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돈보다 귀합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44

by 김선하


1.

글을 쓰지만 본업은 학원 강사입니다. 당분간은 작가와 강사를 겸할 예정입니다. 글 써서 먹고살기 힘든 현실에서, 아직 '믿고 읽는 작가' 대열에 들지 못하는 처지라서, 오랫동안 먹고살아야 하는 일과 즐거워서 하는 일을 병행키로 하겠습니다. 언제가 내 책이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로 즐거워서 하는 일만 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지요. 하지만 녹녹지 않은 현실과 내 분수를 충분히 알기에 이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살겠습니다.


학원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지금은 형편이 달라졌지만, 몇 해 전까지 오전에는 유치원, 오후에는 동네 보습 학원, 저녁에는 입시 학원을 뛰는 강사였습니다.


강사는 보통 학교 선생님이 퇴근할 즈음에 일을 시작합니다. 강의 시간이 근무 시간과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학원과 강사 사정에 따라 다르지만, 강의 전에 출근해서 회의를 합니다. 분과별로 하기도 하고 전체가 진행되기도 하고 크게 회의나 모임이 없이 단톡방에서 공지사항과 신경 써야 할 부분을 전달받기도 합니다.


강사는 한 학원 안에 소속되지만 철저히 개인주의 성과주의 조직입니다. 상하구조가 존재하지만 그보다는 개인의 존중과 자유가 먼저입니다. 보통 강사는 회의가 끝나면 이른 저녁식사를 하거나 수업 준비, 자료 조사, 학생과 학부모 상담을 합니다.


2.

내가 학원과 계약할 때 내세우는 조건은 딱 두 가지입니다. 수업시간 외 학원에 머무는 시간 최소화, 그리고 매주 수요일 휴강.


나는 수업 10분 전 학원에 출근합니다. 일타강사도 아니고, 조교 시스템을 갖춘 강사여서는 절대 아닙니다. 이 때문에 내 월급은 나와 같은 시수로 수업하는 강사에 비래 현저히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일단은 괜찮습니다. 시간으로 돈을 샀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수업시간 말고 학원에 머물러야 하는 근무 시간이 관건입니다. 이렇듯 남들과 다른 처우를 받는 대신 강사들이 기피하는 반을 맡습니다. 나에게 좋은 학생, 편한 학생, 쉬운 학생이 따로 없습니다. 나쁜 학생, 불편한 학생, 어려운 학생은 없습니다. 선생은 학생을 가릴 자격이 없습니다. 내가 시간 특혜를 받았으니 보통 강사가 선호 하는 반을 맏지 않아도 됩니다. 선호하지 않는 반도 기꺼이 맏습니다.


수업 준비는 보통 집에서 합니다. 집에서 교재를 만들 수 있도록 노트북 프린트 미니 제본기 등 장비를 갖추었습니다. 아직은 엄마, 주부라는 타이틀이 우선이기 집안과 아이를 챙기면서 수업 준비를 하는 것이 편합니다. 일도 중요하지만 가정도 챙겨야 합니다. 학원 강사에게는 저녁 전후가 피크 타임입니다. 프라임 타임에 수업을 포기하고 아이들 식사 준비를 고집했던 지난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어릴 적 일에 바빴던 내 엄마를 기억하며 적어도 내 아이들에게 찬밥은 먹이지 않겠다는 결심이 그때 생겼던 모양입니다.


지금은 시간에 맞추어 밥하러 집에 들어오는 수고는 덜었습니다. 오히려 혼자 밥 먹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혼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내 시간을 갖습니다. 그때 아이들 식사시간을 양보하고 수업을 해서 경제적으로 더 여유를 부렸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하는 취미시간에 나는 수업을 하고 돈을 벌 수 도 있습니다. 그때 돈을 시간보다 귀하게 여겼다면 지금도 돈을 위해 시간을 뒤로 물렀을 겁니다. 다행이지요. 덕분에 나는 지금의 시간을 나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전 수업을 하는 학원과 계약할 때 반드시 수요일은 휴강을 하겠다고 합니다.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대타 선생님을 들입니다. 그러니 내 월급이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수요일은 나의 취미 힐링 수행의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3.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일입니다. 욕심껏 이 모든 것을 다 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힘과 능력이 아니라, 시간입니다. 남들처럼 먹고 자고 놀아서는 할 수 없었습니다. 이를 위한 방법은 하나! 시간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결론은 뻔했지요. 새벽 시간!!! 새벽 5시, 머리맡에 조용한 진동이 나를 깨우면 한 번의 뒤척임만으로 최대한 움직임을 줄여서 침대 밖으로 나옵니다. 아이들이 깨지 않음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창가에 앉아 잠시 창밖을 바라봅니다. 물 한 잔 마시고 바로 가방 하나를 들고 현관을 나섭니다.


새벽 다섯 시, 나의 도반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 집 현관에서 다섯 걸음. 앞집 현관은 내 몸 들어갈 만큼만 열려있습니다. 몸을 옆으로 돌려 현관을 지나 주방으로 숨죽여 걸어갑니다. 그곳에는 깨끗하게 빈 식탁에 집주인 언니가 앉아 신문을 읽고 있습니다. 새벽 시간 활용이 불규칙적이던 차에 옆집 언니와 새벽 공부 이야기가 나왔고 우리는 다음 날부터 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새벽 공부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나는 눈인사만 하고 맞은편에 앉습니다. 이 시간에는 책과 신문을 읽고 기도를 하고 동아리 일지와 다이어리를 정리합니다. 주 단위로 해야 할 일이 반복되다 보니, 매일매일 해야 할 일이 쌓여있습니다. 필요한 일을 해야 하니 반강제로 행해진 나의 새벽 시간이었습니다. 덕분에 나는 주어진 하루 24시간에 두어 시간을 보너스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직장과 양육과 공부와 취미를 모두 잘 성취한 지난 10여 년이 지났습니다.


이후로 한 3년, 이런저런 핑계로 새벽 공부 시간이 사라졌습니다. 친구들과 새벽 운동 나가는 것 외에는 아이들 생활에 맞추어 아침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 방학을 기점으로 게을러진 생활 리듬은 개학 후에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새벽 시간과 아침 시간을 마땅히 뭐 하는지 모르게 보내는 날이 잦아졌습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이 얼마만큼 자라고 일하는 것 외에 나의 취미생활은 더해졌습니다. 단순히 감상하고 즐기는 차원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려니 시간 없어, 힘들다, 피곤하다는 불평은 늘어놓을 수 없습니다. 안 하면 그만인 일을 손 놓는 것도 편치 않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하려니 다시 새벽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다가 미라클 모닝, 새벽 챌린지에 자발적인 신청과 비자발적인 실행을 한 달여 지속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생활 패턴과 사회 활동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런 노력이 나에게는 일부 독이 되었습니다.


퇴근 후 슬기로운 저녁시간. 그래서 나만의 방법으로 시작한 것이 퇴근 후 저녁 시간을 활용한 것입니다. 일이 끝나면 바로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남아서 한두 시간 개인적인 일 - 취미 혹은 N잡으로서의 글쓰기 - 을 하나 마무리하고 갑니다. 나는 오늘도 내 방식대로 내 시간을 귀하게 쓰려고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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