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과 지적 사이를 넘나들면 적당히 에두르는 선배 한마디에 그냥 웃고 넘겼습니다. 이제 와서 내 문체를 변화시킬 생각의 의지가 없음을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글 쓰는 사람, 작가는 자신만의 문체, 글체를 가집니다. 독특하게 표현되어 단박에 알라차리기도 하고, 긴가민가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결국에 그렇지! 하고 작가만의 문체를 알아냅니다. 물론 평범하고 밋밋한데 읽고 나면 가슴이 쿵하는 문체도 작가의 매력일 수 있습니다.
2.
시인, 소설가, 수필가, 기자, 극본가, 방송 작가, 카피라이터, 논문 저술가 등등 저마다 다른 장르, 다른 전공 분야에서 글을 씁니다. 각각 다른 글을 대하더라도 글 쓰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기본 요소가 있습니다.
인문, 예술, 실용, 과학, 기술 주제가 다르면 같은 소재라도 접근과 표현이 다양해집니다. 기술적 측면에서 장르에 따라 기본 요소에 충실하되 작가 본연이 지니는 자신만이 색깔이 더해집니다. 그러면 그것이 한 작가의 글체, 문체가 되는 것입니다.
3.
직업, 성격, 성장 배경 등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을 감안할 때, 나의 글쓰기는 문학보다는 비문학에 가깝습니다. MBTI 성격 유형에 비유해 본다면 공감대 형성에서 T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나름 독립적이다,는 소리를 듣곤 했는데 책의 성향에서도 그런 모습이 보입니다.
책이 좋아서, 책을 가까이하면서, 책이 선생님이요 친구가 되는 처음에, 소설이나 시 같은 순수문학보다는 사회과학, 자기 계발 관련 서적을 많이 읽었습니다. 지어낸 이야기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한 것이니 칭찬해야 할 일인데도 지어냈으니 가짜이고, 왜 가짜를 읽어야 하는지 반항적 질문을 하곤 했습니다. 반면에, 신문 기사, 르포,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기반으로 현실성을 반영하니 진실을 알아간다는 면에서 자료나 정보로서 글을 읽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글은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설이나 시를 읽더라도 로맨스나 서정적인 글보다는 위인전 성장 소설 산문시를 선호했습니다. 그리고 사회인이 되어서는 일과 관련된 서적을 우선시했습니다. 문학적 소양을 기르기보다는 필요에 의한 상식을 넓히기 위한 독서였던 것이지요.
글을 읽는 것도 그렇지만 표현할 때도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유적인 면에서 은유법보다는 직유법을 선호합니다. 사물을 설명할 때에도 이미지나 심리 묘사보다는 시간과 공간 측면에서 순차적 서술이 편합니다.
단호하고 냉정해 보이는 성격과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행하는 성향, 사물의 위치나 배열이 반듯해야 하는 시선, 정리 정돈이 되어있어야 마음이 편한 생활 태도 등에 맞물려 이 모든 것이 나의 글에 드러납니다.
그래서 내 글은 문학적인 감성이나 묘사보다는 시나리오를 읽는 듯 서술적이고 기술적인 면이 보인다고 말을 가끔 듣습니다. 메타포 대신 대사를 엮어놓은 듯하다는 의미였습니다. 처음에는 감수성도 문학성도 없는 형식적인 글을 쓴다고 지적받았는데 이 또한 지금은 나만의 문체가 되었습니다.
나는 평소 문학성과 지적 허영심이 있는 사람이라 미리 밝혀둡니다. 그래서 있어 보이는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문학적인 글을 흉내 내고 연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쓴 글은 내가 읽기에 영 거슬렀습니다. 소설이건 에세이건 기고글이건 그 장르에 맞게 글체를 입히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나의 글체가 문학적인 것보다는 시나리오적인 성향이 강하니 글체를 그쪽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4.
글을 쓰다 보면 내가 보입니다. 내가 쓴 글이니 글 속에 내가 보이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그런데 이 글 저 글을 읽어도 하나로 귀결되는 글체를 보이는 사람이 있고, 글마다 전혀 다른 글체를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중 인격체라는 말이 있지요. 한 사람이지만 다양한 인격체를 가지고 대상과 상황에 따라 변합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그러려고 많은 시도와 노력을 합니다. 내가 다루고자 하는 글에 따라 나를 변화시키고 적응시켜 달리 써나갑니다. 물론 나는 하나고 한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정표 앞에서 길을 선택한 순간 나의 발걸음은 달라집니다. 어제는 이랬고 오늘은 이렇고 내일을 이럴 것이다, 미리 정하기도 하지만 가다 보니 그렇게 가기도 합니다. 글이 딱 그런 겁니다.
그러니 이렇게 해야지, 작정하고 나면 한 틀에 묶여 맴돌 수 있습니다. 나는 글을 쓰는 동안 이렇게 해야지 고정틀을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의 키워드를 주춧돌로 세워 가지를 늘립니다. 그러다가 가지가 휠 때면 다시 가지 치고, 새순을 기다렸다가 다시 키우고 또 가지 칩니다. 그러다 보면 나무가 되어있고 열매가 맺혀있습니다.
그러니 내 글은 딱 내 삶과 닮았습니다. 소위 젊었을 때는 바운더리를 치고 나오지도 들어오지도 않고 내 안에서 갇혀 있었습니다. 고집과 아집은 늘었지만 수용과 변화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바운더리를 크게 그리고 문도 달았습니다. 그 문은 내가 들어오고 나가는 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을 내보내기도 들이기도 하는 문입니다. 나는 그 문을 삶의 출입구로 삼아 들락날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