다만 불교 기초 교리도 알아야 했고, 부처님의 가르침도 받아 실천해야 했고, 법등도 잘 발행해야 했습니다. 무엇이 먼저였고 더 중요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다 하려고, 끝까지 해보려고, 스스로 다짐하고 선언하고 다만 꾸준히 해나갔을 뿐입니다.


4.

어느 해인가, <스님 서가>에 한 비구니 스님의 제목에 이끌린 책을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그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나도 언제가 꼭 엄마책-엄마를 위한 책- 한 권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글로 쓰여 보란 듯이 책이 되었습니다.


“숨 쉬는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던 모녀는 오직 살고자 하는 의지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그리 자유롭게 수행자의 마음을 지닐 수 있게 될지 알 수 없으나, 나는 그 길을 향해 걷고 있습니다. 엄마와 딸이면서, 주지 스님과 스님의 자리에서.” - 선명스님의 <엄마의 엄마로 태어날게 > 중에서


엄마가 없는 삶으로부터 지금의 일상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데 10년 하고도 또 10년이 지났습니다. 물론 아침에 눈을 뜨면 행복하고 들떠서가 아니고 이것도 내가 짊어져야 할 삶이라고 저항하지 않는 시간과 만납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나는 참 모질고 억세고 고집스러웠습니다. 이제 그렇게 안간힘 쓰지 않아도 괜찮은 여유가 생긴 것입니다. 지난 시간의 지난 사람들의 원망과 미움 시기와 질투 그리고 욕심을 내지 말 것을 다짐하며 감사하고 고마운 날들을 위해서 저는 오늘도 내게 주어진 고된 일상을 받아들여 수행합니다.


나는 지금 살고자 무엇을 하고 있나요? 아파도 괜찮습니다. 원망도 미움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너무 오래 원망하고 미워해서 내가 더 아파하지 않길 스스로 다짐합니다. 한 번도 쓰다듬어 준 적 없는 나 자신을 다독입니다. 글로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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